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 한반도 비핵화 '신뢰의 문지방'을 넘어서자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이윤선의 남도 인문학
이윤선의 남도인문학> 한반도 비핵화 '신뢰의 문지방'을 넘어서자
종전선언 ||휴전선 비무장지대라는 공간과 종전선언이라는 상징적 의례는 ||한반도 비핵화를 넘어 세계평화의 전이지대, 그 문지방을 넘어서는 의례일 수 있다.||종전선언을 해야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할 수 있으며||항구적이고 불가역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할 수 있다.
  • 입력 : 2021. 09.23(목) 16:44
  • 편집에디터
그룹 BTS(방탄소년단)이 2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 총회장에서 열린 제2차 SDG Moment(지속가능발전목표 고위급회의) 개회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종전선언이야말로 한반도에서 '화해와 협력'의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나는 오늘 한반도 '종전선언'을 위해 국제사회가 힘을 모아주실 것을 다시 한번 촉구하며,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가 모여 한반도에서의 전쟁이 종료되었음을 함께 선언하길 제안합니다. 한국전쟁 당사국들이 모여 '종전선언'을 이뤄낼 때, 비핵화의 불가역적 진전과 함께 완전한 평화가 시작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9월 21일 미국 뉴욕 유엔 총회장, 문재인 대통령이 행한 기조연설 중 한 대목이다. 각국의 언론들이 주목했다. 지지하거나 비판하는 분석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불가역적인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의 마중물이라는 평가가 있는가 하면 실효성 없는 미련한 처사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북한이 호응할 일도 없으려니와 키를 쥐고 있는 미국이 움직일 리도 없다고 단언하기도 했다. 정녕 그러한 것인가? 2018년 유엔총회 연설, 2019년 연설에 이은 세 번째 종전선언 제안이다. 모두 항구적인 평화체제의 문을 여는 이른바 '종전선언 입구론'의 제창이었다. 올해는 선언의 주체로 중국을 포함시켰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혹자들이 평하는 대로 정권 유지를 위한 '이벤트' 만들기일 뿐일까? 비핵화 조치와 종전선언이 흥정대상이 아니라는 미국의 의중이 그 중심에 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해야 종전선언이 가능하다는 뜻인데, 문 대통령의 제안은 역으로 종전선언을 먼저 하자는 것 아닌가. 이 제안을 허투루 넘기기 어렵다. 나는 지난 2018년 '한국민속학자대회'를 주최하며 이와 유사한 제안을 했다. 한국민속학 관련 학회들이 연합해 만든 한국민속학술단체연합회장을 맡고 나서 내가 꾸린 첫 주제가 '황해에서 경계를 넘어선 한민족을 보다'였다. 강등학이 '아리랑'을 매개로 분단의 극복과 남북의 호혜 교류를 제안하였다. 그렇다고 무작정 남북문화의 이질성을 동질성으로 포장하거나 주장한 것은 아니다. 당시 우리가 가장 경계했던 것은 '동질성 회복'이란 용어가 갖는 폭력성이었다. 70여 년이 넘는 분단의 현실을 존중하자는 것, '서로 다름'에 대한 예의를 갖추자는 것이었다. 내가 구상한 계획대로 발표들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다양한 장르를 교직하며 생산해낸 논의들이 고무적이었다. 물론 북한민속학연구소장의 초청과 발표는 무산되었다. 조총련계 재일학자의 발표도 막바지에 무산되었다. 이들의 초청이 어렵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으나 동분서주 발로 뛰어다니던 터라 허탈감이 컸다. 그렇다고 포기할 필요는 없었다. 목표나 목적은 같을지라도 그에 이르는 길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빅터 터너의 코뮤니타스(communitas), 문지방 넘기

