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한국의 갯벌, 세계자연유산 등재를 축하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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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 인문학
이윤선의 남도인문학>한국의 갯벌, 세계자연유산 등재를 축하하며…
거듭 갱번에 서서||지금 이 순간까지도 내 시선은 여전히 개펄에 꽂혀있다.||있음과 없음을 반복하는 대대(待對)의 맥락들이다.||유네스코 자연유산 지정은 나로서도 가슴 떨리는 일이며||'남도인문학'이라는 화두를 내걸었던 만용을 믿음으로 환치시키는 기점이기도 하다.
  • 입력 : 2021. 07.29(목) 15:29
  • 편집에디터
한국의 갯벌(Korean Tidal Flats), 영문으로 갯벌(Getbol)이라 쓴다. 2021년 7월 26일 제44차 세계유산위원회에 의해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2007년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에 이은 두 번째 쾌거다. 지역적으로는 충남 서천, 전북 고창, 전남 신안, 전남 보성·순천에 한정되었지만 우리나라 전체 아니 서해며 황해 전체로 확대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기도 하다. 2025년까지 유산 구역을 확대해야 한다거나 추가로 등재될 지역을 포함해 연속 유산의 구성 요소간 통합관리체계를 구축해야 하며 유산의 보존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추가적 개발에 대해서도 관리해야 하고 멸종위기 철새 보호를 위해 동아시아-대양주 철새 이동경로(EAAF)의 국가들이 서로 협력해야 하며 특히 중국의 황해-보하이만 철새 보호구와의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권고들이 그것이다. 권고라는 용어를 썼지만 일종의 단서 조건이다. 관련 기사나 정보들은 각양의 지면에 넘치도록 소개되었고, 또 보완되어 갈 것이기에 굳이 기본적인 정보를 여기 리뷰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다만, 이 등재를 자축하며, 기뻐할 많은 이들의 노력과 성원에 환영과 감사를 드리고 싶다. 그래서다. 더불어 기쁨을 나눌 동안의 담론을 환기해두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향후의 확장이나 논리의 재구성에 긴요할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갯벌이 갱번으로 이어지고, 갱번이 개옹(물골)으로 이어진다. 이 자리에 칼럼을 시작하던 2016년부터 아니 훨씬 더 오래전부터 이를 인문학적 담론으로 풀어써 왔으니, 감상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갱번론'의 출처

6년 전 첫 문단을 이렇게 썼다. "한국의 관문 인천공항, 비행기가 하강을 시작한다. 벌판처럼 펼쳐진 바다와 갯벌이 눈에 들어온다. 올망졸망 섬들이 흩어져 있다. 그 사이로 크고 작은 배들이 지나간다. 해가 지고 나는 시간이라면 물빛 받아 영롱이는 햇살들이 무성하다. 무수한 빛과 작은 파도가 연출하는 재잘거림들, 눈을 천천히 감으면 그 전하는 말들을 들을 수 있으려나. 절반쯤 감은 눈꺼풀 안으로 두 개의 풍경이 펼쳐진다. 푸르른 물과 회색빛 땅이다. 하나는 바다요 다른 하나는 갯벌이다." 한국에 처음 오는 누군가가 대면했을 이 풍경들에 대해, 그 풍경들이 전하는 말들에 대해, 그것이 자아낸 마음들에 대해 일종의 순례기를 연재해왔다. 그 마음들이 만들어낸 몸짓과 노래와 새김질과 생각들은 때때로 백두산과 지리산을 치올라가거나 먼바다를 무심히 응시하거나 영산강 본류 병풍산 꼭대기에 올라 무등산이 옹위하는 무진벌을 내달리기도 했다. 지금 이 순간까지도 내 시선은 여전히 개펄에 꽂혀있다. 있음과 없음을 반복하는 대대(待對)의 맥락들이다. 이번 유네스코 자연유산 지정은 내 개인적으로도 가슴 떨리는 일이며 '남도인문학'이라는 화두를 내걸었던 만용을 믿음으로 환치시키는 기점이기도 하다. 더이상 손가락 세어가며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저간의 칼럼들이 내게는 마치 천일기도와도 같은 것이었다. 평생이라는 의미의 백년가약(佳約)이요 대계(大計)요 아니 어쩌면 대전(大戰)에 찍어둔 방점 같은 것들이었는지 모르겠다. 그것을 남도라는 이름을 통해서 말하고자 했고, 섬진강을 거닐다가 영산강을 노래하다가, 아, 거기 여백과 행간에 지극하게 깃든 이름도 빛도 없는 민중들의 숨결들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했다.

