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에세이·최성주> 에너지 전환정책, 국민 공감대 속 전략적 접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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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에세이·최성주> 에너지 전환정책, 국민 공감대 속 전략적 접근을
최성주 고려대학교 특임교수·전 주 폴란드 대사||48) 탈탄소, 탈원전과 에너지 안보
  • 입력 : 2022. 01.17(월) 13:00
  • 편집에디터

유럽연합(EU)은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국제적 노력을 주도하고 있다. 탄소중립은 기후변화에 따른 지구온난화를 해소하기 위한 필수 조치로서 2015년 파리기후협약에 따라 모든 국가는 이에 동참해야 한다. 탄소중립 추진 결과, 비(非)탄소 자원의 부족으로 에너지 대란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러한 현상을 '그린플레이션(green-flation)'이라 한다. 우리나라에서 태양광과 풍력 등 친환경 에너지의 비중을 70.8%까지 높이겠다는 발상은 앞에서 설명한 이유로 실현 가능하지 않다. 원전의 중요성이 재삼 부각되는 이유다. 전반적인 상황이 이러함에도 우리 국내에서는 '탈원전론자'들이 여전히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들의 핵심 논거는 원자력의 태생적 위험성이다. 물론, 원자력 에너지가 100% 완전무결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필자는 폴란드 대사로 근무할 당시, 현 정권의 전격적인 탈원전 정책으로 상당한 혼돈과 좌절감을 느낀 바 있다. 폴란드 에너지부와 외교부의 고위관리들은 한국이 국내의 원전을 감축하면서 해외수출을 추진하는 것을 납득할 수 없다고 언급했다. 그런데, 국내 '탈원전론자'들의 주장과는 정반대로, 글로벌 원전 시장은 최근 '부흥기(renaissance)'를 맞고 있다. 독일, 스위스, 덴마크 등 소수를 제외한 절대다수의 유럽 국가들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도 원전 재건과 해외 진출에 정성을 기울이고 있다. 작년 10월 11일 프랑스, 폴란드, 체코 등 유럽 10개국 장관들은 "우리는 원자력이 필요하다"면서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최선의 수단은 원자력"이라고 공동 발표했다. 취임 초기에 탈원전을 주창했던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은 소형모듈형원자로(SMR) 등 원전확대와 혁신정책을 공표하였다. 영국도 SMR 개발을 적극 추진하고, 중단된 원전 건설을 재개할 계획이다. 10년 전에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겪은 일본조차 원전 재가동에 돌입했다. 중국은 향후 15년간 최소 150기의 원전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한바 있다. 러시아도 동북단 추코트카 지역 등에 해상원전 4기를 건설하는 등 원전산업을 확대하는 중이다. 그러고 보니, 5개 안보리 상임이사국(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이 모두 '원전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

최근 30여년간 과학기술의 비약적 발전 덕분에, 원전의 안전성도 괄목할 정도로 개선되었다. 무엇보다도, 내진설계와 원격제어 기술의 발전으로 지진의 직접 충격에 따른 노심 용융이라는 재앙적 상황은 차단할 수 있다. 원전 폐기물의 경우, 사용후핵연료의 안전성 확보가 핵심현안이다. 이와 관련, 한-미 양국이 지난 10여년간 공동연구를 진행하여, 사용후핵연료를 4세대원전인 소듐냉각고속로(SFR)의 연료로 재활용하는 기술(즉, 파이로-SFR)을 개발하는데 구체적인 진전을 이뤄냈다니 다행스럽다. 작년 9월초 국내 일부언론은 이에 대해 보도한바 있다. SFR은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이 작년 6월 '미래 에너지산업의 게임 체인저(game changer)'라며 공동개발을 천명한 바로 그 원전이다. 우리의 원전 기술은 1978년 고리 1호기의 준공 이후 꾸준히 발전되어 왔다. 한국표준형 원전(KSNP)의 설계에 이어, APR-1400의 공인 확보 및 원자로의 완전국산화 달성, SMR관련 기술 개발 등 우리 원자력계가 이룩한 쾌거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미국, 영국 등 국제사회에서 널리 인정받고 있다. 현재 우리가 가동 중인 원전은 총 24기인데 이 중 영광원전(6기)은 우리 원자력발전량의 1/4을 담당한다. 탈원전 옹호론자들에게 묻는다. 한반도의 바로 맞은편 해안지역에 수십 기의 원전을 운영하거나 건설 예정인 중국에 대해서는 왜 침묵하는가? 또한, '평화적인 원자력 이용'의 전형(典型)인 한국 원전과는 정반대로 우리를 직접 위협하는 북한 핵무기에는 왜 꿀먹은 벙어리인가? 유엔 안보리는 10개가 넘는 제재(制裁)결의를 통해, 북한의 핵무기 개발이 NPT체제에 정면으로 도전한 불법행위임을 거듭 확인하고 있다.

원전 없이는 '기후대응과 경제회복'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없다. 탄소중립에 따른 산업계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한 에너지 믹스의 핵심은 바로 원전을 이용하는 것이다. 작년 10월 국회 입법조사처는 "현재 가동 중인 원전의 발전수명만 연장해도 정부가 제시한 탄소감축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연구보고서를 발간하였다. 국제사회의 기후변화 대응을 주도하고 있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원전 없이는 탄소중립을 이룰 수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2017년 탈원전 정책의 졸속 결정은 크나큰 혼란과 엄청난 예산낭비를 초래했다. 올봄에 출범하는 차기 정부는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국민적인 공감대를 모색하면서 신중하고 전략적으로 접근하기 바란다.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에너지의 확보는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의 책무이기 때문이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