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박종화> 예술인이 드리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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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박종화> 예술인이 드리는 글
박종화 광주전남민족예술인단체총연합 대표
  • 입력 : 2021. 09.09(목) 12:58
  • 편집에디터
박종화 광주전남민예총 대표
대통령 문재인 님!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자고 민중이 나서고 있는 이때 귀하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요? 귀하께서 청와대 가는 길목에서 그토록 강조했던 적폐청산의 대상 1번이 국가보안법이라는 생각에 변함은 없는지요?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매일같이 일상생활에서 억압되고 있는 근원이 국가보안법이란 걸 누구보다 잘 인지하면서도 침묵을 지키고 있어서 드리는 질문입니다.

인권이 존중되는 나라다운 나라가 되기 위한 길은 국가보안법 폐지로부터 시작해야 할 텐데 70년을 넘어 아직 시작도 못 하고 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문제가 돼버린 악법. 일본 식민통치에 맞선 애국자들의 삶을 갈가리 찢어놓았던 치안유지법을 해방 후에도 그대로 옮겨온 민족 치욕의 법. 만들지 말았어야 할 통한의 법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귀하가 더 늦기 전에 국가보안법 폐지의 손을 웃으면서 흔드는 모습을 꼭 보고 싶습니다. 인기 드라마였던 '사랑의 불시착'을 고발하는 야만. 엄밀히 따지면 드라마의 주인공 손혜진과 현빈도 구속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괴물. 정확한 범위규정도 없이 잡아넣고 운용자의 의중에 따라 코에 걸고 귀에 걸다가 대책 없이 구속하는 무인권의 지옥. 이것이 대한민국의 엄혹한 실체입니다.

예술과 표현의 자유는 나라의 얼굴이라는 걸 대통령인 귀하가 모를 리 없습니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해서 백방으로 노력한 당신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해보려 안간힘을 써 봐도 안 되니 아예 포기해 버렸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정보기관의 코미디 같은 국가보안법에 관한 수사가 맞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억압의 수단인 국가보안법 없이도 얼마든지 지킬 수 있는 튼튼한 형법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바뀐 것은 아니겠지요.

이제 더는 나라에서 허가하는 예술만을 하고 있을 순 없습니다. 국가보안법으로 통제하는 예술을 어찌 제대로 된 예술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인류의 평화와 나라의 통일을 위한 예술에는 한계가 없어야 합니다. 그 어떤 이유를 막론하고 예술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합니다. 우리에겐 일제 치하에서 천황을 찬양하고 황국신민을 노래한 역사가 있습니다. 창씨개명이라는 네 글자를 빨간 문장으로 썼던 오욕의 예술역사가 있습니다. 이 모든 오욕을 씻어 내고 민족의 평화를 위한 세상을 가장 자유롭게 개척해 나가는 것 만이 분단의 나라에서 살아가는 참된 예술인의 의무이자 숙명일 것입니다. 예술을 통제하는 법이 사라져야 할 근본 이유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나락 한 알로 친일 매국의 높은 담벼락을 치는 일일지언정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해 나아갈 것입니다. 태어나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귀하의 약속이 국가보안법 폐지로 마감되지 않는 한 민족의 미래는 암울할 것입니다. 우리의 미래도 정처 없이 방황할 것이며 귀하의 미래 또한 암흑천지 깊은 지옥의 땅에 묻혀버리고 말 것입니다.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지켜야 하는 공정과 평등이 시나브로 사라지는 권력에 대한 분노를 잠시 접는 한이 있어도 아직은 귀하의 약속을 믿고 싶습니다.

너무나도 늦었습니다. 가장 늦은 자유를 가장 멋진 자유로 만들어 가는 자랑찬 대한민국을 갈구합니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