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 "나쁜 것들 모두 물러가고 좋은 것들만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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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 인문학
이윤선의 남도인문학> "나쁜 것들 모두 물러가고 좋은 것들만 오라"
동곡박물관 꼭두에 기대어||남도 씻김굿 연행하는 길닦음||저승으로 가는 길베와 넋당삭||죽음의 강 건너는 배(船) 의미||||상여 상부 장식 '꼭두닭' 주목||닭의 울음으로 아침 여는 시작||인류 보편적인 원초적 관념||모든 것 엉망된 '코로나의 해'||꼭두에 기대어 장사 지낸다
  • 입력 : 2021. 12.30(목) 16:20
  • 편집에디터

광주 동곡박물관 전시. 이윤선

태초에 천지가 혼돈이었다는데요/ 하늘에서 청이슬 내리고 땅에서 흑이슬 솟아나/ 음양 상통 합수되어 만물이 생겨났드랍니다./ 천황닭 목을 들고 지황닭 날개를 치니/ 인황닭 꼬리쳐 울어 갑을동방 먼동이 터온 게지요./ 그뿐이것습니까. 궤짝에서 태어난 알지 말입니다./ 구름 속 황금상자 자색구름 타고 내려오는디/ 아, 순백의 닭이 나무 밑에서 울고 있지 않았겠습니까./ 호공이 아뢰니 왕이 친히 나가 상자를 열었는디/ 떡두꺼비 같은 아이가 울고 있어 알지라 불렀다지요./ 온 세상 물에 잠기게 되었을 적 계봉 꼭대기/ 딱 닭 한 마리 앉을 자리 남아있었기에 닭제산 아닙니까./ 닭벼슬 관모 자라 주작되고 봉황되었는디/ 어디 삼족오가 따로 있고 백제금동향로가 따로 있겄습니까/ 사우 자시라고 장모님 잡는 닭이 주작이고 삼족오인게지요./ 경주 천마총 수십 개의 계란이랑 닭뼈도 말입니다./ 상여 지붕 앉아 망자 인도하든 인로닭들이/ 닭베개, 나무닭 되어 무덤 안으로 스며들지 않았겠습니까/ 꼬끼오 울어 길 헤매지 않게 망자 머리맡에 앉아있는 게지요./ 닭아 닭아 우지마라 반야진관 몽상군 아니로다/ 네가 울면 날이 새고 날이 새면 내 죽는다./ 청이는 인당수 내려가던 날 이라고 노래했습니다만/ 닭제산 정기 받은 닭 울었으니/ 도로 연꽃으로 부활하지 않았겠습니까/ 오만 표정 몸짓하는 꼭두를 볼 때마다/ 상여에 올라 부활하는 꼭두새벽을 생각합니다./ 태백산 신단수에 여셨던 신시를 생각합니다./ 억만겁 죽음 돌아 재생하고 거듭나는/ 망자들의 일어섬을 생각합니다./ 꼭두는 지금도 다시 태어나는 중입니다.

광주 동곡박물관 전시. 이윤선

졸시 '꼭두닭(이윤선, <그윽이 내 몸에 이르신 이여>, 다할시선 008)'의 전문이다. 현용준이 쓴 「제주도 신화」(1976. 서문당)에 보면 보다 자세한 내용이 서술되어 있다. 세 마리의 닭이 등장하여 세상의 시작을 주도한다. 태초의 암흑, 혼돈을 물리쳤으니 개벽(開闢)이다. 세상이 처음으로 생겨 열리는 것, 혹은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천지창조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닭이 새벽을 깨우고 아침을 여는 동물이라는 점 불문가지, 신화뿐만 아니라 수많은 시인묵객들의 노래에도 닭은 시작과 개벽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나는 이태 전 1년간 월간 <기독교사상>에 '전통문화와 기독교의 화해를 위하여'라는 제목으로 연재를 했다. 내가 시종 주력했던 것은 기독교에서 발신하는 거듭남과 부활의 의미를 우리 민속 전반에 흐르는 재생과 갱생의 의미에 병치(竝置)시키는 일이었다. 성만찬식과 우리네 제사의 음복을 연결시키고 예수 부활의 골고다 동굴을 단군탄생의 동굴과 고인돌에 등치(等値)시키며 심청과 다시래기 등을 읽어내는 작업이었다. 여기서 중요하게 다루었던 테마가 '꼭두'다. 그 일부를 다시 인용하여 공부자료로 삼는다.

