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 지역 소멸 시스템을 혁신하는 패러다임의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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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 인문학
이윤선의 남도인문학> 지역 소멸 시스템을 혁신하는 패러다임의 전환
제철먹거리 관계인구||땅의 기운과 마을 정기 빼앗는||지력 약탈·소농 수탈농업 탈피||소농들 유기적으로 참여·연대||자연 순환형 생태 농자재 개발||노지 농업 중심의 생태형 농장||지역 생태보전 운동 적극 참여||가치 먹거리 공동 브랜드 사용
  • 입력 : 2021. 12.09(목) 15:37
  • 편집에디터

낙지의 부화, 줄탁동시(啐啄同時)에 기대어

지난 11월 26일 해남 신활력플러스추진단 강당에서 괄목할 만한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이름이 '땅끝 제철 진미 파티', 현재 5회째, 매달 한 번씩 연다. 11월 주제가 '낙지'였다. 남도 어느 지역이고 다르겠는가만 해남은 특히 사시사철 먹거리가 그치지 않고 순환되는 지역이기도 하다. 좋은 땅에서 좋은 먹거리가 순환되니, 제철의 맛있는 음식 나눔이라는 게 당연하고 또 마땅한 발상일 것이다.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 수준이 아니다. 모이신 분들의 생태적인 태도와 의지, 또 실천의 이력들을 보니 바로 이것이 지역을 살리는 첩경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선 김에 낙지에 대해 몇 마디 축하 말씀을 드리고 왔다. 낙지를 소재로 글을 쓰거나 강연을 할 때 늘 인용하는 말들이다. 낙지 한 마리를 먹으면 쓰러진 소도 벌떡 일어난다는 말. 남도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아는 얘기다. 소가 새끼를 낳거나 더위 먹어 쓰러졌을 때 낙지를 호박잎에 싸서 먹이는 사례들이 그것이다. 정약전이 쓴 '자산어보'에는 마른 소에게 낙지를 서너 마리 먹이면 곧 강한 힘을 갖게 된다 했다. 정약용이 노래한 '탐진어가'에는 남도의 어촌에서 모두 낙지로 국을 끓여 먹는다고 했다. 붉은 새우와 맛조개는 맛있다고 여기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낙지는 부모를 보지 못하는 어종이다. 어미는 알을 구멍에 붙이고 난 후 한순간도 쉬지 않고 발로 알들을 어루만진다. 어미닭이 알을 품어 부화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새끼들의 알 속 활동에 대해서는 아직 연구된 바 없지만 나는 이것을 줄탁동시(啐啄同時)라 불러왔다. 어미의 여덟 개 다리가 어루만지는 활동에 상응하는 내적 추동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부모와 자식의 사랑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으리라. 자신을 위해 헌신한 부모들을 먹고 구멍 속으로 나오는 낙지의 얘기는 감동이다 못해 슬프기까지 하다. 우리의 삶이 그러하다. 자식을 위해 있는 것 없는 것 쏟아부어 양육하는 부모의 마음이 그러하다. 줄탁동시가 어디 낙지의 탄생에만 국한되겠는가. 제철 순환 먹거리의 생태와 대칭되는 지점에 '관계인구'가 있다.

지역을 살리는 분권과 자치 운동, 무엇을 줄탁동시해야 하는가

분권과 자치라는 시대적 화두, 입바른 소리 곧 모양만 좋은 미사여구 수준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이 같은 실천이 뒤따라야 한다. 무엇과 무엇을 줄탁동시 해야 할까. 행정과 민간이, 사주와 노동자가, 부모와 자식이, 남자와 여자가, 뭍과 물이, 우주와 자연이 그리해야 하는 것 아닐까. 무너져버린 농촌과 농업 혹은 어촌과 어업, 버려지고 소외된 땅, 한가지 작목으로 대규모 농사를 지어야 성공하는 불합리한 구조를 양산한 이 시스템을 어찌해야 할까. 장차 견주거나 기대거나 상호작용을 해야 할 줄탁동시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저 빠듯이 문화의 일면을 탐구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 나로서는 분간하기 어려운 일들이긴 하지만, 이런 양상은 농사에 그치지 않는 것 같다. 중앙에 대응하는 지방 혹은 지방에 대응하는 중앙이 그렇고, 대규모 콘텐츠에 집중투자하는 문화 시장이 다르지 않다. 줄탁동시의 상실이랄까. 한쪽에서는 쏟아붓고 또 한쪽에서는 무엇엔가 의지해야 연명하는 구조를 어찌 탈피해야 할까. 바람직하고 건전한 총화에 이르는 대칭성을 잃어버린 편향되고 왜곡된 사회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해남 신활력표 가치먹거리에 거는 기대

