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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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
추석에 대한 단상
노병하 사회부장
  • 입력 : 2021. 09.15(수) 14:04
  • 노병하 기자
노병하 사회부장
시골로 가는 길은 항상 어두울 때 쯤이었다.

노을을 등지는 방향으로 차를 몰고 가면, 이내 어스름한 어둠이 감싸오고 서늘한 바람이 느껴질 때 쯤 저멀리서 익숙한 돌 담벼락이 보였다.

벌써 모인 친척들의 목소리는 담장을 넘었고, 그 소리에 절로 미소가 걸린다. 사람들이 모이면 피곤한 일이야 다반사요. 골치 아픈 이야기에 때로는 묻지 말아야 할 것도 술기운을 빌어 묻는 짖궂은 이도 늘상 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같은 핏줄들을 만나는 것은 불편함보단 반가움이 먼저다. 나이가 들면서 이는 더하다.

아울러 부족하나마 준비해 온 선물을 트렁크에서 꺼내며 대문을 열고 도착했음을 알리는 그 순간, 반기는 사람들이 달려 나오고 이 찰나가 우리 명절의 전부이자 정체성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반기는 웃음에 때로 무거운 시간도, 때로 아픈 시간도, 안개 속 같은 앞으로의 길에 대한 걱정마저 한 귀퉁이부터 녹아들고, 다들 삶의 고단함이 묻어나는 얼굴로 내 어깨를 두드리면 그간 뻣뻣했던 어깨도 서서히 풀어진다.

그래 올해도 어김없이 한가위는 돌아왔다. 동그란 달도 그때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을테고 시골의 밤하늘도 항시 고즈넉하고 넉넉할테지.

허나 사람들의 동네는 만나는 기쁨과 아스라함을 잃어 버린지 벌써 2년째다. 자연은 그대로인데 인간사만 복잡해 모일 수도 없고 모여서도 안되는 세월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지난해와 다르다면, 백신 접종을 맞은 이들이 어느 정도 된다는 것이겠지.

좀만 더 참을 수 밖에 없지 않겠나. 지나온 20여 개월을 돌아보자. 우리들은 어찌 보냈나.

일상이 좁아지고, 삶이 단조로워 지며, 사소한 즐거움이 남에게 피해를 주게 되고, 만나서 나누는 즐거움이 되려 모두를 힘들게 만들던 나날들을 버텨내며 살았다.

구름이 좀 걷힐 만 하니, 누군가 마치 기우제라도 지내듯 모여 난리 치길 여러 번.

집 앞 놀이터에 아이를 보내는 것 조차 가슴 떨려 하던 시간들이 우리를 지나갔다.

그렇게 오래고도 지난한 일상을 버텨내 온 우리에게 지난해에 이어 다시 큰 보름달이 뜬다. 작년에 보지 못해 죄송하다고 전화를 드린지 엊그제 같은데 뭘 했다고 다시 또 큰 달이 뜨나 싶지만.

우리는 치열하게 살았고, 힘겹게 살았으며, 그래서 무사히 또 올해도 못 뵙는다 말씀 드릴수 있는 것이겠지.

보고 싶고 애처롭고 외로운 마음, 이해 못하는 바 아니나 다만 좋은 사람 더 오래 만날 수 있게, 그리운 사람 더 오래도록 함께 할 수 있게,

올해까지만 보름달은 멀지만 애틋한 한 마음으로 바라보도록 하자.



노병하 기자 bhno@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