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이슈 61-2> "'님을 위한 행진곡'은 오월 정신을 압축한 것"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일주이슈
일주이슈 61-2> "'님을 위한 행진곡'은 오월 정신을 압축한 것"
●5·18 42주년 특집-기록을 넘어 시대를 넘어Ⅰ||김선출 ‘님을 위한 행진곡’ 제작 참여자||탈춤 추던 대학생, 5·18 선전 축으로||계엄군 진압 이후… 강제 징집 당하기도||황석영 집서 숨죽이며 연습·녹음
  • 입력 : 2022. 05.01(일) 18:29
  • 정성현 기자

김선출(現전남문화재단 대표이사) 님을 위한 행진곡 제작 참여자. 정성현 기자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

지난달 29일 무안군에 위치한 전남문화재단에서 만난 김선출(64·전남문화재단 대표·사진) 씨는 그날을 떠올리며 '님을 위한 행진곡' 가사를 읊조렸다. 어느새 그는 엄혹했던 시절 청년 김선출로 되돌아갔다.

●극회 '광대'로 시작된 인연

1977년 전남대 2학년에 재학 중이던 김씨는 '탈춤'을 좋아하던 사회과학도였다. 광주YMCA 탈춤강습회를 다니던 그는, 강습 수료생들을 중심으로 이듬해 전남 최초의 대학탈반인 '전남대 민속문화연구회'를 결성했다. 바야흐로 80·90년대 광주지역 문화의 선봉에 섰던 '극회 광대'가 시작된 셈이다.

김씨는 민중문화운동과 대학시위를 이어오던 중 계엄당국의 감시망에 걸리기도 했다. 이어진 도피생활 중에도 김씨의 '문화운동 열망'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1980년 1월 윤만식(전 민족극협회 이사장)·전용호('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공동저자) 작가 등이 속했던 전남대 탈춤·연극·국악반과 조선대 탈반 등을 모아 마당굿 문화운동을 여는 '극회 광대'를 결성했다. 본격적인 사회문화운동 조직화에 광주 운동권도 지원과 성원을 아끼지 않았다.

약 4개월 뒤 발생한 5·18에서 '극회 광대'는 도청 앞 궐기대회를 여는 등 항쟁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특히 들불 야학 활동에 전남대 탈반 출신들이 다수 참여했던 덕분에, 민중언론 인쇄매체 '투사회보'와 함께 대중 선전과 선동의 두 축을 이뤘다.

투쟁의 중심에 서 있던 김씨는, 도청 분수대에서 열린 26일 저녁 마지막 궐기대회에서 '전국민주학생에게 보내는 글'을 낭독하고 가족에게 이끌려 금동 집에서 다음날 아침을 맞았다. 김씨는 "계엄군의 진압 종료 이후, 전용호 작가와 함께 서울로 도피했다. 수배생활을 몇 달 지속하다 결국 구속됐는데, 곧장 505 보안대를 거쳐 상무대 영창으로 끌려가 강제 징집 당했다"고 말했다.

두 번의 제적과 복적 끝에 졸업하는 1985년 2월, 졸업식을 마치고 대강당 앞에서 탈춤반 후배들과 장구를 메고 짧은 축하공연을 하고 있는 김선출(왼쪽) 대표. 김선출 제공

극회 '광대'의 설립식 전단지. 김선출 제공

●급박했던 녹음 현장

"황석영·전용호·윤만식·오정묵·이훈우·김은경·임희숙… 아는 사람들이 방에 모여 있더라고"

김씨는 1982년 4월 '님을 위한 행진곡'을 녹음하던 그날을 회상하며 이같이 말했다. 상병 계급장을 달고 나온 군 휴가 날, 전용호 작가의 손에 이끌려 찾아간 장소에는 엄숙한 분위기 속 이들이 있었다.

그는 "대뜸 전용호 작가가 '황석영 선생님 집에 인사차 놀러가자'며 운암동의 한 양옥집으로 끌고 갔다. 담장에는 장미꽃이 화려하게 피어 있었고 마당에는 잔디가 푸르렀던 기억이 난다"며 "집 안에 들어서니 수 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광대'회원들을 비롯해 활동을 같이했던 문화활동가들이었다. 오랜만에 보니 반갑기도 하고… 말할 수 없는 감정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당시 황석영 작가는 문화운동가들을 모아 군부에 저항하다 목숨을 잃은 이들을 추모하는 노래극 '넋풀이'를 만들었다. 총 7곡의 노래 중, 마지막 곡이 바로 '님을 위한 행진곡'이다.

녹음 과정은 그리 녹록지 못했다. 혹시나 노래 소리가 새어 나갈까 온 창문을 담요로 덮어놔야 했고 불을 켤 수도 없었다. 김씨가 담당했던 꽹과리 등 반주 연습은 더욱이 어려웠다.

김씨는 "녹음 장소는 2층 서재였다. 그곳에 가니 여러 악보들과 시집들이 뒹굴고 있는 가운데, 황석영 선생님이 바닥에 앉아 가사를 쓰고 있었다"며 "노래는 금세 다 만들어졌다. 나는 당시 꽹과리를 맡았는데, 그 소리가 너무 커 문밖에서 채를 거꾸로 잡고 반주를 했던 기억이 난다"고 전했다.

김씨는 녹음을 마치고 부대로 복귀했다. 그 탓에, 한동안 이와 관련된 소식을 전해 듣지 못했다. 그는 "(군인 신분에도) 크게 신경쓰고 있지는 않았던 것 같다. 당시 이 노래가 이렇게 큰 파장을 일으킬 줄 몰랐다"고 소회를 밝혔다.

현재 전남문화재단 대표이사에 재직중인 김씨는, '5·18 역사를 기록할 방법'에 대해 심도 있는 조언을 덧붙였다.

그는 "'님을 위한 행진곡'은 5·18의 투쟁적 분위기와 비장한 의지 등이 잘 담겨있는 곡이다. 미얀마·볼리비아 등 해외에서 이 곡이 불리는 것은 5·18에 '인간의 기본적 지향점'이 숨어있기 때문"이라며 "이제는 미래 세대에게 전달할 수 있는 '5.18 콘텐츠 다양화'에 진지한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님을 위한 행진곡'악보 원본. 작곡한 김종률의 오선지 음표와 작사(백기완 시 인용)한 소설가 황석영의 친필이 제작 당시의 열악한 상황과 다급함을 말해주고 있다. 김선출 제공

정성현 기자 ju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