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한정규>軍은 국민의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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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한정규>軍은 국민의 희망
한정규 문학평론가
  • 입력 : 2021. 06.03(목) 13:03
  • 편집에디터
한정규 문학평론가
2021년 4월 18일 한 병사의 논산육군훈련소 급식 폭로가 있었다. 밥에 비해 반찬이 절대부족하고 전반적으로 부실하다는 지적이었다. 그러자 또 다른 폭로 등으로 이어져 군 급식이 불량하다는 여론이 이어지고 있다. 어떤 경우도 한국의 육해공 전 군인은 국민에게 희망의 횃불이 돼야 한다. 병영 내에서의 불미스러운 일이 있다면 개선토록하고 국민이 불안을 갖도록 해서는 안 된다.

한국의 지난 역사를 보면 무능한 임금과 간신배들 때문에 민족이 불행한 일을 겪었다. 임오년 군이 난을 일으키는 등 국내가 어수선해지자 일본과 청나라가 침입 결국 일본으로부터 식민지통치를 받았다.

1881년 전개된 수구파의 위정척사론과 토왜반정음모사건을 계기로, 민씨 척족정권이 대원군파와 남인계열의 수구파에 대대적인 탄압을 가하자 지배층의 분열이 극에 달했다. 그 밖에도 민씨 척족정권의 인사행정 문란, 매관매직, 관료부패, 국고낭비, 그리고 일본의 침략에 대한 불만 등을 빌미로 군이 난을 일으켰다. 그게 임오군란이다. 임오군란이 일어나기 전에도 수차에 걸친 군병들의 반항이 있었다. 1863년 철종 14년 금위영 소속 군병소요, 1877년 8월 훈련병 소요 등이 일어났다. 그 모두 군료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었다. 임오군란이 일어난 직접적인 원인 모두가 군료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

당시 군대가 궁궐에 침입하자 고종은 대원군에게 사태수습을 맡겼고, 대원군이 정권을 장악 군제개혁을 단행했다. 5영의 복설, 통리기무아문(統理機務衙門)의 혁파, 삼군부의 복설을 명하고, 척족을 제거하는 인사와 개혁을 단행했다.

임오군란으로 청나라와 일본을 불러들여 전쟁터가 됐다. 그 결과 청나라가 일본에 패하고 일본이 조선을 식민통치 했다. 그 와중에도 조선정부는 군란을 일으킨 주동자를 색출 처단하는데 급급했다.

군란이 수습되자, 고종은 교서에 이어 실정(失政) 8항목을 들어 자책하고 유신을 다짐하는 윤언을 내렸다. 고종은 제도 개혁을 서둘러 기무처를 설치했다.

군란이 수습된 이후 고종의 유신 선언에도 불구하고 민씨척족정권은 구태의연한 정치풍토 속에서 정권 유지에만 급급했다. 개혁은 실현되지 않았고, 개화정책만 되풀이됐다.

청나라는 군란 수습과정에서 횡포는 물론 이후 조선의 내정 특히 외교 관계에 적극간섭 종주권을 강화했다. 그러자 조선조정에서는 척족과 개화파 관료계층 사이에 친 청나라 주도세력과 친 일본 주도세력으로 양분 대립, 갑신정변으로 이어졌다. 결국 임오군란은 민 씨 척족정권이 추진한 성급하고도 무분별한 개화정책에 대한 군부 반발과 정치·경제·사회적 모순 등으로 군대와 국민이 고종정권에 대한 저항이었다. 마침 현대 일본과 중국의 행태가 19세기 말 20세기 초와 크게 다르지 않다. 동북아를 놓고 힘겨루기를 하는 듯하다. 그 점을 방관해서는 안 된다. 어떤 경우도 또 다시 불행한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육군은 본부 차원에서 부대별 부식 클레임, 접수, 공급 시스템 등을 점검한 뒤 개편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유통 등 일련의 과정에서 담당 공무원들의 현장 실태 감독을 강화하고, 자체 운영 부식비용과 참치 등 중앙조달을 활용한 추가 급식을 제공할 예정이다. 했다.

국방부 장관이 긴급 주요 지휘관 회의를 주재 장병들의 열악한 급식 및 생활 여건에 대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하며 국방장관으로서 막중한 책임을 통감한다고 했다.

그는 사령관은 각 부대의 격리시설과 식생활 등을 점검 코로나19로 고립된 군인들이 불편하고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생활여건을 적극 보장해 줄 것이라고 말했다. 국방부장관의 약속이 이행될 수 있도록 정부는 최선을 다할 것을 당부하며 군 장병 모두도 더 이상의 불상사가 없도록 인내를 부탁한다. 국가와 국민의 안전을 위해 함께 노력해 줄 것을 부탁하며 어떤 경우도 국민의 힘이 돼 주기를.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