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두번째 오월, 그날의 아픔에 가슴막힌 유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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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두번째 오월, 그날의 아픔에 가슴막힌 유족들
목격자 돌린저, 가족과 함께 방문 ||이정연 열사 母 “5월 가슴 아려와” ||정해직 민원부장 “열사들 그리워” ||중년이 된 김복만 열사 아들들|| 양창근·김광복 열사 뒤바뀐 장지
  • 입력 : 2022. 05.18(수) 18:02
  • 도선인 기자

제42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이 18일 국립5·18민주묘지에서 거행된 가운데 5·18민주화운동 희생자 유가족을 비롯한 여러 관계자들은 먼저 간 이들을 그리워하며 묘역을 찾았다. 이들은 기념식이 끝나고도 한참을 묘역에 남아 희생자들을 추억했다.

최근 한국에서 5·18 회고록 '나의 이름은 임대운'을 출판한 푸른눈의 목격자 데이비드 돌린저 씨는 이날 가족과 다 함께 기념식에 참석했다.

최근 한국에서 5·18 회고록 '나의 이름은 임대운'을 출판한 푸른눈의 목격자 데이비드 돌린저와 그의 가족들이 18일 국립5·18민주묘지를 방문했다.

돌린저 씨는 "출판기념행사로 광주에 왔는데, 온 김에 묘지를 찾아 감회가 새롭다. 묘지만 해도 벌써 5번째 방문"이라며 "그날 함께했던 광주시민들을 여기서 보니 슬픈 시간이 생생 해진다"고 말했다.

그는 1980년 당시 영암보건소에서 미국 평화봉사단 일원으로 활동하던 중 우연히 광주에 오게 되면서 외국인으로 5·18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

특히 27일 최후의 항쟁 때, 옛 전남도청에서 시민군과 함께 하룻밤을 지새웠다. 미국으로 떠난 이후에도 한국인권단체 소속으로 활동하는 등 '5·18 알리기'에 노력했다.

옛 전남도청에서 최후의 항쟁을 지킨 이정연 열사의 어머니 구선악(82) 여사는 이틀동안 아들의 묘 앞을 지켰다. 구 여사는 "5·18 진상규명을 외치다 몇 년간 정부사찰을 당한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장성경찰서에서 15일간 붙잡혀 있기도 하고 경찰들이 시장까지 따라와 괴롭혔다. 집 밖을 못 나가 방에서 볼일을 봤다. 이 괴로움은 광주사람들도 모른다"고 말했다.

옛 전남도청에서 최후의 항쟁을 지킨 이정연 열사의 어머니 구선악 여사가 18일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아들을 그리워하고 있다.

이어 "깊은 한 때문에 가슴이 콱 막혀 지금도 속옷을 못 입는다. 이 아픔을 누가 달래 주겠냐"며 "정호용, 이희성 등 살아있는 신군부 핵심들은 더 늦기 전에 진실을 말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상원 열사 등과 함께 시민군 활동을 하며 1980년 5월 당시 민원부장을 맡았던 정해직(71) 선생도 이날 기념식이 끝난 뒤 잠든 동료들을 찾았다.

정 선생은 "5·18 당시 행정과 장례절차를 도맡았는데, 함께 했던 동료들이 눈물겹도록 그리운 날이다"며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 열사, 투사회보를 쓴 박용준 열사, 시민군 기획부장 김영철 열사, 시민군 홍보부장 박효선 열사 등 옛 동료들 덕분에 민주주의는 더 발전을 거듭해 5·18민주화운동 42주년을 맞았다"고 말했다.

정 선생은 1980년 20대 후반의 갓 부임한 교사였는데, 계엄령이 확대된 5월18일 광주에 왔다가 공수부대의 무자비한 폭력을 목격하면서 시민군에 합세했다. 그는 시민군 민원부장을 맡으면서 행불자 신고를 받고 사망자를 안치하는 등 대민 업무를 처리했다. 27일 최후의 항쟁 이후 상무대 영창으로 끌려가 수모를 겪었으며 이 일로 징역을 선고받아 해직되기도 했다.

영화 '화려한 휴가'에서 배우 김상경이 연기한 강민우 역의 모티브가 된 김복만 열사의 경우 두 아들이 중년의 모습으로 아버지를 찾았다. 1980년 택시기사였던 김복만 열사는 개인 차량을 통해 5·18민주화운동 부상자를 병원으로 이송했으며 도청 앞 집단발포 과정에서 희생됐다.

첫째 아들은 세살, 둘째 아들은 갓 태어났을 때였는데, 독재나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몰랐던 아이는 어느새 아버지의 나이를 뛰어넘었다.

김복만 열사의 첫째 아들 김일석 씨가 18일 아버지를 찾았다.

첫째 아들 김일석(45) 씨와 둘째 아들 김준석(43) 씨는 "어머니가 지난 2010년 암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아버지와 함께 합장해 모시고 있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먼저 보내고 오월어머니집 활동을 하며 평생 5·18을 위해 힘 썼다"며 "그동안 5·18을 폄훼하고 왜곡하는 말들로 인해 참 답답했다. 대통령이 기념식에 참석한 오늘 이후 소모적 논쟁을 끝내고 국민통합의 길로 나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양창근, 김광복 열사의 뒤바뀐 장지로 인한 유족들의 특별한 인연도 화제를 모았다. 양창근 열사는 신묘역에 자리가 마련돼 있었는데, 올해 초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 조사 결과, 실제 장지는 무명묘지에 잠들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양창근 열사 자리에 있던 장지는 김광복 열사였다는 것이 조사위의 결과였다.

김광복 열사의 형 김사익(70) 씨는 "지금까지 동생이 행방불명자 묘에 잠들어 있는줄 알았는데, 최근 조사위를 통해 양창근 열사 자리에 우리 동생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아직 장지 이전은 하지 않았는데, 양창근 열사 가족들과 참 특별한 인연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양창근 열사의 형 양중근(64) 씨도 "최근에서야 이 사실을 알게 돼 오늘 함께 이 자리에서 두 열사에 인사를 하고 있다"며 "그냥 인연이 아니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1월 세상을 떠난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인 고 배은심 여사는 남편 이병섭 씨와 구묘역 8묘원에 나란히 잠들어 올해 첫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을 맞이했다.

구묘역 3묘원에 잠들어 있는 아들의 묘에서 1㎞ 떨어져 있는 배 여사의 묘역에도 그를 기리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양창근, 김광복 열사의 뒤바뀐 장지로 인한 특별한 인연이 있는 형 양중근 씨와 형 김사익 씨.

도선인 기자 sunin.do@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