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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
뚝배기
김선욱 서울취재본부 부장
  • 입력 : 2021. 09.26(일) 14:11
  • 서울=김선욱 기자
김선욱 서울취재본부 부장
아침, 저녁으로 쌀쌀하다. 가을의 4번째 절기, 추분(23일)이 지나고 낮 보다 밤이 길어지면서 가을 색도 점점 짙어지고 있다. 뜨거운 국물요리가 생각난다. 우리나라는 음식을 덥혀 먹는 난식(暖食) 문화권에 속한다. 냉식(冷食)에 가치를 두는 유럽과는 음식 문화에서 차이가 있다.

옛 기록을 보면 술을 따뜻하게 마셨다. 이규보의 시 '겨울밤 산사에서 간소한 주연을 베풀다'에 막걸리를 데워 마신 내용이 나온다. '조선왕조실록' 세종17년(1435) 1월17일 기록에는 '음복에 데운 술을 쓰게하다'라고 써있다. 데우는 정도는 찬 기운을 없애는 '거냉( 去冷)'이라고 했다. 새끼 손가락을 넣어 체온 정도일때 가장 맛이 난다. 화주(火酒)로도 불렸던 소주는 뜨거운 밥을 덮었던 주발 뚜껑에 따라 거냉해 마셨다. 그렇게 데워 마시고 다음날 아침 해장할 땐 뜨거운 국물 음식을 찾았다. 반면, 유럽은 술도 양주도 얼음 없이 못 마신다. 맥주는 차지 않으면 그 맛이 반감된다. 해장 역시 냉장고에 넣어 둔 차가운 오렌지 쥬스다.

음식을 먹을 때 내는 소리에도 상반된 문화가 있다. 서양에선 후루룩 쩝쩝 소리내어 먹는 것을 불쾌하게 여긴다. 우리는 국물 하나라도 소리내어 마셔야 맛있게 먹었다고 생각한다. 이유는 음식의 냉온에 있다. 차가운 음식은 소리없이 먹을수 있다. 하지만 뜨거운 음식은 입을 통해 그 기운을 내뿜어야 제 맛이다.

그래서 일까. 음식에 열을 가할때 쓰는 단어가 굉장히 많다. 굽는다, 그을린다, 익힌다, 설익힌다, 삶는다, 볶는다, 끓인다, 달군다, 데친다, 달인다, 지진다, 찐다, 데운다, 눌린다, 튀긴다, 부친다 등등. 가열 방식에 따라 쓰이는 말도 다르다. 직접 불에 굽는 것을 '번(燔)', 꼬치에 꿰어 굽는 것을 '자(炙)', 진흙으로 싸서 굽는 것을 '포'라 구분해 썼다. 삶는다는 말은 증(蒸), 자(煮), 팽(烹) 등으로 구별했다. 가열 시간이 짧지만 센불을 '무화(武火)', 가열 시간이 길지만 약한 불을 '문화(文火)', 잿불을 '여화(女火)'라고 구분했다. 어휘의 풍성함에서 다양한 요리의 맛이 읽힌다.

열을 가장 오래 유지시켜 주는 토속 식기가 있다. 흙으로 만든 뚝배기다. 뚝배기로 조리하면 각 식재료들에 열이 잘 전해져 고루 익는다. 재료 고유의 맛이 살아나고, 서로 잘 섞여 깊고 진한 맛을 낸다. 우리 식문화에서 왕좌를 차지한 이유다. 뚝배기 한 그릇 생각나는 날이다.

서울=김선욱 기자 seonwook.kim@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