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에세이·최성주> 힘이 있어야 평화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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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에세이·최성주> 힘이 있어야 평화 지킨다
최성주 고려대 특임교수·전 주 폴란드 대사 ||39) 한국전쟁과 국제연합
  • 입력 : 2021. 09.13(월) 13:40
  • 편집에디터
최성주 고려대학교 특임교수·전 주 폴란드 대사
국제연합(유엔)은 1948년 12월 총회 결의 195호를 통해 대한민국의 유일 합법성을 인정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기습남침을 감행하자 당일 긴급회의를 소집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북한군이 38선 북으로 철군할 것을 요청하는 결의 82호를 채택한다. 북한은 이에 불응하며 한국 침략을 계속하자 안보리는 이틀 후인 6월27일 결의 83호를 신속히 채택한다. 그 요지는 "대한민국이 북한의 무력공격을 격퇴하는데 필요한 지원을 제공할 것을 유엔 회원국에게 요청한다"는 것인데 이는 유엔군이 한국에 파병된 법적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

한국전쟁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5년 후 발발했는데 그 당시 미국과 소련은 이미 냉전 상태에 돌입해 있었다. 중화민국 장개석 군대가 모택동 군대에 패퇴해 대만으로 쫓겨가고 1949년 10월 중국 본토에 중화인민공화국(중공)이 들어선다. 같은 공산국가인 소련은 중국 본토에 새로이 수립된 중공이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지위를 승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과 영국 등이 이에 반대하자 야코프 말리크(Malik) 당시 유엔 주재 소련 대사는 1950년 1월 향후의 안보리 회의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공언한다. 이것은 소련의 중대한 판단착오였고 한국에게는 천재일우의 기회가 됐다. 국제평화와 안보를 유지하기 위한 핵심기구인 유엔 안보리의 중요한 결정에 5개 상임이사국 전체의 동의가 필수적이다.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 파병 결의도 상임이사국 전체의 찬성이 요구되는 사안인데 소련의 불참 덕분에 안보리 결의가 신속히 채택됐다. 만일 소련이 안보리 회의에 참석해 결의 채택을 반대했더라면 유엔군 파병 자체가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안보리 결의에 따라, 미국, 영국, 프랑스는 물론, 에티오피아, 콜롬비아, 태국 등 16개 회원국이 전투병을 파병한다. 유엔군 파병이 미국의 압박과 강요에 의한 것으로 폄훼하는 이들이 있다. 그렇다면 젊은이들을 위험한 전쟁터로 보낸 15개 유엔회원국이 미국의 꼭두각시라는 말인가. 인도와 스웨덴, 이태리 등 5개국은 병원선을 비롯한 인도적 지원을 제공한다. 당시 공산국가이던 폴란드는 북한에 병원을 설립하는 등 소련, 중공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원조를 시행한바 있다.

한국전쟁 기간 강대국의 힘겨루기 과정에서 노르웨이 출신인 트리그브 리(Lie) 초대 유엔 사무총장이 희생양이 됐다. 1950년 8월에야 안보리 회의에 복귀한 소련은 자국이 불참한 상황에서 안보리가 중요한 결정(유엔군의 한국 파병)을 채택했다며 리 사무총장에게 강한 불만을 표시한다. 그런데 유엔 사무총장은 안보리의 결정을 번복할 수 있는 헌장 상의 권한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소련이 리 사무총장을 계속 모욕함에 따라 그는 1952년 11월 사직서를 제출한다.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많은 유엔군 병력이 희생됐다. 참전국 중 미국 전사자가 가장 많고 이어 영국 및 터키, 호주의 순서다. 한국전에 참전한 유엔군은 전쟁고아를 돕거나 입양했으며 학교를 건설해 주는 등 인도적 지원도 병행했다.

필자가 수년 전 주한 터키 대사로부터 들은 바에 의하면 당시 터키 부대도 전쟁 고아들을 가르쳤는데 고아들의 향학열과 성실성에 크게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유네스코와 유엔한국재건단(UNKRA)은 학생들을 위한 교과서를 제공했다. 포성과 총성 속에서도 어린 학생들은 이 교과서로 공부했다. 지난 6월 발간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회고록에도 이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 전쟁으로 인해 남북한에 각각 5만명의 전쟁고아가 발생했다. 한국의 고아들이 국내의 고아원이나 외국인 양부모에게 맡겨진 반면 북한의 전쟁고아는 소련, 중국 등 공산국가들에게 위탁된다. 동구권국가 중 고아를 가장 많이 수용한 폴란드는 1951년부터 1959년까지 6000명을 받아 들인다. 1950년대 말 폴란드를 방문한 김일성이 폴란드 정부에 감사를 표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부산에 유엔군 묘지를 조성했다. 이는 세계 유일의 유엔군 묘지로 현재 2300여 명의 유해가 안장돼 있다. 정부는 참전용사는 물론 그 후손들도 한국에 수시 초청하는 등 보은(報恩) 사업을 시행 중이다. 한국전쟁 발발 71년이 지났다. 한반도에서 더 이상의 전쟁이 있어선 안된다. 아무도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 이길 수 있어야 평화도 지킬 수 있는 법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2005년 해병훈련소에서 언급한 내용을 되새겨 본다. "전쟁이 없는 나라를 만들고 싶으면 열심히 훈련에 임해 강한 군대를 만들라." 힘이 있어야만 평화를 지킬 수 있다는 명료한 메시지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