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을 키우고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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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을 키우고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
  • 입력 : 2021. 06.03(목) 11:02
  • 박상지 기자
돼지를 키운 채식주의자

이동호 | 창비 | 1만5000원

우리나라에서 사육되는 돼지의 99퍼센트는 창문이 없는 축사에서 평균 6개월이라는 짧은 생을 산다. 평생 흙을 밟지 못하고, 도축장에 가는 날 처음 햇빛을 본다. 빈번한 동물 학대, 항생제 남용에 따른 생태계 교란, 축산 폐기물로 인한 환경오염, 해마다 반복되는 가축 전염병과 살처분 등은 공장식 축산이 이어지는 한 벌어질 수밖에 없는 문제들이다. 축산업의 열악한 현실과 구조적인 모순을 목격한 저자는 고기 생산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채식을 시작한다. 저자가 귀촌한 마을에는 젊은 축산인들이 결성한 '대안축산연구회'가 있다. 축산인 당사자들이 모여 기존 축산 방식의 변화를 꾀하고 대안을 찾는 이 모임에서 자연양돈이라는 새로운 사육 방식을 알게 된다. 동물의 본성을 존중하고 자연스레 키움으로써 동물의 고통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자연의 순환과 생명의 귀중함을 배울 수 있는 자연양돈 방식이 채식의 연장이라고 여긴 저자는 돼지에게 깨끗하고 넓은 마당을 제공하고, 농가에서 나온 부산물로 만든 건강한 사료를 먹이며 돼지를 키우기로 한다.

동물을 키우는 일, 그것도 한번도 실제로 접촉해본 적 없는 낯선 동물을 키우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저자가 인근 농업학교에서 흑돼지 세마리를 분양받아 데려온 날, 돼지는 애써 만들어놓은 울타리를 뚫고 달아난다. 그는 도망친 돼지를 다시 찾아오며 앞으로의 일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감한다. 매일 몇시간씩 돼지에 매여 밥과 물을 챙겨주고, 우리를 청소하고, 똥을 치우는 고된 노동이 한편의 시트콤처럼 유머러스하게 그려진다. 그러는 중에도 머릿속에는 복잡한 질문이 떠나지 않는다. 이렇게 키운 돼지를 나는 과연 잡아먹을 수 있을까. 돼지가 행복하게 자라더라도 결국 잡아먹을 거라면 이 모든 수고로움에 무슨 가치와 소용이 있는 걸까.

현대사회에서 식탁 위의 고기는 먹기 좋게 포장된 상품이자 식자재로 여겨질 뿐, 가축을 죽이고 도체를 손질하는 이전의 과정은 지워진다. 소비자에게 굳이 불편한 진실을 알려 소비욕을 위축시킬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돼지의 마지막 순간을 마주하며 다른 동물의 생명을 얻는 일은 결코 가볍지 않음을 역설한다. 내가 입에 넣는 돼지고기가 조금 전까지 살아 숨 쉬었던 동물의 피와 살이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느끼며, 불편하지만 외면해서는 안 되는 진실을 독자에게 전한다.

박상지 기자 sangji.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