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인간답게 잘 사는 세상을 향한 한 법관의 외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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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인간답게 잘 사는 세상을 향한 한 법관의 외침
  • 입력 : 2021. 09.09(목) 14:33
  • 박상지 기자

그래피티의 세계적인 거장 존원이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 로비에서 '인권'과 '사회적 약자 보호'를 핵심 가치로 삼아 새롭게 변화하는 경찰상을 표현하는 그래피티를 그린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뉴시스

긴즈버그의 차별 정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 블랙피쉬 | 1만5000원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는 단순히 한 나라의 법조인이 아니었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대변인이자, 자기 자신의 신념을 잃지 않은 사회인, 세계 젊은이들이 동경하는 어른이었다. 긴즈버그 생전에 그의 일상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는 여성 리더에 목말라 하던 전 세계 여성들에게 화제가 됐고, 인생의 한 부분은 극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사람들은 래퍼의 이름을 패러디해 '악명 높은(Notorious RBG)'이라는 별명으로 부르며 그에게 팝스타처럼 열광했다.

정의의 목소리였던 긴즈버그가 타계한 지 1년이 지났다. 법조인이었던 그가 누군가의 변호를 도우면서, 혹은 대법관으로서 재판에 참여하면서 작성했던 문서 중 의미 있는 것들을 골라 책으로 엮었다.

로스쿨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코리 브렛슈나이더는 신간 '긴즈버그의 차별 정의'에 긴즈버그가 관여했던 수많은 사건들 중에서 성평등과 임신과 출산의 자유, 선거권과 시민권 등 총 세 가지 분류에 맞는 주요 사건을 추렸다. 그에 관한 긴즈버그의 글 중 많은 이들과 공유하고 싶은, 함께 읽었으면 하는 부분을 가감없이 발췌했다. 또 독자들을 위한 각 사건의 개요 설명과 긴즈버그의 글을 보충하는 해설을 덧붙였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긴즈버그는 오랜 시간 누구보다 차별 받는 여성의 권리를 위해 애썼다. 그런 만큼 '긴즈버그의 차별 정의'에는 성평등에 관한 사건들이 많다. 임신 중지의 권한에 대한 재판과 일터에서 임신으로 인해 부당하게 처우 받는 여성의 사례, 지금까지도 여전히 해결이 되지 않고 있는 '동일 노동, 동일 임금' 문제를 다룬 재판 등 여성의 권리와 관련된 여러 이슈를 접할 수 있다.

그러나 긴즈버그의 목소리는 비단 여성만을 위해 울린 것은 아니었다. 지역 사회의 제대로 된 처우를 받지 못한 장애인, 백인보다 월등히 적은 숫자로 소방관에 채용되는 소수 인종의 현실, 투표 차별을 철폐하기 위해 제정된 규정의 존폐 위기 등 긴즈버그는 현실 속 약자가 누구든 그들의 편이었다. 다양한 목소리에 힘이 실릴 때야말로 자유가 보장된다는 것을 그는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래서 책에는 긴즈버그의 '소수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이 담겨 있다.

소수 의견은 재판에서 과반수의 의견이 되지 못한 의견, 즉 다수의 의견에 포함되지 않아 폐기된, 최종 결정에 대한 반대 의견이다. 긴즈버그는 소수 의견을 통해 자신이 속한 대법원과 자신의 동료들을 솔직하게 비판하기도 하고, 사회에 만연한 잘못된 관행에 대해 조목조목 반기를 든다. 해당 사건에서는 무시되었을지라도, 그것이 훗날 일어날 어떤 사건, 다른 상황에서는 다수 의견이 될 수도, 판결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남성과 여성의 임금 차별에 대한 '레드베터 대 굳이어타이어' 재판에서 긴즈버그가 제출한 소수 의견은 2년 후 공정 임금법을 통과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긴즈버그의 차별 정의'에는 40년 이상의 긴 시간이 흐르고 있다. 그 사이 무언가는 변했고, 어떤 것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모든 이가 차별 없이, 평등하게 살기 위한 최소한의 테두리를 만들려는 수많은 노력이 계속되어 왔다는 것을 안다. 긴즈버그의 문장은 그 노력의 증거이다. 긴즈버그가 평생을 통해 꿈꾼 세상이 하루아침에 이뤄질 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던 만큼, 그가 남긴 의견들은 앞으로도 그 세상으로 나아가는 버팀목이 될 것이다.

박상지 기자 sangji.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