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 판소리와 고수… 한국'소리' 이끄는 자웅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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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 인문학
이윤선의 남도인문학> 판소리와 고수… 한국'소리' 이끄는 자웅동체
일고수 수고수 ||고수의 역할은, 반주자로서의 구실||지휘자로서의 구실, 상대역의 구실||효과나 조명을 대신하는 구실||청중 대변하는 구실로 나눌수 있어||이들 역할이 종합적이고 총체적으로||드러나야 좋은 고수라 할 수 있다
  • 입력 : 2021. 12.23(목) 16:20
  • 편집에디터

판소리고법 김명환. 한국학중앙연구원

2013년 흥미로운 뉴스가 한 일간지를 장식했다. 크라운해태제과, '판소리 100인 떼창' 세계 기록 인증이라는 한겨레신문 기사였다. 윤영달 회장과 임직원 100명이 함께 부른 판소리 '사철가' 떼창(합창)에 관한 내용을 담았다. 100인의 판소리 떼창은 윤회장이 도창(導唱, 창을 이끄는 사람)으로 판소리 단가 <사철가> 첫 도입부 <이산 저산 꽃이 피니>를 선창하고 임직원 100명이 각자 북을 치며 장단을 맞추는 형식이었다. 사철가 떼창이라고 밝히긴 했지만 사실은 100명의 고수들이 각자 북을 잡고 앉아 행한 고법의 일환이기도 했다. 그간 크라운해태제과 윤영달 회장이 국악에 쏟은 정성과 관심이 이런 형태로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고수(鼓手)는 무엇이고 고법(鼓法)은 무엇인가. 판소리는 신재효가 정리한 '광대가'를 통해 그 대강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고수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판소리 고법(鼓法)이란 무엇인가

한국민속대백과사전의 고수 항목을 집필한 김혜정은 고수를 이렇게 정의한다. "예로부터 '일고수 이명창' 또는 '수고수 암명창'이라는 말로 고수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고수의 역량에 따라 판소리가 살아나기도 하고, 오히려 소리를 망치기도 하므로 소리 속을 이해하고 거기에 맞게 북을 연주하는 고수의 존재가 판소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고법은 고수마다 조금씩 다르기도 하고, 지역 차이를 보인다." 일고수 이명창이라고 하면 고수가 창자보다 우위에 서는 존재라고 해석하는 이들도 있지만 판소리 문법상 고수가 먼저 '내드름'을 내기 때문에 생긴 소리다. 판소리를 하기 위한 반주로서의 장치 정도로 이해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암수'의 비유에서 보듯이 판소리와 고법은 뗄 수 없는 자웅의 관계다. 서울시 무형문화재 판소리 고법 항목에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판소리 고법은 판소리가 정착한 조선 중기 이후에 생겨난 것으로 판소리에 맞추어 고수가 북으로 장단을 쳐 반주하는 것을 말한다. 고법은 판소리의 반주이기 때문에 고수를 내세우는 일이 없어 조선시대에는 이름난 명고수가 매우 드물었다. 또한 고수를 판소리수업의 한 방편으로만 여겨온 까닭에 고법의 발달이 미미하였다. 조선 후기에 들어 판소리가 매우 다양한 특성을 지니고 발전함에 따라 고법도 발전했으며, 19세기 말에 이르러서는 전문적인 고수들이 나와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되었다." 문맥에 암시가 있다. 19세기에 이르러 고법만 비약적인 발전을 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사실은 자웅동체인 판소리 또한 고법과 더불어 급격한 발전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모흥갑 판소리도. 서울대학교 박물관 소장

모흥갑의 고수 주덕기

서울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여덟폭 짜리 <평양감사부임도> 중 한 폭을 감상해본다. 전설적인 명창 모흥갑이 소리하는 모습이다. 대동강 능라도 풍경, 왼쪽에 명창 모흥갑이라는 글씨는 있다. 고수에 대한 정보는 없다. 그냥 반주자여서 그랬을까? 이 그림을 분석하면 창자와 고수의 자웅동체 구성이 한눈에 읽힌다. 오른손에 채를 높이 들어 내리치려는 순간을 포착했다. 이런 자세는 북통 꼭대기를 내리치는 대점장단에 해당한다. 매화점을 치기 위한 동작을 이렇게 그리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소리북의 형태도 지금과는 다르다. 기산 김주근의 여러 풍속화에서도 볼 수 있듯이, 지금의 소리북 형태는 후대에 이르러서야 고정된 형태다. 모흥갑이 부채를 들고 소리를 하며 고수가 왼발을 북에 대고 북이 밀리지 않도록 하는 자세는 지금의 법도와 같다. 이 고수가 누구일까? 박황이 쓴 '판소리 소사'에 보면, 주덕기가 송흥록, 모흥갑의 수종고수였음을 밝혀두었다. 그래서다. 최초의 판소리 그림 평양감사부임도에 나오는 능라도 판소리는 모흥갑이 소리하고 주덕기가 북장단을 맞추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를 번복하는 논고가 나오지 않는 한, 향후 모흥갑 판소리도를 해설할 때는 '평양 능라도 평양감사도 중 모흥갑의 판소리와 고수 주덕기'라고 할 필요가 있다.

