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적 유전자·김정태> [임팩트 시대가 왔다] 마네킹이 달라진다. 우리의 삶도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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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적 유전자·김정태> [임팩트 시대가 왔다] 마네킹이 달라진다. 우리의 삶도 달라진다.
김정태 엠와이소셜컴퍼니(MYSC) 대표이사
  • 입력 : 2021. 11.24(수) 14:43
  • 편집에디터

이랜드 스파오 평균체형 마네킹 비교. 이랜드 제공/뉴시스

김정태 MYSC 대표

옷을 사기 위해 매장을 방문한다. 마네킹이 입은 옷 조합이 너무 마음에 들어 피팅룸에 들어가 실제 착용해본다. 거울에 비친 모습이 어색하다. 아까 마네킹이 입은 옷과 동일한 옷인데 느낌이 왜 이리 다를까? 패션 크리에이터 '치도'는 누구나 공감되는 이런 경험을 사회적인 측면에서 새롭게 정의하고 변화를 시도했다. 국내 1호 내추럴사이즈 모델이기도 한 '치도'는 마네킹이 표현하는 왜곡된 메시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남자 마네킹은 신장 190㎝, 여성 마네킹은 신장 184㎝ 표준으로 나오지만, 실제 한국 25~34세 남녀의 표준은 남자 신장은 172.8㎝, 여자 신장은 160.9㎝였다. 다양한 초기 모형을 만들자 주변의 피드백은 예상과는 달리 부정적이었다. '왜 못생긴 마네킹을 만들려고 하느냐'와 같은 피드백은 우리의 몸을 '못생겼다'라고 보는 인식을 반영한다. 치도는 바디 포지티브(body positive)라는 개념을 통해 우리 몸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개개인의 사회활동과 자아실현에 가장 기본적인 출발점이라고 생각했다. 다행히 마네킹이 완성되자 주변은 "마네킹의 목적을 그대로 구현한 진짜 마네킹이 나타났다"고 환호했다.

마네킹을 실제 매장에 세우는 것은 다음 목표였다. 여기에는 이랜드의 스파오 브랜드가 ESG 차원에서 적극 협력하기로 했다. 크라우드 펀딩에 올려진 마네킹 제작 프로젝트는 오픈 5시간 만에 목표 대비 200%를 넘어섰다. 제작된 '현실적인 마네킹'은 스파오의 플래그십 스토어로 운영 중인 코엑스점과 스타필드 안성점에 비치가 되었다. 기존의 '비현실적인 마네킹'과 비교해 새롭게 설치된 남성 마네킹의 키는 7.2㎝ 줄어들었고, 허리인치는 2.3인치 굵어졌다. 여성 마네킹 역시 키는 24㎝ 줄어들었고, 허리 둘레는 5.9인치가 추가되었다. 마네킹이 달라졌고 매장을 방문한 분들의 자기 인식도 긍정적으로 변해가기 시작한다.

패션 크리에이터 '치도'는 '전국에 깔린 마네킹을 개인이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란 질문에 위축되지 않았다. 모든 마네킹을 한 번에 바꿀 수는 없지만 한 번에 하나의 마네킹을 바꿀 수 있다면 언젠가 모든 마네킹이 다 바뀔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다. 이러한 개개인을 우리는 '체인지 메이커'라고 부른다. 제작된 '현실적인 마네킹'이 실제 현장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모험에 가까운 이러한 시도를 적극 수용하고자 하는 기업도 필요했다. 이랜드는 고객으로부터 '마네킹이 왜 이런 못생긴 모습인가요?'라는 민원을 받을 우려도 있었지만 과감하게 매장의 마네킹을 교체했다. 그 어느 때보다도 기업이 고객의 가치 전달 외에도 기업이 가진 비재무적 영향력을 긍정적으로 개선해야 함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업들의 모습은 ESG(환경, 사회, 거버넌스)를 향한 기업의 변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작은 변화는 모여서 결국 시스템의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 사업 초기부터 '경력단절여성'이라는 단어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위커넥트라는 소셜벤처는 용기있게 '경력보유여성'이라는 단어를 계속 확산했다. 처음 듣는 누군가는 미사여구일 뿐이라고 생각했을 것이고, 이름이 바뀐다고 세상이 변하는 것은 아니라고도 생각했을 수 있다. 수년간 꾸준히 '경력보유여성'이란 단어를 확산해온 위커넥트에게 기쁜 소식이 지난 11월 4일 있었다. 성동구에서 국내 최초로 '경력보유여성 조례'를 제정하고 구 내의 행정용어에서 '경력단절여성'이란 단어를 퇴출한 것이다. 게다가 경력보유여성 경력인증서를 발급하고, 구 내의 경력보유여성으로 구성된 권익위원회도 구성하기로 한 것이다.

성동구의 시작은 다른 지역에서도 확산되는 첫 걸음이다. 이랜드 스파오 매장에 설치된 '현실적인 마네킹'은 다른 매장, 그리고 다른 브랜드로 확산되는 첫 걸음이다. 이렇게 변화는 아주 작게, 변화라고 느껴지지 않을 만큼 조용하게 시작된다. 매장에서 플라스틱 빨대가 사라지고, 마트에서 플라스틱 봉지가 사라지듯, 마네킹도 달라진다. 우리의 인식도, 우리의 삶의 질도 달라진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