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피치 디푸지와 이건희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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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
우피치 디푸지와 이건희미술관
  • 입력 : 2021. 07.11(일) 17:17
  • 박상지 기자

유럽이 5세기 로마제국 멸망이후 14세기까지 이어진 문화예술의 암흑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르네상스(Renaissance)' 덕이었다. 찬란한 고대문화의 부활을 꿈꾸는 문예부흥의 중심에는 '메디치 가문'이 있었다. 국부 코지모에서 손자 로렌초까지 3대에 걸쳐 막대한 부를 일궜던 메디치가는 문화, 철학, 과학 등 여러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소통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메디치 가문의 또 다른 업적은 후원을 통해 예술가들의 작품을 소장한 것이다. 소장품들은 코지모 1세의 우피치(Uffizi·집무실)에 그대로 전시해 후세에 전했다. 이 작품들은 메디치가의 마지막 후손이었던 '안나 마리아 로도비카'가 이탈리아 군주국가 '토스카나 대공국'에 기증하면서 일반에게도 공개됐다. 우피치 미술관의 탄생 배경이다.

루브르나 대영박물관, 메트로폴리탄에 비하면 비록 규모는 작지만, 우피치 미술관은 값으로 매길 수 없는 소중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세계 유수 미술관들의 소장품 대부분이 제국주의의 산물들인데 반해, 우피치 미술관은 전시관 건축에서부터 소장품까지 피렌체의 한 시대를 관통하는 자국의 작품들로 채워져 있다는 점이다. 팬데믹 이전 하루 방문자가 1만2500명에 달할 정도로 전 세계인의 관심을 끌었던 곳이었지만, 팬데믹은 모든 상황을 바꿔놓았다.

관람객의 발길이 끊기면서 우피치 미술관은 '메디치 정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리고 변화를 시도했다. 이른바 '우피치 디푸지(Uffizi Diffusi)' 즉 '퍼져가는 우피치'라는 의미의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는 소장품 일부를 지역의 60~100개 공간에 분산 전시해 토스카나 전체를 거대한 미술관으로 만드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 곳에 관광객들이 집중되는 것을 막아줄 뿐 아니라, 주변 도시 활성화에도 기여할 수 있고, 무엇보다 토스카나 문화 역사의 여러 부분을 조명함으로써 주민 모두가 자신의 문화유산과 직접 마주할 기회를 갖게 하자는 것이 프로젝트의 취지이다.

최근 이건희 미술관 건립을 둘러싼 논란은 고인과 유족의 기증 의미를 퇴색시키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실천으로 전 국민의 문화적 향유를 기대했던 고인의 뜻에 대한 답이 '미술관 건립' 밖에 없었을까. '우피치 디푸지' 프로젝트의 효과가 기대될수록, 편협한 대안에 정치적 해석까지 덕지덕지 붙어있는 '이건희 미술관' 건립안이 아쉽기만 하다.

박상지 기자 sangji.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