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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유순남> 꽃이 질 때 눈물 한 방울 떨구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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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유순남> 꽃이 질 때 눈물 한 방울 떨구듯

유순남 수필가

게재 2022-08-04 13:07:01
유순남 수필가
유순남 수필가

지난 7월 중순. 마른장마 중 모처럼 내리는 비 덕분에 그다지 덥지 않은 오후 네 시 경이었다. 그곳은 담양의 오지 어느 산자락에 자리하고 있었다. 도로에서 논 사잇길을 지나고 계곡에서 흘러내린 냇물을 건너 입구가 있다. 마당에는 열 명 정도가 먹기에는 너무 많은 백여 개의 항아리가 꽃 나무와, 잘 어우러져 있었다. 안주인이 효소 명인인지라 그 장독에는 여러 가지 효소가 들어있단다. 원장의 안내로 간 오른쪽 건물은 여류작가 다섯 명이 함께 쓰는 공간이다. 시인, 동화작가, 소설가, 르포작가 그리고 필자까지 장르가 각각 다르다. 간단한 인사를 하고 안내받은 방은 생활하기에 조금도 불편함 없게 잘 갖춰져 있었다. 짐을 정리하고 자주 연락하는 지인들에게 한 달 동안 sns를 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하룻밤을 보내고 나니 그곳이 더욱 마음에 들었다. 요즈음 보기 드물게 지하수를 식수로 사용할 정도로 오염이 안 되었고, 삼십도 아래로 내려간 적이 없는 도심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시원해서 에어컨은 물론, 방문은 닫고 창문만 열고 있어도 선풍기마저 필요가 없다. sns와 TV로부터 해방된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 책 읽고 글 쓰는 일 외에 하는 일이라고는 해준 밥 먹고 산책하는 것뿐 이라는 것이 너무 좋다 . 수십 년 동안 밥하는 일을 당연하게 생각했는데, 하루 세끼를 모두 남이 해준 밥을 먹으니 그동안 밥하는 일이 정신적으로 얼마나 부담스럽고, 시간을 많이 빼앗는 일이라는 것을 이제야 느낀다.

그곳 '글을 낳는 집' 에 들어가기 며칠 전 일이다. 밭에 애호박이 처음 열려서 가지랑 아욱을 따가지고 아흔네 살 되신 친정 어머니 댁에 들렸다. 아욱국과 나물들을 만들어 저녁을 먹으며 점심은 무슨 반찬에 드셨나 물었더니, 밥 챙겨 먹기 싫어서 과일로 때웠다고 하신다. 아침도 입맛 없다고 과일만 드시는데 걱정이다. 밥을 잘 챙겨 드셔야 한다고 하니 "이제 아무것도 하기 싫어 못 하겠다.", "내년 봄까지만 살았으면 좋겠다" 하신다. 된장까지 담그시던 작년과는 사뭇 다르다. 필자도 밥 안 하니 그렇게 편하고 좋은데, 어머니는 오죽하실까? "우리 집에 가서 사시게요." 하니 "그러기는 싫다" 하신다. 아들네 집도 가기 싫고 딸네 집도 안 가면서 언제까지 당신 집을 떠나지 않고 사실 수 있을 것인지….

삶의 실체는 어쩌면 밥 해 먹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사랑하고, 미워하는 일 그리고 문화, 예술은 그 후의 일이다. 빨래는 세탁기가 하고 청소도 로봇청소기나 전기 청소기로 하니 많이 힘들지 않을 뿐 아니라, 그 일들은 매일 하지 않아도 살아가는 데는 크게 지장이 없다. 하지만 먹는 것은 반드시 사람 손이 가야하고 하루도 거르면 안 되니 걱정이다. 그 연세에 스스로 씻고, 대소변 가리고, 밥 떠먹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혼자 생활하시기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다. 국가에서 요양보호사를 보내 돌봐주는 제도가 있지만, 어머니는 신체 능력 검사 자체를 거부하신다. 당신이 일상생활이 힘들어 남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으신 것이다.

아직 직장을 구하지 못해 힘든 사람들에게 요즘의 고물가는 쓰러져 누운 사람의 배 위에 바위를 놓는 꼴이 될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밥하는 일이 힘들다고 말하기엔 미안하다. 또 몸이 건강하지 못해서 집안일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죄송하다. 하지만 이 힘든 고물가는 언젠가는 사라질 날이 반드시 올 것이고, 취직 못한 사람도 언젠가는 취직을 하게 될 것이며, 아픈 사람도 언젠가는 나으리라는 희망이 있다. 그렇지만 어머니는 언젠가는 자식들과 영원한 작별을 하고야 말 것이다. 지난 일요일 비가 내리는데도 일행은 강원도 가리왕산 산행을 강행했다. 비로 인해 계곡물이 많이 불어 있었다. 천둥소리 같은 이끼 계곡의 폭포 소리는 "내년 봄까지만 살았으면 좋겠다." 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되어 나의 가슴을 때리는 듯했다. 꽃이 질 때 눈물 한 방울 떨구듯 어머니의 숨이 사위는 그 순간까지 지켜보는 일말고는 다른 방도가 없으니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