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위해 목소리 높였지만…" 공익제보자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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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정의 위해 목소리 높였지만…" 공익제보자의 눈물
명진고 전 이사장 비리 제보 후 해임 복직 후 창고행 “인격권 침해” ||인화학교 교직원, 장애학생 성폭행 폭로 가해자 복직·제보자는 해고 ||광주시립요양병원 ‘80대 치매 노인 폭행’ 고발 직원들에 왕따·배신자 낙인 ||“공익제보 후회없지만 제보자 보호는 꼭 필요”
  • 입력 : 2021. 09.15(수) 17:50
  • 양가람 기자
피해자 가족 등으로 구성된 시립 제1요양병원 노인환자 폭행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대책위원회는 지난 2019년 2월 18일 오전 광주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80대 치매 환자를 폭행해 다치게 한 혐의 등을 받던 전 광주시립 제1요양병원장이 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것과 관련, 검찰의 항소를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우리 사회의 검은 비리는 숨어있는 공로자들 덕에 세상에 알려질 수 있었다. 공익제보자들의 용기로 세상은 조금씩 변해 왔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정의를 위해 목소리를 내는 이들을 보호하지 못했다. 지역을 떠들썩하게 했던 큰 사건의 공익제보자 3인의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한다.

●인격권 침해한 명진고

학교 비리를 제보했다. 불의를 보고 도저히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돌아오는 대가는 혹독했다. 광주 명진고 손규대 교사의 이야기다. 지난 2020년 12월, 학교법인 전직 이사장의 비리를 공익제보했던 손 교사는 곧바로 해임됐다.

당시 명진고를 운영하는 도연학원 최신옥 전 이사장은 손 교사 채용과정에서 금품을 요구한 사실이 드러나 지난해 1월 배임수재 미수죄로 징역 6개월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돼 수감생활을 했다.

반면 학교는 '영어 듣기평가 때 나태했다'는 등 이유로 손 교사를 해임했다. 또 변호사를 선임해 손 교사 해임에 반발하는 글을 올린 학생들을 고소했다.

이후 손 교사는 7개월 만에 복직했다. 손 교사의 복직은 교원소청심사위원회가 해임 취소 처분을 내림에 따라 이루어졌다. 그런 그에게 학교는 물품창고에 해당하는 1층 통합지원실에서 대기하라고 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손 교사는 교사 단체 대화방에 참여하지 못했고, 여학생 기숙사를 담당하게 하는 등 부적절한 업무 부과가 이어졌다. 사회과 교사들의 협의 과정 없이 손 교사를 2개 학교 순회교사로 지정하고, 손 교사 자리를 전 이사장 딸 바로 앞에 배치했다.

수개월에 걸친 이런 행위는 결국 8월23일 국가인권위원회가 명진고에 손 교사에 대한 인격권 침해에 해당한다는 판단을 내리는데까지 이르렀다.

한 번의 제보가 오랜 시간 한 교사의 피를 말린 것이다.

●신분노출 뒤부터 지옥… 광주시립요양병원

"직원들로부터 왕따 당하고 배신자로 낙인찍혔다. 동료들에게 손가락질 당할 때 가장 가슴이 아팠죠."

지난 2017년 광주시립제1요양병원에서 발생한 80대 치매 노인 폭행사건을 고발한 '공익제보자' 이명윤(41)씨는 정의감에 잘못된 것을 제보했지만 신원이 노출되면서 인생이 곤두박질 쳤다.

그는 병원 측이 병원 3층 폐쇄회로(CCTV) 녹화영상을 폐기하도록 지시한 사실을 외부에 알려 병원의 부조리를 막는데 큰 공을 세웠다.

그러나 자신이 공익제보자라는 것이 알려진 다음날부터 출근길은 '지옥'이 됐다. 친했던 동료들은 그에게 모두 등을 돌렸고, 그를 '투명인간' 취급했다. 병원 관리업무를 담당하던 이씨에게 병원 측은 어떠한 일도 맡기지 않았다.

결국 이씨는 2017년 10월부터 2018년 1월까지는 재택근무를 하다, 병원 운영 법인이 바뀌면서 2018년 2월 퇴사했다. 퇴직 이후 1년간 구직활동도 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그는 공익제보자를 '배신자' 취급하는 사회적 편견과 경제적 어려움, 건강악화 등 2차 피해를 겪으면서 전남일보와 인터뷰에서 "당시에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했었다"고 털어놨다.

●세상 바꿨지만 결국 해고… 인화학교

영화 도가니로 알려져 있는 '광주 인화학교' 사건. 이 사건은 당시 교사였던 청각장애인 전응섭 씨의 고발로 세상에 드러났다. 전 전 교사는 미디어에서 "피해 학생이 여자 선생에게 말했으면 누구라도 나섰어야 했어요. 그런데 나서지 않는 거죠"라며 그때의 분노를 떠올리기도 했다.

전 전 교사는 인화학교 학부모 등과 협력해 해당 사실을 세상에 알렸다. 그 가치 있는 행동으로 인화학교 김모 교장(2009년 9월 사망), 행정실장 김모 씨(63), 교사 전모 씨 등 6명은 청각·지체장애 학생 9명을 성폭행한 혐의 등으로 재판을 받았다. 허나 이들에 대한 최종 형량은 실형 2명, 집행유예 2명, 공소시효 소멸에 따른 공소기각과 불기소 2명 등이었다. 사건에 연루된 교사 1명은 학교로 복직까지 했었다. 반면 전 전 교사에게 돌아 온 것은 해고였다.

이 사건은 지역의 공분을 불러 일으켜 학교는 폐교되고 2011년에는 장애인 아동에 대한 성범죄의 처벌을 강화하는 '성폭력범죄 처벌 특례법 개정안'이 통과되는 등 변화를 이뤘다. 그럼에도 전 전 교사의 삶은 공익제보 이전과 이후가 크게 달라져 버렸다.

●후회 안하지만 보호대책 절실

공익제보자들은 한결 같이 자신의 행동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 말한다.

공익제보로 인해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렸지만 그럼에도 이들은 "후회는 없다"고 담담히 털어놨다.

광주시립제1요양병원의 제보자 이씨는 공익제보자를 '배신자' 취급하는 사회적 편견과 경제적 어려움, 건강악화 등 2차 피해를 겪으면서도 "범죄 사건인데 덮으려고 하는 자체가 용납이 안됐다. 이대로 끝나면, 평생 후회하면서 살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씨는 "내부고발 이후 힘든 나날을 보내는 사례가 많으면, 사람들은 범죄행위를 알면서도 진실을 밝히는 것을 두려워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며 "애초 공익제보자들의 신원이 노출되지 않도록 정부차원의 대책마련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일각에선 사회의 정의를 지키고자 용기를 내 입을 연 이들에게 보상은커녕 피해만 돌아온다면 누구도 입을 열지 않을 것이라 우려했다.

공익제보자들을 지지하고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신변 노출로 피해를 입고 있는 제보자들을 위해 보복행위를 한 기관 및 책임자에 대한 형사처벌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공익제보자들의 인권침해를 예방하기 위한 상담 등도 이뤄지는 등 최대한의 보호가 있어야 용기를 내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양가람 기자 lotus@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