종전선언은 일종의 상징적인 것이다. 인과 관계가 복잡할수록 상징의 단계나 구성 또한 복잡하다. 예컨대 극적인 경험 사례를 설명하거나 풀이하기 위해서는 일상적인 체험이나 레벨로는 불가능하다. 휴전 중인 남북의 상황이 그렇고 이념적으로 문화적으로 이질화되어 가는 남북의 현실이 그렇다. 하나의 키워드로 풀어내기에는 이미 한 갑자를 돌아 서버린 세월의 폭이 너무 크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상징은 상징화법으로 풀어야 한다. 그 토대에 의례가 있다. 빅터 터너를 인용한다. 아프리카 은뎀부 사회를 장기간 조사한 터너가 제안한 이론이다. 반겐넵의 통과의례(the rite of passage) 개념을 통합한 것으로 흔히 사회극(social drama)이라 한다. 최소의 단위는 상징(symbol)이다.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몽환적으로 들리겠지만 '신비한 존재나 신비한 힘에 대한 신념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 상징이다. 추석 명절에 차례를 지내는 것도 그렇고 현대화거나 은닉된 각양의 의례들, 그 안에 포섭된 무의식적 상징들이 그렇다. 예컨대 어떤 남자와 여자가 손을 잡고 호텔에 들어가면 불륜이다. 하지만 성혼선언을 마친 후라면 혼인의례요 거룩한 첫날 밤이다. 이들이 밖에서 호텔이라는 방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문지방' 즉 경계다. 통과의례의 기본적인 문법이다. 분리되고 전이되며 재통합하는 과정을 거친다. 문명권별로 문화권별로 사뭇 다른 상징들이 있다. 고대의 동양이라면 나무로 깎은 기러기 한 쌍을 상징으로 삼았을 것이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손을 잡고 건너던 군사분계선이 이 상징의 대표적인 금이자 경계였다. 상징적인 '문지방'을 넘었던 것 아닌가. 이것이 '문지방성'이다. 터너는 코뮤니타스(communitas)라 했다. 신성하고 종교적인 단계의 상황이나 공간을 말한다. 나도 올초 '한국인은 도깨비와 함께 산다'라는 책을 내며 이 전이지대에 대해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이도 저도 아닌 상태(betwixt and between)다. 도깨비의 출몰지를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사람도 신도 아닌 중간지대에 도깨비가 산다는 뜻에서 그렇다. 이 과정이 복잡할수록 상징 또한 복잡하다. 복잡한 상징일수록 이 과정이 음양으로 엉켜있다. 이런 점에서 휴전선 비무장지대는 세계사에서 독특한 상징공간이다. 70여 년의 세월을 지나오며 인(原因)에서 과(結果)에 이르는 '이도 저도 아닌' '전이'의 과정이 얼마나 복잡했겠는가. 사정이 이러하니 북핵을 포기해야 종전선언이 가능하다거나 평화협정이 이루어져야 종전이 가능하다는 등의 언술은 이 선언이 상징적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지 않은 비판이다. 역설적으로 종전선언이라는 의례를 통해 북한의 핵개발을 저지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휴전선 비무장지대라는 공간과 종전선언이라는 상징적 의례는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신뢰의 문지방을 넘어서는 일뿐만 아니라 세계평화의 전이지대, 그 문지방을 넘어서는 의례일 수 있다. 종전선언을 해야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할 수 있으며 항구적이고 불가역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할 수 있다. 종전선언 제안을 두 손 들어 환영하고 지지한다.



남도인문학팁

방탄소년단(BTS) 유엔본부 공연에 기대어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제안과 더불어 유엔본부에서 펼친 방탄소년단의 '퍼미션 투 댄스(Permission to Dance)' 영상이 공개 이틀도 안 되어 조회수 1,200만 회를 돌파했다. 유엔 유트브 계정에 있는 모든 영상 중 가장 많은 조회수라 한다. 인터뷰 영상 또한 수백만 뷰를 달성하며 그 인기를 확인해주었다. '미래세대와 문화를 위한 대통령 특별사절단' 자격으로 참여한 이들에게 찬사가 쏟아졌다. 유엔 사무차장, WHO(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 등은 BTS 영상이 전 세계를 하나로 연결했다고 호평하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리더 RM 김남준은 이렇게 말했다. "저는 여러분 모두에게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무엇이 여러분의 심장을 뛰게 만듭니까? 여러분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여러분의 목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신념을 듣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누구이든, 어느 나라 출신이든, 피부색이 어떻든, 성 정체성이 어떻든 여러분 자신에 대해 이야기 해주세요. 여러분 자신에 대해 말하면서 여러분의 이름과 목소리를 찾으세요." 그렇다. 우리는 아직 휴전 중이며, 이도 저도 아닌 전이공간 휴전선을 공유하고 있다. 비무장지대 자체가 상징공간이며 남북분단 자체가 세계사의 상징 사건이다. 와중에 또 하나의 '문지방 넘기'를 방탄소년단이 연행해준 셈이다. 지금 우리에게 당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상징을 풀어내는 코뮤니타스 의례라고 생각한다. 지금 나의 가슴을 떨리게 하는 것 말이다. 비무장지대가 남북을 넘어선 인류의 레퓨지아(refugia)가 될 수 있다. 종전선언이라는 상징을 상징의례로 받아들이고 풀어내길 희망한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