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이슈 61-1> 시대를 초월한 오월광주의 노래 '님을 위한 행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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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이슈 61-1> 시대를 초월한 오월광주의 노래 '님을 위한 행진곡'
●5·18 42주년 특집-기록을 넘어 시대를 넘어Ⅰ||1982년 황석열 주도 비밀리에 녹음||박기순·윤상원 등 청년들 추모의 뜻||노래굿 넋풀이 중 마지막 7번째 순서||녹음테이프 통해 전국으로 퍼져나가 ||민주주의와 함께 성장…세계로 전파
  • 입력 : 2022. 05.01(일) 18:29
  • 도선인 기자
5·18민주화운동 기록관에 전시된 '님을 위한 행진곡' 악보.
1982년 4월 마지막 주 어느 날, 광주 북구 운암동의 한 주택에서 조심스러운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자칫 음률이 틈새로 새어 나갈까, 창문과 문은 이불로 꽁꽁 싸맨 채. 그 유명한 '님을 위한 행진곡'이 포함된 36분2초의 노래굿 녹음테이프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7곡의 노래와 사설로 구성된 노래굿의 제목은 '빛의 결혼식'이다. 두 달 전 영혼결혼식을 마친 윤상원·박기순 열사의 혼을 달래기 위한 '넋풀이'가 제작의 이유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노래굿은 5·18민주화운동에서 희생된 광주시민들을 추모하고 그날의 진실을 비유적으로 함축하고 있다.

시작은 황석영 작가의 제안이었다. 당시 황 작가는 농촌 계몽운동을 목적으로 1970년대 후반, 그때만 하더라도 가난한 농촌 도시였던 광주에 머물렀다. 또 소설 '장길산' 연재를 할 때여서 작품 완성도를 위한 집필 장소로 광주가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광주에 살았던 황석영 작가는 1980년 5월 출판 일로 잠시 서울에 갔는데, 그 사이 광주에서는 비극이 일어났다. 봉쇄된 광주를 한참 만에야 찾을 수 있었던 황 작가의 일종의 마음의 빚은 5·18민주화운동 2주기를 앞둔 1982년, 기억을 위한 노래굿 제안으로 이어졌다.

김종률(당시 전남대 학생) 세종시문화재단 이사장을 중심으로 놀이패 광대 출신의 문화활동가들이 모였다. 대학가요제 입상 이력이 있던 대학생 김종률이 노래굿에 포함된 7곳을 작곡했고 황석영 작가가 백기완·문병란·김준태 시인의 작품을 참고해 가사와 대본을 써 내려갔다.

노래굿의 전반적인 구성은 전용호(당시 재야에서 문화활동) 소설가, 노래와 반주는 오정묵, 임영희, 임희숙, 윤만식, 김은경, 김선출 등 지역의 문화일꾼들이 힘을 모았다. 민청학련 사건을 겪었던 고 이훈우 선생이 가정용 녹음기를 빌려오기도 했다.

집 밖에서 들릴 듯 말 듯했던 노랫소리는 이후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특히 노래굿 중 마지막 순서였던 '님을 위한 행진곡'은 대학가와 재야에서 사람들의 입을 타고 빠르게 퍼졌다. 80년·90년대 대학가 신입생들은 악보도 없이 이 노래부터 배웠다. 노래는 전국의 거리에서, 민중들의 삶의 현장에서,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며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와 함께 성장해왔다.

노래가 널리 확산된 데는 기독교청년회의 도움이 컸다. 당시 재야의 활동가들은 정부의 눈초리가 덜한 종교단체를 이용해 정권을 반대하는 시국선언문이나 녹음테이프를 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기독교청년회 사무국에서 녹음테이프 복사본 2000개가 만들어져 서울 대학가에도 '님을 위한 행진곡'이 알려졌다.

노래가 대학가에서 처음으로 의미있게 불려진 것은 1982년 가을이었다. 전남대 총학생회장 신분으로 5·18민주화운동을 맞이한 박관현 열사가 은신 중에 발각돼 징역을 살았을 때였다. 박 열사는 옥중에서 '5·18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단식투쟁을 하다 눈을 감았다. 그의 장례식장에 모인 많은 대학생과 시민들이 경찰에 맞서 박관현 열사의 관을 지킬 수 있었던 방법은 다 함께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것이었다.

1991년 민중가요 노래패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3집 앨범에 이 노래가 수록되면서 대중화의 발판이 되기도 했다. 노래굿 녹음 당시 입대를 앞두고 있었던 김종률이 1년 뒤 휴가를 나왔는데, 대학 시위현장에서 노래가 불리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는 이야기는 유명한 일화다.

노래는 어느새 5·18민주화운동의 상징을 넘어 6월항쟁을 지나 촛불혁명에서도 어김없이 등장했다. 그리고 태국, 홍콩, 미얀마 등 각 국가에서 독립과 민주화를 열망하는 시민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한때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공식 지정곡으로 '님을 위한 행진곡'을 배제하는 등 제창을 허용하지 않으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5·18기념식이 1997년부터 정부 주관 공식 행사로 치러졌고 행사의 마지막은 '님을 위한 행진곡' 제창이었다는 점에서 이런 정부의 방침은 반발을 샀다.

'님을 위한 행진곡'은 문재인 정부 들어 비로소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제창이 가능해졌다. 2020년 5월에는 '님을 위한 행진곡'이 최초로 만들어진 황석영 작가의 자택이 있던 광주문화예술회관 국악당 옆에 표지석이 세워지기도 했다.

정병흠 5·18민주화운동기록관 연구실장은 "윤상원·박기순 열사의 영혼결혼식이 '님을 위한 행진곡'의 계기가 됐고 노래는 5·18민주화운동의 상징성과 진실을 밝히기 위한 도약판이 됐다"며 "정권이 바뀔 때마다 노래의 제창이 금지되는 수난을 겪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님을 위한 행진곡'은 민주·인권·평화를 열망하는 자리에서 빠지지 않았으며 최근 해마다 캄보디아, 홍콩, 태국, 미얀마 등에서 불리면서 민주화를 상징하는 세계적인 음악이 됐다"고 말했다.

도선인 기자 sunin.do@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