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장 근처만 가면"… 광주시민 붕괴사고 트라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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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공사장 근처만 가면"… 광주시민 붕괴사고 트라우마
“일상서 중대재해 위협 상시 느껴” ||처참한 현장 연달아 목격 ‘참담’ ||재난심리회복지원센터 상담도
  • 입력 : 2022. 01.18(화) 17:35
  • 도선인 기자
광주 현대산업개발 신축 아파트 붕괴사고 발생 7일째에 접어든 17일 붕괴 사고 현장 인근에 신속한 실종자 구조작업을 기원하는 노란 리본이 매달려 있다. 나건호 기자
"광주시민들은 언제까지 일상에서 '붕괴' 위협에 시달려야 합니까"

문현철(27) 씨는 최근 광주 서구 화정동을 지나가며 붕괴된 신축건물의 단면을 보고 처참함을 느꼈다.

문씨는 "광주 도심 한복판에 붕괴된 고층건물 모습이 어디서든 적나라하게 보인다. 학동 참사가 발생한 지 1년도 안 됐는데, 현대산업개발은 무책임함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며 "광주시민들은 언제까지 일상의 위험에 시달리고 붕괴 트라우마에 시달려야 하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민 고모(72) 씨는 "며칠째 뉴스에 나오는 것을 보고 현장을 보고 싶어 찾아왔다"며 "학동때는 사고 현장을 직접 보지 못해 실감하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붕괴 모습을 두 눈으로 보니 너무 무섭다"고 말했다.

긴급 대피령이 내려진 금호하이빌 상가에서 장난감·문구 상점을 운영하는 국경리 씨도 사고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국씨는 "사고 상황이 제대로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경황이 없다. 콘크리트 벽들이 떨어지고 갑자기 정전됐는데, 어떻게 그 상황에서 빠져나왔는지도 모를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며 "지금은 건물만 봐도 가슴이 두근대고 붕괴하던 현장 모습이 자꾸 꿈에 나온다. 일대가 정상화돼도 다시 그곳에서 평소처럼 장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6월9일 17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학동 참사에 이어 불과 7개월 만에 광주에서 또 한번 건물 붕괴사고가 나면서 시민들의 참사 트라우마가 깊어지고 있다.

대한적십자사 광주전남지사는 현재 서구 화정동 사고 현장에서 재난심리회복지원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센터는 이번 붕괴사고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시민들을 대상으로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 17일까지 64명의 광주시민이 이곳에서 상담을 받았다. 18일부터는 서구에서 마음안심버스를 지원했다. 버스 내부는 개인 상담 공간, 스트레스 측정 공간, 휴게공간 등으로 구분돼 있다.

성주연 재난심리회복지원센터 상담가는 "사고 직후부터 붕괴 건물의 인근 시민, 실종자 가족 대상으로 상담을 진행 중이다"며 "사고를 직접 목격한 시민들이 트라우마 증상을 호소하고 있다. 악몽이 계속 반복돼 잠을 못 잔다거나, 식욕이 저하된다거나, 작은 소리에도 놀라는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학동 참사 당시 버스 내부를 최초 진입한 김영조 소방장도 이번 사고에 대해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김 소방장은 "현재 5개 자치구 소방서에서 붕괴현장에 구조대원들이 교대로 투입되고 있다. 우리야 사고 발생하면 첫 번째가 인명구조인데, 현장이 너무 처참하다 보니깐 구조가 늦어지고…. 구하지 못했다는 심적 부담감이나 죄송함이 크다"며 "붕괴사고라는 것이 사실 요즘은 찾아볼 수 없는 케이스인데, 광주에서 연달아 발생해 참담하고 안타깝다"고 말했다.

학동 참사 유가족의 트라우마 재발현 역시 지적됐다.

한 트라우마 전문 상담가는 "학동 참사가 현재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또다시 광주에서 건물붕괴사고가 발생한 것"이라며 "트라우마는 위협적인 죽음, 자신이나 타인의 극심한 위협이 되는 사건을 경험하거나 목격한 후 겪는 심리적 외상이다. 학동 참사 피해자들은 지금 이 사건을 보면서 그때의 기억을 마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지역의 정신심리학 상담사 역시 "트라우마는 개인적이면서 집단적일 수 있다. 이런 케이스는 집단 트라우마로 발현될 가능성도 있다"면서 "집은 익숙한 곳이며 안전한 곳인데, 그런 곳에서 발생한 참사다 보니 일반인도 심리적 불안감을 느낄 수 있다. 이런 불안증이 발생할 경우 즉시 심리상담을 받는게 좋다"고 말했다.



도선인 기자 sunin.do@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