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적 유전자·손필영> 거짓말 같은 현실이 거짓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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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적 유전자·손필영> 거짓말 같은 현실이 거짓이기를…
손필영 시인·국민대 교수
  • 입력 : 2022. 01.19(수) 13:01
  • 편집에디터
손필영 시인
우리는 새 해를 두 번 맞이한다. 양력으로 12월을 보내면서도 복을 기원하고 음력으로 설날을 맞이하면서도 복을 기원한다. 지난 12월에는 유난히 추운 소식을 많이 접했다. 어머니를 모신 노인병원에 간병인 한사람이 코로나에 걸리면서 불과 열흘 사이에 150명이 넘는 사람이 코로나에 걸려 긴장의 연속이었는데 그 후 그 병원이 코호트 병원으로 지정되어 음성인 노인들은 갑자기 갈 데가 없어졌었다. 밀접 접촉자가 된 어머니도 받아주는 병원이 없어 애를 먹었다. 요즈음 이러한 경우가 한 둘이 아닐거라 생각한다. 아는 사람이 사무실로 점심을 배달해 먹는 식당이 몇 군데 있는데 그 중 두 군데 사장님이 12월 중순쯤에 목숨을 끊었다는 말을 했다. 맛있게 먹었던 그 음식들을 그들은 어떤 심정으로 만들었을까?

한해 한해 살아간다는 것이 정말 어렵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그래서 요즘은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마음이 더욱 큰 것 같다. 음력으로 한 해의 마지막 날, 섣달 그믐을 앞두고 또다시 춥고 아픈 소식을 접하지 않으면 좋겠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시 를 쓴 노작 홍사용은 연극 활동도 했고 민족의식을 드러낸 희곡작품도 여러 편 남겼다. 희곡 은 제목처럼 섣달 그믐날 밤을 배경으로 한다. 일제강점기에 쓴 작품이라 당시의 궁핍한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지만 아직도 이러한 현실이 우리 주변에 보이므로 이 작품을 떠올리면 언제나 가슴이 아프다. 섣달 그믐날 밤에 먹을 것도 없는데 집주인이 찾아와 집세를 내라고 창밖에서 바람처럼 소리를 치다 점점 더 거칠어지면서 문을 막 두드린다. 돈을 내지 않을 것이면 방을 빼고 나가라고 다그친다. 이 작품 안에는 또 다른 이야기가 등장한다. 가난한 할아버지가 배고픈 손녀를 달래며 말해 주는 동화는 한 나라 '임금님'의 모든 것을 거짓말 바람이 나타나서 하나씩 먹어치우다가 결국에는 다 먹어버린다는 이야기이다. '임금님'은 '거짓말'이 없어서 바람처럼 불어온 '거짓말'한테 당하는데 거짓말이 도둑질하는 것은 '임금님'을 사랑해 주던 늙은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의 생명이다. 이야기 밖의 극 중에서도 결국 거짓말이라는 바람이 의미하는 가난은 어린 손녀에게서 가족들을 모두 빼앗을 것이다. 무척 춥고 슬픈 현실이다. 2022년 설 밑 제석은 모두가 평안하면 좋겠다.

1988년 월북 작가들이 해금되기 이전에 중 고등학교를 다녔던 사람은 백석이라는 시인이 낯설 것이다. 그는 김소월과 같은 평안북도 정주 출신으로 조선일보 기자로 있다가 일제 강점 말기에는 만주국으로 가서 측량보조원으로 일하다가 해방 이후 고향으로 돌아왔다. 월남하지 않았으므로 한동안 그의 시는 우리 문학에서 언급되지 않았었다. 윤동주가 흠모했던 그는 현역 한국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 중의 한 사람이다. 그의 시 이라는 시는 명절날 이야기다. 명절날이 되면 '나'는 엄마 아배 따라 우리 집 개는 나를 따라 진할머니 진할아버지가 있는 큰집으로 간다. 거기에서 아버지 형제들과 사촌들이 모여 하루를 보낸다. "밤이 깊어가는 집안엔 엄매는 엄매들끼리 아랫간에서들 웃고 이야기하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윗간 한 방을 잡고 조아질하고… 홍게닭이 몇 번이나 울어서 졸음이 오면 아랫목싸움 자리싸움을 하며 히드득거리다 잠이 든다 그래서는 문창에 텅납새의 그림자가 치는 아침 시누이 동세들이 욱적하니 흥성거리는 부엌으론 샛문 틈으로 장지문 틈으로 무이징게국을 끓이는 맛있는 내음새가 올라오도록 잔다"를 보면 엄마들은 엄마들끼리 이야기하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지치지 않고 놀다가 새벽이 되어서야 잠이 들어 맛있는 냄새를 맡으면서 아침을 맞는 명절날 풍경이 보인다. 시인은 어린 시절에 살림살이가 여유는 없어도 고모들과 삼촌, 사촌 동생과 누이들과 어울렸던 명절날이 세월이 흐를수록 그리웠을 것이다.

명절엔 일가 친족들이 좁은 공간에 한데 어울려 음식을 나누어 먹으면서 복작거리는 맛이 있다. 올해는 코로나로 일가친척을 만나는 즐거움은 유보해야 하겠지만 같은 집안 식구끼리 어울리는 행복은 누릴 수 있으면 좋겠다. 경제적으로 어렵지만 가족과 친족끼리 의지하고 곁을 나누면 추운 시절을 춥지 않고 지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는 사이 아이들은 누군가를 보고 미래의 자신을 그려볼지도 모른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