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예술의 정점에 선 실존적 사랑의 고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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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예술의 정점에 선 실존적 사랑의 고백록
  • 입력 : 2021. 08.26(목) 16:35
  • 박상지 기자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정호승 | 창비 | 1만3000원

따뜻하고 정갈한 언어로 인생의 소중함을 일깨워 한국시단의 서정시인 중 첫손에 꼽히는 정호승의 초기작 '외로우니까 사람이다'가 개정증보판으로 돌아왔다. 총 20만부 이상 판매된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는 1990~2000년대를 대표하는 베스트셀러이자 지금도 꾸준히 사랑받는 스테디셀러다. 초판(열림원 1998) 출간 무렵 쓰인 미발표작 스물한편과 '어른이 읽는 동시'로 선보인 시집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열림원 2002)에서 선별한 네편을 더해 제4부에 수록함으로써, 외로움과 상처를 근거로 인간의 보편적 실존을 노래한 정호승 시의 완결판이 '지금' 다가왔다는 평가(해설 유성호)가 무색하지 않도록 재출간의 의미를 더했다. 20여년 저편에서 발화된 이 시집은 '거리두기'와 '격리'로 인해 유난히 외로움이 많은 이 시대의 독자들을 다시 한번 위안과 희망의 차원으로 이끈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다'에는 정호승 시의 수많은 미덕 가운데서도 삶에 대한 긍정과 자연에서 유래한 근원적 사랑이 편재한다. 코로나19 이후 새로운 생활과 관계를 고민하는 우리에게 맞춤한 메시지가 돼주며, 영원히 흐르는 물결처럼 이 시집이 그 생명력을 유지해가리라 저자 스스로 의심하지 않는 것(시인의 말)도 그러한 이유에서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다'에는 근대가 초래한 마음의 공허에 대한 본원적인 성찰이 담겨 있는데, 이 또한 거대한 에너지가 돼 독자의 몸과 마음을 움직인다. "나뭇잎에 앉은 먼지 한번 닦아주지 못하고 사람이 죽는다면/사람은 그 얼마나 쓸쓸한 것이냐"(나뭇잎을 닦다 중)라는 물음을 그냥 지나치기란 쉽지 않다. 인간이 저지른 파괴가 기후위기와 전염병으로 되돌아오는 세상에서 '나뭇잎'으로 표상되는 자연을 보듬는 시심(詩心)은 그 자체로 미래로 올곧게 나아가는 힘이 돼준다. 그밖에도 이 시집 곳곳에는 생태에 대한 관심과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태도가 돋보인다. "새들은 지붕을 짓지 않는다/잠이 든 채로 그대로 눈을 맞기 위하여/잠이 들었다가도 별들을 바라보기 위하여"(새들은 지붕을 짓지 않는다 중)라는 깨달음이 이를 잘 보여준다. 새집의 형태를 단순한 새의 습성으로 파악하기보다는 새와 자연이 조응하는 호혜적 관점으로 바라본 것이다. 이러한 날카로운 포착이 이 시집의 잎과 가지를 오늘도 더욱 푸르고 풍성하게 하는 영양분이다.

박상지 기자 sangji.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