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이슈 36-2> 여전한 편견…"차별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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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이슈 36-2> 여전한 편견…"차별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어요"
차별 속에 사는 외국인 이웃들 ||성희롱·건강·의사소통 문제 등 다양 ||일 시키고 임금도 제대로 안주기도 ||‘다문화 없는 다문화 사회’ 안타까워
  • 입력 : 2021. 06.06(일) 17:35
  • 김해나 기자
정의당이 외국인 노동자 코로나19 진단검사 행정명령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예뻐서 그래' 했어요. 처음에는 정말 예뻐한다 생각했어요. 하지만 아니었어요. 무서운 말 들어서 일 안 하기로 결심했어요." 서툰 한국어로 입을 연 캄보디아인 A(36)씨가 다니던 일자리를 포기해야 했던 이유다.

그는 광주지역 한 식당에서 일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고향 생각이 절로 나게 하는 자상한 사장님 밑에서 몸이 힘들어도 항상 웃으며 열심히 일했다. 지난 2018년에 한국에 온 A씨는 손님을 만나는 것 외에 한국어를 쓸 일이 없어 식당에서 많은 대화를 하려고 노력했다. 술 한 잔 마신 손님들이 "예뻐서 그렇다"고 할 때마다 '한국어를 열심히 해서 예쁘게 봐주신다'고 생각했다. 그 역시 친절한 미소로 손님들을 맞았다.

하지만 A씨는 얼마 전 출근하다 손님들이 나누는 대화를 듣고 깜짝 놀랐다. 코로나19로 잠시 일을 쉬었다 오랫만에 나갔던 식당이었다. 마스크를 쓴 탓에 A씨인줄 몰랐던 손님들의 언행은 이미 '도'를 넘어선 상태였다. 그들의 언어는 차마 입에 담기 힘들 정도의 성희롱적 언어들이었다.

A씨는 "한국어를 못 한다고 해서 욕설 같은 이상한 말을 못 알아듣지 않는다"며 "성희롱적인 말이 너무 상처가 됐고, 엄마 같은 사장님의 만류에도 일을 그만뒀다"고 했다.

인도네시아에서 온 B(26)씨는 목재업을 하고 있다.

그는 건강보험 가입 방법조차 알지 못한 채 일을 했고, 종일 나무에서 나온 가루를 마신 탓에 호흡기 질환에 시달리고 있다. 코로나19 상황에 가래 섞인 기침까지 더해지니 그를 바라보는 시선은 더 차가워졌다. 코로나19 감염자로 오인한 이들의 차가운 시선이었다. 얼마 전 광주시가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코로나19 검사를 받으라고 행정명령을 내린 것에 대한 불만도 컸다. 그는 "코로나19는 어느 나라 사람이건 어느 인종이건 차별없이 감염시키는 것 아니냐"며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검사를 받으라고 하는 것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그를 힘들게 하는 것은 그뿐만이 아니다. B씨는 "톱으로 나무를 자를 때마다 나오는 가루를 공기와 함께 마셨다. 마스크를 써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며 "철야 근무를 할 때도 있다. 시간 외 수당을 주지만, 알고 보니 터무니없는 금액이었다. 건강까지 악화돼 일을 그만두려고 한다"고 했다.

캄보디아인 C씨는 일하는 내내 쇳가루와 기름때에 노출되면서 늘 피부염을 앓고 있다. 하지만 그는 직장을 그만 둘 수가 없다. 피부병보다 더 무서운 것이 돈을 벌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C씨는 "보기 흉한 것은 참을 수 있지만, 간지럽거나 손이 부으면 일에 지장이 있다. 업무에서 제외되면 수당이 적어지기 때문이다"고 했다.

광주에 정착한 고려인들의 상황 역시 마찬가지다. 처음 정착했을 당시에 비하면 차별이 많이 줄었지만, 의사소통 등 언어 문제는 여전히 깰 수 없는 벽이다.

신조야 광주 고려인마을 대표는 "전국에 고려인에 대한 다양한 정보가 알려지면서 선주민들이 더 잘 대해주고 있다"며 "갈수록 대우가 개선되고 있다. 비자 역시 고려인 4~5세까지 포함돼 무리 없이 한국, 광주 생활이 가능해졌다"고 했다.

이어 "하지만 어려움이 아예 없다고 하는 것은 거짓말일 것이다"며 "가장 큰 문제는 언어 문제다. 이전에는 일을 할 수만 있다면 취업이 가능했는데 요즘에는 한국어를 모르면 못 시키고, 귀찮아지다 보니 아예 채용 자격에 '한국어 가능 또는 능통'을 적어 놓는 곳도 있다"고 말했다.

석창원 외국인근로자 선교회 대표는 "다문화가 자리 잡아 이주민들에 대한 일상 속의 차별은 많이 개선됐다. 선주민이 이주민을 받아들이고 지역주민들 사이에서의 차별 코드가 많이 해소된 것은 사실이다"며 "그런데도 불법체류자와 농촌 지역 노동자에 대한 불법 고용, 임금 체납이나 결혼 이주자들에 대한 제도적 차별 등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인권은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의 관점인 존재론적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며 "광주 땅을 밟고 있는 이들 모두를 '광주 시민'으로 보고 대우해야 하는데, 그런 부분에 있어서 광주는 아직도 미흡하다. '다문화 없는 다문화 사회'가 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김해나 기자 min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