광주 동곡박물관 전시. 이윤선

상여의 꼭두닭, 부활을 예비하는 상례(喪禮)

이승과 저승을 가르는 기점에 상례와 상여가 있다. 이른바 요단강 건너가는 저승의 길, 한국의 전통문화에서는 상여와 닭이 어떻게 관념되고 있을까? 남도의 씻김굿에서 연행하는 길닦음, 저승으로 가는 길베와 넋당삭도 그 중 하나다. 죽음의 강을 건너가는 배(船)라는 의미다. 특히 상여의 상부에 장식한 '꼭두닭'이 주목된다. 상여를 장식하는 꼭두 중에 닭을 새긴 목각품이다. '꼭두'는 무엇인가? '허깨비'를 말하기도 하고 정수리나 꼭대기를 말하기도 하며 혹은 남사당패의 우두머리를 지칭하는 용어로도 사용되었다. 아주 이른 새벽을 나타내는 '꼭두새벽'이란 용례도 있지 않은가. 뾰족하게 세워서 만든 어떤 형용일 텐데, 이것이 꼭두머리 등의 용례처럼 어떤 일의 맨 처음이라는 뜻으로 쓰였음을 상기한다. 망자가 마지막 가는 길 의례와 장식들인데 왜 처음의 의미를 갖는 꼭두가 등장할까? 망자가 피안으로 향해 가는 길을 안내하는 중국의 인로계(引路鷄)가 우리의 꼭두닭과 같다. 김성순이 「한중 민간장례습속에 나타나는 망혼의 안내자들-인로계와 꼭두닭을 중심으로」, 「중국인문과학」(65호), 2017)에서 자세하게 밝혀두었다. "한대(漢代)의 묘지 안에 부장된 목계(木鷄, 나무로 만든 닭)나 계명침(鷄鳴枕, 닭모양 베개)이 존재한다는 사실에서 장례에 닭을 사용하는 유래가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지면상 다각적인 논의를 소개하지는 못하지만, 내가 주목하는 것은 닭의 울음과 달걀이라는 명료한 모티브다. 예컨대 불교의 가릉빈가(迦陵頻伽, Kalavinka)나 힌두교의 가루다(Garuda)처럼 저승이나 이상세계의 이동과 보호의 의미로 안착된 개념들보다 재생과 거듭남의 욕망이 더 원초적일 수 있다는 뜻이다. 닭은 아침을 선물하는 영물이다. 닭이 울지 않으면 아침이 오지 않는다. 개인의 삶과 죽음, 심지어 나라의 시작과 종말, 세계의 시작과 종말에 연루되어 있다. 고대의 무덤 부장품으로부터 현대의 혼인 및 상례 등 갖가지 의례와 문학적 수사(修辭)에 이르기까지 매우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관념 중 하나다. 기독교의 부활절에 달걀을 사용하는 것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전통적인 기제사나 차례 제사 등에 반드시 달걀을 놓아야 한다는 풍속도 관련하여 해석해볼 수 있다. 의미들이 확장되고 재구성되어 종교적으로 문화적으로 갖은 개념들을 포괄하게 되었지만, 닭이 알을 낳는 생산의 의미, 울음을 울어 아침을 여는 시작의 의미는 인류 보편의 원초적 관념이다. 상여에 닭을 만들어 세우고 때로는 봉황으로, 때로는 용으로 확장시킨 사람들의 마음을 주목한다. 모든 의례는 사실 죽음(죽임)과 갱생의 서사를 지닌다.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려 죽고 3일 만에 동굴에서 부활한 것이나, 진도의 '다시래기'가 아이 낳는 장면을 정점으로 서사화되어 있는 것도 크게 다르지 않다. 탯줄을 잘라내지 않으면 탄생이라는 사건이 성립되지 않듯이, 이전의 것을 잘라내고 장사지냄으로써 새로운 탄생을 예비할 수 있다. 코로나로 엉망이 되어버린 신축년, 동곡박물관 꼭두에 기대어 코로나의 해를 장사지내는 뜻이 이러하다. 아듀! 신축년, 나쁜 것들 모두 물러가고 좋은 것들만 오라.

광주 동곡박물관 전시. 이윤선

남도인문학팁

명소의 탄생, 광주 동곡박물관

인사동 꼭두박물관 외에 꼭두를 전시한 박물관이 있다기에 한달음에 찾아간 것이 벌써 일 년여 전이다. 광주 광산구 보문고등학교 내에 있는 동곡박물관, 광주에 또 하나 명소가 탄생했다고나 할까. 3층 안쪽을 할애해 전시한 꼭두의 양이 만만치 않다. 이민주 학예사의 얘기로는 수장고에 저장된 꼭두와 상여 등 관련 유물이 훨씬 방대하다. 아마 해를 바꾸어 시리즈로 전시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동행(同行), 꼭두를 만나다>는 2020년 12월 개관기념 상설전시로, 개관특별전 <고조선에서 조선까지-민족의 얼을 찾아서>와 더불어 2022년 3월 14일까지 연장된다.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1764년) 등 국보급 자료들이 인상적이었다. 내가 꼭두에 관심이 많아 그렇지 사실은 역사적이고 예술적인 유물이나 전시가 두드러지는 곳이다. 동곡박물관은 보문고등학교(보문복지재단) 설립자인 고 동곡(東谷) 정형래 선생의 호를 따서 붙인 이름이다. 3층 100평 규모로 기획전시실, 상설전시실, 수장고, 자료실 등이 있다. 개관한 지 1년여라 온전히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지난 11월 <한국금관 최초발견 100주년 기념>이라는 주제로 제1회 학술대회를 시작하는 등 활동에 박차를 가하는 모습이다. 전국적으로 국가나 지자체 외에 사설 박물관들이 많지만, 광주에 이만한 명소를 가질 수 있는 것, 남도사람들의 축복 아니겠는가. 장도를 기원한다.

광주 동곡박물관 전시. 이윤선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