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주 전남여성가족재단 원장 |
구술에 근거한 '가고 싶은 섬, 여성이야기' 시리즈와 '농촌형 여성친화마을 여성이야기' 사업을 진행하여 여든이 넘는 분들의 이야기를 기록했다.
지난해 전남여성구술생애사는 78세의 농촌의 어르신들이 손수 짓는 농사에 등장하는 토종 씨앗과 젊은 나이부터 토종 씨앗을 지키기 위해 애써오던 50대 여성 농부의 삶을 담았다. 농도인 전남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생물다양성 보존과 생명의 지속성을 기록한다는 의미를 갖는 토종농사를 짓는 분들의 이야기다.
농부는 굶어도 씨앗은 베고 잔다고 한다. 대대로 시어머니에서 며느리로 혹은 친정어머니가 딸에게 물려주었던 씨앗들, 신부의 가마 속 방석 아래에 깔고 왔던 곡식 낟알이나 가마 안에 함께 실어 왔던 볍씨 단지, 집안에 모셔둔 성주단지 속에 새로 채우는 쌀이나 나락만큼 귀한 것이 또 있었을까.
씨앗은 본디 생명을 담고 있다. 미래의 삶이 그 씨앗 안에 담겨 있다. 하지만 씨앗이 다국적 자본에 의해 점유되는 순간 씨앗은 생명이 아닌 돈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해 버렸고 이의 가장 큰 비극은 씨앗이 더 이상 생명의 지속을 보장하지 않게 됐다는 점이다. 씨를 받지 못하는 단종 씨앗들이 우리 농토를 채우고 있다. 대를 이어 보존된 우리의 씨앗은 다국적 자본의 생산성이라는 명제 아래 할머니들의 속주머니에만 머무르고 말았다. 그나마도 점점 사라져 간다. 다급한 일이다. 우리의 논두렁과 밭두렁을 가득 채웠던 다양한 생명의 씨앗들은 이제 더 이상 씨앗을 받을 수 없는 종자(終子)들로 대체되고 있기 때문이다. 남도의 땅에 뿌리를 박고 여기에 맞게 적응하며 살아갈 채비를 하는 토종 씨앗들을 소중히 받아 이 씨앗들에 맞는 방식으로 농사를 짓고 살아가는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구술 채록하고 기록하는 일을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다.
우리나라 식량자급률은 45.8%로 절반도 자체 조달이 안되고 있다. 곡물은 21%만이 자급으로 OECD에서 가장 낮다. 국제 공급망 교란과 기후변화 등에 따라 식량주권을 지킬 수 있는가 라는 문제를 고민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점이다. 농도 전남이 식량안보를 위해 향후 20~30년을 바라보며 준비해야 할 일이 있다는 이야기다.
생물의 다양한 종들을 보존하고 우리 땅과 씨앗에 맞는 농사법으로 농사를 짓고 있는 농민 김순덕과 안희순의 삶과 일상의 이야기, 젊은 시절 연두 마을을 만들어 토종 씨앗과 공동체 활동을 전개했던 변현단의 토종 씨앗을 지키기 위한 노력과 열정은 눈여겨봐야 할 대한민국 식량 생존을 위한 투쟁기다.
침체된 농업을 살리고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4차 산업혁명과 연계한 스마트농업과 사물인터넷 등 첨단기술과 전통적 토착 지식이 만나면 어떤 효과를 나타낼까. 전남의 53% 이상이 여성농업인이라고 했을 때 농민들의 뒤주에 있는 씨앗들을 모으고 토종농사를 짓는 토착 지식을 모아 스마트농법에 실어준다면 어떨까. 식량주권을 지키기에 어려워진 현실을 바라보며 전남이 전통과 미래를 엮어 미래의 식량을 준비하는 묵직한 대안을 내놓았으면 한다. 전남여성구술생애사 '토종 씨앗을 지킨 전남여성들'은 그런 면에서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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