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으로 점철된 노작가의 치열한 구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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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으로 점철된 노작가의 치열한 구도기
사생아에 민주화운동으로 투옥||비극적 삶 극복불구 딸 죽음으로 또 시련||상실의 고통 넘어 평온에 이르는 과정 책에 담아
  • 입력 : 2021. 06.03(목) 11:02
  • 박상지 기자

(주)아이프미술경영연구소에서 그림명상이 진행되고 있다. 뉴시스

송기원 | 마음서재 | 1만4000원

1974년 일간지 신춘문예에 시와 소설이 나란히 당선되며 출발부터 비범한 천재임을 알렸던 작가가 있다. 이후 단편집과 장편소설, 시집을 꾸준히 출간해 신동엽창작기금, 동인문학상, 오영수문학상, 대산문학상, 김동리문학상을 수상한 송기원 작가가 그 주인공이다. '경험의 진정성과 표현의 진정성'이 빛나는 작품세계로 굵직한 문학상들을 휩쓸었던 송기원 작가가 오랜 침묵을 깨고 8년 만에 신작을 냈다. 명상소설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장편 '숨'은 소설가이자 구도자로서 그가 도달한 세계의 정점을 보여주는 자전적 작품이다.

어느덧 반세기 가까운 문학 인생을 맞이하는 송기원 작가는 삶의 궤적이 여느 작가들과 판이하게 달랐다. 건달의 사생아이자 가난한 장돌뱅이 어머니의 자식이라는 사실은 그를 방황과 출분으로 내몬 운명의 굴레였다. 이 꼬리표는 저주였으나 역설적이게도 그에게 문학적 자산이 됐다. 자기혐오와 자기연민으로 굴절된 삶을 통과하며 그는 밑바닥의 삶을 보듬는 작품세계로 독보적인 입지를 구축해왔다.

네 차례나 투옥되며 민주화운동의 한복판에 있었던 그는 90년대 들어 국선도와 단전호흡, 요가, 명상에 빠져들었다. 인도와 히말라야 언저리, 미얀마의 명상센터, 계룡산 토굴 등에서 구도적 삶을 이어간 일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게 성찰을 거듭해온 작가는 드디어 이 소설 '숨'에 이르러 운명의 굴레를 스스로 툭 끊어내고 고요와 평온이 충만한 세계에 도달했음을 우리에게 알린다. 한마디로 이 책은 작가가 온몸으로 써내려간 치열한 구도기나 다름없다.

이 소설은 백혈병으로 딸을 먼저 떠나보낸 화자가 초기불교의 수행법인 사마타(삼매)와 위빠사나(지혜) 명상을 통해 자기혐오와 죄의식, 상실의 고통을 뛰어넘어 완전한 평온에 이르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명상하는 아버지의 시선과 이승을 떠나 영혼으로 떠도는 딸의 시선이 교차하는 독특한 구조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소설의 화자는 바로 수년 전 딸의 죽음을 겪은 작가 자신이다.

운명과 비로소 화해한 그에게 느닷없이 닥친 딸의 죽음은 또 한 번 그를 고통 속에 몰아넣는다. 자신의 '더러운 피'가 딸에게 전이돼 결국 죽음으로부터 딸을 지켜내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고통스러워하던 그는 명상을 통해 딸의 실존의 흔적을 만나려 애쓴다. 백혈병에 걸린 딸이 마지막으로 앓았던 병은 섬망이다. 그에게는 명상에서 만나는 선정과 섬망이 다르지 않다. 선정에 들 수 있다면 딸이 마지막으로 들어간 섬망의 세계에 자신도 다다라 딸의 실존의 흔적을 만날 수 있으리라 염원한다.

작가는 사마타와 위빠사나 명상의 세계를 놀라우리만치 생동하는 언어로 독자의 눈앞에 펼쳐 보인다. 들숨과 날숨을 그저 지켜보는 아나빠나 사띠를 시작으로 색계 사선정, 몸의 32부분에 대한 명상, 죽음에 대한 명상, 자애심 명상, 사대요소 명상, 깔라파 명상 등 화자가 단계적으로 수행하는 명상체험이 고스란히 독자의 체험인 듯 생생하게 전달된다.

박상지 기자 sangji.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