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 내려온다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서석대
범 내려온다
김선욱 서울취재본부 부장
  • 입력 : 2021. 07.25(일) 14:06
  • 서울=김선욱 기자
김선욱 서울취재본부 부장
예로부터 호랑이는 우리 신화나 민담, 노래와 풍속, 민화에 자주 등장했다. 대한민국의 전통 가치와 강인한 기상을 상징했다. 민중의 수호신으로도 자리했다. 산군(山君), 산령 (山靈), 산신령(山神靈), 산중왕(山中王)으로 불렸다. 새해를 맞아 액을 물리치는 의미로 용과 함께 그려졌다. 순우리말은 범이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호랑이가 많았다. 경복궁 근처의 인왕산은 호랑이 산으로 유명했다. 함경도, 지리산, 목포에도 호랑이가 자주 목격됐다. 조선 태종때는 경복궁에, 세조때는 창덕궁에까지 나타났다. 연산군때는 국가 사당인 종묘의 담을 넘었다고 한다. 어릴 적에 호랑이 이야기를 듣지않고 자란 이가 없었다. 육당 최남선 선생은 우리나라를 호랑이 이야기가 풍부한 나라라는 뜻으로 '호담국'(虎談國)이라고 했다. '아Q정전'으로 유명한 중국의 소설가 뤄신은 조선족을 만나면 호랑이 이야기를 해달라고 부탁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렇게 많던 호랑이들은 일제강점기때 멸종됐다. 자연적으로 사라진게 아니라, 일제가 조선인의 기상을 말살하려고 의도적으로 호랑이를 잡아죽였다. 조선총독부의 이른바, '해수구제사업'이다. "사람과 재산에 위해를 끼치는 해수를 구제한다"라는 명분을 내세워 조선의 호랑이를 도살했다.

호랑이에 대한 우리의 믿음과 애정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일제가 한반도의 모양을 토끼에 비유하자, 1908년 최남선 선생은 호랑이로 한반도 지도를 그렸다. 발을 들고 대륙을 향해 할퀴며 달려드는 생기 있는 범의 모양. 진취적이고 팽창적인 한반도의 무한한 발전과 왕성한 원기를 상징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 마스코트 '호돌이'와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마스코트 '수호랑', 그리고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엠블럼에 들어간 동물이 호랑이다.

올림픽이 열리고 있는 일본 도쿄에서 '범'이 뜨거운 화제다. 대한체육회가 한국선수단 숙소 외벽에 '범 내려온다'(퓨전 국안밴드 이날치가 지난해 5월 발매한 곡 이름) 문구와 호랑이 형상의 한반도 지도를 넣은 현수막을 내걸자, 일본 우익들이 반일 정서가 깔렸다며 연일 시위다. 대한체육회는 "대한민국 상징인 호랑이를 내세워 선수단에 힘을 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범이 내려오는 것 같은 우리 선수단의 위용에 일본이 놀란 것은 아닐까. 폭염을 날려버릴 시원한 '금빛 소나기'를 기대해본다.

서울=김선욱 기자 seonwook.kim@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