박상일 대표는 농촌신활력플러스 추진단을 기획하고 운영하며 '가치와 같이', '해남 신활력표'등의 슬로건을 개발했다. 100여 개가 넘는 전국 농촌신활력플러스 사업단 중에서 유일하게 가치 창조 농업을 지향하는 공동체 아닌가 싶다. 정부의 지원이 끊기면 고사하는 지원 의존형 사업이 아니라, 기초부터 차근차근 자생력을 키워나가는 소규모 중소농사공동체를 복원해 가는 실험이기도 하다. 박상일 대표의 진단은 이렇다. 가격 중심 시장은 가치 중심 시장으로, 농산물 생산지라는 개념에서 공익적 기능을 중시하는 개념으로, 소품목다생산(포드주의)에서 다품목소량생산으로, 타인노동 의존농업에서 가족농업으로 복원하는 것 말이다. 이미 시대가 그리 변해왔다. 유럽의 가족농업이 이를 말해준다. 코로나 이후를 위한 능동적 진단과 실천이 기대되는 대목이다. 그래서 제안하는 것이 해남 가치먹거리와 생태농업이다. 자연 순환형 생태 농자재 공동개발 이용, 노지 농업을 중심으로 한 생태형 농장 디자인, 생태농업 실천 협약과 자주 관리 시스템 적용, 지역 생태보전 운동 참여, 신활력 가치 먹거리 공동브랜드 사용 등이다. 이를 위해 해남 공동체 혁신파크를 건설하고 있으며 이 센터를 통해 생태환경 기반 소농들이 유기적으로 참여하고 활용하고 연대하는 디딤돌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이것이야말로 기왕에 해왔던 지력 약탈농업, 소농 수탈농업 등 땅의 기운을 빼앗고 마을의 정기를 빼앗고 종국에는 지역이 소멸해가는 시스템을 혁신하는 패러다임의 전환이지 않겠는가. 지방인구 급감의 위기도 이른바 관계인구라는 대안으로 풀어가고 있다. 보다 직접적인 방법으로는 해남 북일면의 작은학교살리기추진위원회 사례가 있다. 폐교위기에 처한 학교를 살릴 방안으로 할머니 학생 등 묘안을 생각했고 전입자들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으로 15가구 모집을 했더니 63명이 신청했다고. 5년 이상 머물 수 있는 학생 포함 가구를 우선 선발한단다. 그간의 관계창출형, 관계심화형을 넘어서는 또 다른 관계인구 확대라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남도인문학팁

관계인구와 '같이'하는 '가치'

'같이' 가야 '가치'에 이른다. '같이'의 유의어는 '공히', '아울러', '골고루' 등이다. 사전에서는 이렇게 풀이한다. "경험이나 생활 따위를 얼마 동안 더불어 하다", "어떤 뜻이나 행동 또는 때 따위를 서로 동일하게 취하다". '같이 가기'의 반대말은 '달리 가기'다. 따라서 '같이' 가는 '가치'는 사전적 풀이의 'value'나 'worth' 즉 "사물이 지닌 쓸모", "대상이 인간과의 관계에 의해 지니게 되는 중요성", "인간의 욕구나 관심의 대상 또는 목표가 되는 진, 선, 미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의 '가치(價値)'에 국한되는 게 아니라 '더불어'요 '공명'이며 '공생'이며 '대동'으로 나아가는 첩경이라 생각된다. '같이'는 '모두 우리'이고 '전부 다 함께'이며 사람과 자연이 더불어 사는 '공생'이다. 여기서 '가치'가 나온다. 문제는 '같이'의 주체가 울타리 안의 '우리'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관계인구'다. 자치와 분권을 주장하면 지역의 토호(土豪)를 연상하고, '저희들끼리'로 폄하하는 오해를 불식시킬 방안이기도 하다. 관계인구는 2016년 일본 시민활동가 다카하시 히로유키가 처음 내놓은 개념이다. '교류인구'가 관광객이나 일시적인 방문 등의 일회적인 관계라고 하면, 관계인구는 보다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주기적으로 거주하는 인구를 말한다. 귀향, 낙향, 귀농, 귀촌 등의 정주인구에 비해 느슨한 관계이긴 하지만, 예컨대 십일조 헌금을 고향교회에 내는 관계라든가, 제철먹거리를 늘 순환 교류하고, 농사의 주기 내내 도심인구와 농어촌 인구가 직접 관여하고 소통하는 그런 관계 말이다. 고향사랑기부제(고향세)나 무연고자들의 귀촌 여가생활 등이 사례다. 인구절벽시대 지방소멸론을 불식시킬 해남의 작은 실험을 주목하며 한없는 응원을 보낸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