고법(鼓法)의 역사에 대하여

고법과 관련한 전설적인 명고들의 행적은 부분적으로만 보고되어 있다. 판소리처럼 가락의 특징이라든가 계보적 맥락이 충실하게 보고되지 않았다. 권삼득의 수행고수는 가왕 송흥록의 부친인 송첨지다. 송흥록의 수행고수는 동생인 송광록과 주덕기다. 박기홍의 수행고수는 박지홍, 모흥갑의 수행고수도 주덕기다. 박만순의 수행고수는 이날치, 이날치의 수행고수는 박판석이다. 고종 말기와 일제강점기의 명고수로는 강경수, 신찬문, 박판석, 오수관, 오성삼, 주봉현, 신고주, 한성준, 이흥원, 지동근, 정원섭 등이 있다. 일제강점 말기에는 김재선, 이정업, 김명환, 김득수, 김동준, 한일섭 등이 있다. 완도, 강진, 보성, 고흥 등지에서 고수로 활동하던 사람들로는, 김연수의 수행고수였던 송의종과 벌교에서 활동하던 윤석강 등이 있다. 이 중 가장 독보적인 존재는 전설적인 명인 한성준이다. 고법사에서 한성준과 김명환이 중요한 기점들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에 큰 이의는 없을 듯하다. 여기 덧붙여 고흥 출신의 고수 오성삼을 거론하기도 한다. 김명환은 '북을 치는 법'이란 뜻의 '고법(鼓法)'개념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킨 인물이다. 자세론, 고장론, 연기론 등으로 분화시켜 설명하거나 그 이론을 발달시켜 온 사람들이다. 고수의 역할은, 반주자로서의 구실, 지휘자로서의 구실, 상대역의 구실, 효과나 조명을 대신하는 구실, 청중을 대변하는 구실 등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물론 이 역할론이 고수의 유형을 구분하는 절대기준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대체로 이들 역할이 고수의 역할에 중첩되거나 병행되어 드러난다. 이들 역할이 종합적이고 총체적으로 드러나야 좋은 고수다. 이제부터라도 주목할 일은 판소리와 고수가 자웅동체라는 점, 상호 견주며 오늘날 한국의 최고 성악으로 발전시킨 두 주역이라는 점일 것이다. 2021년 광주문화재단 전통문화관 주관으로 감남종을 중심으로 한 판소리고법 보고서가 제출되었다(책임연구원 박종오). 나는 고수의 역사와 활용방안 두 꼭지를 맡아 판소리와 고법 발전에 일조하고자 했다.

남도인문학 팁

판소리고법, 오성삼 김명환 감남종까지

오성삼은 전남 고흥 출신으로 진양장단의 4각을 맺고 푸는 것을 한시의 기승전결 이론과 결부시켜 기경결해(起景結解)라 불렀다. 진양의 24박 이론의 체계다. 김명환, 김연수, 감남종 등 많은 제자가 이 이론을 받아 공부했다. 동초 김연수와 일산(一山) 김명환(金命煥)이 핵심을 이룬다. 뿌리깊은나무에서 시리즈로 냈던 구술자료집 중 <내 북에 앵길 소리가 없어요>가 그의 책이다. 명창이 득음을 얻는다면 일산은 득도를 얻었다고나 할까. 임방울, 정응민 등 수많은 근현대 명창의 북 반주를 맡았다. 일산은 해남사람 감남종에게 이산(二山)이라는 호를 주었다. 이후 감남종(甘南淙)은 목포 최초의 국악원 강사 장월중선의 고수가 되었다. 고법은 판소리와는 다르게 1978년에야 판소리 고법으로 무형문화재에 지정되었다. 1991년 제5호 판소리와 통합되었다. 현재 국가지정문화재로 목포사람 김청만(2013)과 함평사람 박시양(2021)이 있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