갱번의 물골, 남도의 서사

남도의 정신은 어디서 오는가? 연전 당돌하게도 이런 질문을 던지며 신창동이니 옹관이니 고인돌이니 질그릇이니 시부렁거렸다. 거듭 반복하는 질문 속에 갱번이 있다. 갱번은 무엇인가? 이 땅 혹은 바다를 부르는 남도지역의 독특한 호명법 말이다. 흑산도나 외해의 서남해 군도에서도 넓은 바다를 '갱번'이라 한다. 그 이유 또한 여러 번에 걸쳐 소개했다. 바로 갯벌의 갯골, 남도 지역 말로 '개옹'혹은 '개골' 곧 물골이기 때문이다. 그 반대로 영산강이나 섬진강에서는 강을 강이 아닌 바다로 인식했던 흔적들을 두루 살펴본 바 있다. 사실은 황해로 난 모든 강들이 그렇다. 강이 아니라 바다였다는 뜻이다. 실례들이 많다. 고려 이후 국가 제례 중 하나였던 중사(中祀)도 그중 하나였다. 왕이 국토의 오악(五嶽)에 제를 지내니 대사(大祀)라 하고 삼해(三海)에 제를 지내니 중사라 하였다. 동해의 중사는 지금의 양양 땅에 있고 서해의 중사는 지금의 북한 땅에 있다. 남해의 중사는 영암의 남포다. 나주 땅에 속했던 곳이고 마한사람들이 배질하던 곳이다. 남포 아래는 모두 바다라는 뜻이다. 목포가 영산포의 한 포구 이름이었다가 후대에야 지금의 목포로 이명(移名)하였음을 이제는 많은 사람이 안다. 신창동을 영산 바다의 중심에 놓아도 이제는 어느 정도 이해하는 이들이 늘었다. 영산포로 거슬러 오르면 광주, 화순, 담양에 이르기까지 포구들의 흔적이 많다. 심지어 지금은 산간으로 이해되는 곳들까지 '배머리'며 '배들이'의 이름들이 남아있다. 심청이 오고 갔다는 곡성과 섬진강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나는 이를 '갱번론'으로 집약하여 정리하였다. 있음과 없음을 반복하는 원리, 거대한 바다도 하룻저녁에 막아 땅을 만들어버리는 혁명적인 그 생각들 말이다. 이것이 광주의 정신이고 남도의 정신이라 정리해두었다. 이 이름만큼 강력한 정체성, 서해 혹은 황해를 연대할 키워드는 많지 않다. 지금의 광주와 남도가 그리고 남북을 아우르는 한반도와 서해가 그리고 중국을 아우르는 황해가 주목해야 할 키워드다. 우리 이르던 그 갱번에 서서, 끝간데 모를 조하대의 심연으로 스며드는 개옹에 서서 한국의 갯벌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축하한다.



남도인문학팁

갯벌, 갱번론과 생극론의 철학

조동일이 말했던 생극론과 주역의 대대를 여러 번 인용했다. 인류학이나 신화학에서는 이런 맥락의 철학을 대칭성(對稱性)이라 한다. 예컨대 나카자와신이치가 레비스트로스를 받아 확장한 대칭성 등이 여기 해당한다. 내가 '갱번'의 뭍과 물을 대대와 상보의 관계로, 있음과 없음의 철학으로 끌어온 토대도 이 주역의 정신에서 찾을 수 있다. 오늘날 음양론에 관한 학계의 일반적인 진술은 대체로 두 가지 입장이다. 음양대대성(陰陽待對性)과 음양상보성(陰陽相補性)이다. 음양대대성은 서로 대립하면서도 끌어당기는 관계로 상대가 존재함에 의하여 비로소 자기가 존재하게 되는 관계다. 음양상보성은 2개의 다른 좌표를 통하여 동일한 사태를 한꺼번에 볼 수 있는 상황을 기술하는 것이다. 탁양현은 이 두 개의 좌표가 서로 배척하고 있지만 또한 서로 보충한다고 설명한다. 음과 양은 서로가 '마주 대하고 기다리는 대대(待對), 서로 보완하는 상보(相補)의 관계다. 이 두 가지 특성은 동시적이다. 이러한 비동시적인 동시성은 또한 과정적이다. 남도정신문화의 요체를 이른바 서민들의 말과 몸짓과 풍속에서 길어 올리고 그 배경을 물과 뭍의 대칭, 있음과 없음이 교직하는 변증법의 공간, 인류가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레퓨지움이라 해석했던 의도가 여기에 있다. 나는 매번'갱번'으로 돌아간다. 중국과의 대칭, 일본과의 상보, 대대성으로서의 동아시아, 나는 오늘도 갱번에서 '남도인문학'을 길어 올린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