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오월에게 무엇을 전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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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우리는 오월에게 무엇을 전했나
도선인 사회부 기자
  • 입력 : 2022. 05.26(목) 13:05
  • 도선인 기자
도선인 기자
광주에서 5월은 해원(解冤)의 기간이었다. 추모식과 전야제 불을 밝혀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고 남겨진 자의 원통함을 풀 수 있도록 돕는 시간이다. 기념식 이후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국립5·18민주묘지엔 추모객들과 유가족들이 그곳에서 해원의 시간을 갖는다.

올해는 특히 고등학생 신분으로 희생된 양창근·김광복 열사의 사연이 기막히다. 최근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 따르면, 5·18 행불자였던 김광복 열사는 양창근 열사의 묘로 알려진 1묘역 38번 자리에 잠들어 있었다. 정작 양창근 열사는 무명열사 자리였던 4묘역 96번 자리에 잠들어 있었다.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장지가 뒤바뀐 기구한 운명이다.

지난 18일 기념식 참석을 위해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은 양창근·김광복 열사의 유족들은 그렇게 이날 한자리에 모였다. 김광복 열사의 형 김사익(70) 씨는 1980년 5월 사라진 동생을 찾고자 40여 년간 전국을 헤맸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 동생이 잠든 지도 모르고…. 5·18은 민주주의 상징과도 같아질 정도로 명예회복이 진전됐지만, 그의 시간은 동생의 시신도 찾지 못한 40년의 세월에 갇혀 원통한 맘을 풀어낼 길이 없었다.

어떻게 장지가 뒤바뀔 수 일어날 수 있었을까. 관계자들은 5·18민주화운동 직후 정권이 조직적인 조작과 은폐 시도가 있었다고 설명한다. 사인을 조작하기 위해 유가족들이 시신의 상태를 확인하기 전 개발도 안 된 망월동 묘지 땅에 묻어버리거나 서류를 수정한 것이다.

김사익 씨는 42년이 지나서야 동생을 찾았지만, 아직 비석을 고치진 않았다. 아니 못했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선 행방불명자로 남아있었던 김광복 열사를 사망 유공자로 심의받아야 하지만 갈 길이 멀다. 새로 확인된 사망자를 유공자로 심의할 수 있도록 하는 개정안이 통과돼야 하기 때문이다.

'오월을 드립니다.'

지난 18일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진행된 5·18민주화운동 42주년 기념식의 슬로건이다.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한 여야 의원들이 집결했고 코로나19 유행 이후 정상화된 규모였다. 대통령 취임사에서 끝내 '518 정신 헌법 전문 수록'은 언급되지 않아 아쉬움은 남았다.

광주의 5월은 해원의 길로 들어섰을까. 5·18행불자는 76명이 남아있다. 아직 이름을 찾지 못한 무명열사 묘는 2자리다.

도선인 기자 sunin.do@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