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朴祥)의 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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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
박상(朴祥)의 결기
  • 입력 : 2021. 10.04(월) 17:11
  • 최도철 기자
'바람이라도 구름이라도 쉬어 넘는 고개, 산지니 수지니 해동청 보라매라도 쉬어 넘는 고개' 갈재 옛길이 나라에서 정하는 명승(名勝)이 된다고 한다.

갈재는 장성 북일 목란마을에서 정읍 대흥 군령마을로 넘어가는 고갯길로 입암산에서 방장산까지 이어진다. 그리 높진 않지만 영남대로의 문경새재가 그렇듯, 갈재는 삼남대로의 호남지역을 연결하는 길목으로 사람사는 사연들과 자취가 면면히 스며 있다.

갈재는 이야기가 있는 문화유산길이다. 등짐을 진 보부상도, 과거를 보러 가는 선비도, 임지로 부임하던 관리도, 귀양길을 떠난 죄인도 이 고개를 넘나들며 숱한 사연들을 남겼다.

갈재에 관한 옛이야기 가운데 16세기 호남의 대표 사림(士林) 박상(朴祥)과 고양이에 얽힌 이야기가 자못 흥미롭다.

1506년 8월 전라도 도사로 부임한 박상은 원성이 자자한 나주의 천민 우부리(牛夫里)를 잡아다 장살(杖殺)에 처했다. 딸이 연산군의 애첩이 되자 그 권세를 등에 업고 부녀자를 겁탈하는 등 패악질을 일삼은 죄를 물은 것이다.

하지만 왕의 장인을 쳐 죽였으니 그 또한 중벌을 면치 못할 터. 왕명으로 의금부도사가 사약을 가지고 나주로 내려오고, 박상은 우부리의 죄상을 왕 앞에서 낱낱이 밝히기 위해 상경한다.

한양길에 나선 박상이 갈재를 넘어 갈림길에 이르렀는데, 고양이가 나타나 바짓가랑이를 물어 채기에 기이 여겨 샛길로 따라갔다. 의금부도사와 눌재의 길이 운명적으로 엇갈려 사약을 피하게 되었고 곧바로 중종반정이 일어나 화를 면했다. 평생 강직하고 바른 행실 탓에 옥에 갇히고 좌천됐던 박상을 하늘이 도운 것이다.

박상은 고양이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 광주 광산구 오산동에 묘답(苗畓)을 마련해 고양이의 고마움을 잊지 않았다고 한다.

20대 대선을 앞두고 터진 '대장동 개발 의혹'에 선거판이 갈수록 어지럽다. 7년 근무 50억 퇴직금, 1000만원 투자 120억원 배당…, 기가 막힌 대장동 돈잔치에 이 땅의 숱한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이 깊은 허탈감과 함께 분노를 터트리고 있다.

여든 야든, 법조인이든 언론인이든 누구라도 가릴 것 없다. 온 천하에 실체가 낱낱이 밝혀져 다시는 이 나라에 모리배나 협잡꾼이 활개치고 천장부(賤丈夫)들이 농단(壟斷)하는 일이 벌어져서는 안된다. 불의에 맞서 왕의 장인을 척살한 박상의 결기가 가상하다.

최도철 기자 docheol.choi@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