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의 큐레이트 노트 18> 영혼의 안식, 구도적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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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큐레이터 노트
이선의 큐레이트 노트 18> 영혼의 안식, 구도적 예술
시대 속 여성성 뛰어넘는 현대적이고 독립적 영역 구축 ||20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조지아 오키프||대자연의 순수함 내면화…깊은 울림 ||추상과 구상 교차…추상 환상주의||고정관념·차별에 맞서 독창적 예술세계||평생 구도 길을 걸으며 스스로 구원||여전히 크게 다가오는 작가의 '울림'
  • 입력 : 2021. 05.09(일) 15:16
  • 편집에디터

"남자들은 나를 '가장 뛰어난 여류 화가' 라고 깎아 내렸지만, 난 내가 가장 '위대한 화가' 중 한명이라 생각한다. " - 조지아 오키프

제93회 아카데미(오스카) 시상식에서 한국 배우 최초로 여우조연상을 받은 배우 윤여정의 수상소감이 화제가 되고 있다. 그 소감은 수상에 대한 결과를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삶에 대한 회고가 함께 담긴 이야기였다. 단순히 세계적인 배우로써 인정받는 것을 넘어 한 대한민국의 이혼 여성으로, 두 아이 엄마의 역할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인내하며 버텨냈다는 존경심으로까지 이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이번 열여덟 번째 '이선의 큐레이터 노트'는 배우 윤여정의 수상 소감을 통해 필자의 머릿속에 떠올랐던 이미지의 작품과 작가를 소개하려고 한다. 어쩌면 두 예술가의 삶과 형태는 다르겠지만, 세상의 편견을 묵묵히 넘어서며 사회와 시대 속 여성성에 한정되지 않는 현대적이고 독립적인 자신만의 영역을 만들어냈다는 점이 닮아있기 때문이다.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동행하며 순수한 자연으로 돌아가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대자연의 순수함을 내면화하여 깊은 울림이 담긴 작품으로 다시금 재조명되고 있는 미국의 대표 화가.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 1887~1986년)는 20세기 초 유럽의 예술사조에 영향을 받지 않고 자신만의 추상과 구상이 교차하는 '추상 환상주의적' 이미지를 구현했던 작가이다. 그녀는 자연에서 얻은 영감으로 창조한 꽃의 사물화와 동물의 유골이 사막의 풍경을 주제로 한 추상적 그림들로 유명해졌다. 대표적인 작품들에서 인간화한 양식과 강하고 선명한 색으로 구상적 형상은 부드럽고 간단하였고, 추상적 디자인으로 보이기도 하였다.

조지아오키프(Georgia O'Keeffe)사진_스티글리츠가 찍은 조지아 오키프_1918년. 이선 큐레이터 제공

대가족에서 자란 조지아 오키프는 어려서부터 자신의 뛰어난 창의력을 주목받으며 성장했다. 오키프는 1905~06년 시카고 미술학교에서 공부하고, 이어 1907~08년까지 뉴욕의 아트 스튜던츠 리그(The League residency at Vyt)에서 공부했다. 이곳에서 유화 작품으로 '윌리엄 메리트 체이스 정물화상'을 수상했고, 당시 화가이자 교수였던 아서 웨슬리 다우(Arthur Wesley Dow)를 알게 되었다. 1915년 오키프는 아서 웨슬리 다우 교수의 미술 개념을 토대로 실험적인 작품을 구현하기 시작했다. 당시 결과물로 완성된 목탄 드로잉들을 친구에게 보냈고, 친구는 이 추상적인 드로잉들을 앨프레드 스티글리츠에게 보여주게 되었다. 1916년 스티글리츠는 뉴욕 자신의 갤러리 '291'에서 오키프의 드로잉을 전시했고, 일년 후 개인전도 열어주었다. 그리고 그녀가 뉴욕에서 작업할 수 있도록 경제적인 지원을 제안했고, 이를 받아들였다. 그 후 몇 년간 둘은 함께 작업을 했으며, 1924년에 결혼식을 올렸다. 같은 해 거대한 규모의 꽃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당시 미국 미술계는 남성들의 독무대였고 미국 미술은 사회적이고 모더니티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작품들은 처음 공개될 때부터 많은 관심과 이슈를 얻었고, 미술계 관점의 경향과는 다른 도발적이고 독창적인 나름의 방식을 부여하기 시작했다.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_양귀비(Poppy flower)_1927년. 이선 큐레이터 제공

오키프와 스티글리츠 부부는 뉴욕의 셸턴 호텔 30층으로 이사해서 12년간 살았고, 그녀는 방에서 내려다보이는 밖의 자연이나 도시풍경 등을 그렸다. 1928년에 오키프는 뉴멕시코를 방문했다가, 그곳의 광활하고 황량한 풍경에 매료되었고, 남편 스티글리츠가 사망 후 뉴멕시코에서 정착하였다.

급변하는 시대적 고정관념과 차별에 맞서 꾸준히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했고, 편견을 깨는 것에서 부터 시작되어지는 아름다움을 발견해 나갔다. 기성품, 소리, 비디오, 사막의 짐승 두개골, 뼈, 꽃, 식물의 세부기관 등 평범한 것들, 어쩌면 시선을 피하고 싶은 것들에게서 조차 아름다움을 찾아 독특한 작품을 탄생시켰다. 1970년대 중반까지 오키프는 뉴멕시코의 분위기 있는 전경과 꿈결같은 풍경을 작품으로 남겼다. 70세가 넘어 세계 일주를 하고, 90세를 앞두고 젊은 애인과 새로운 연애도 시작했다. 시력이 점점 약해져 유화 작업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지만, 연필과 수채로 작업을 이어가며 창조를 멈추지 않았고 이후에도 점토를 사용해 그림 대신 도자기를 빚으며 작업했다. 1986년 그녀의 백 번째 생일을 앞두고 세상을 떠났다. 유언대로 추모식은 없었고 유해는 뉴멕시코 사막에 뿌려졌다. 결국 마지막 순간 자신을 다시 태어나게 해준 자연 풍경의 일부가 되어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갔다.

조지아 오키프는 평생 구도의 길을 걸으며 스스로 구원을 얻었고 그 울림은 아직까지 우리에게 크게 다가온다. 이후 멕시코 산타페는 1997년 <조지아오키프미술관(www.okeeffemuseum.org)>이 건립되어 예술의 도시로 변화했으며, 지금도 그녀의 삶과 예술세계를 통해 영감을 얻고자 하는 많은 예술가들이 모이는 창작의 땅으로 거듭나고 있다.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_검은 붓꽃(Black Iris)_1926년. 이선 큐레이터 제공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_하얀 접시꽃과 숫양의 두개골(Ram's Head White Hollyhock and Little Hills)_1935년). 이선 큐레이터 제공

90세의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_뉴멕시코 고스트 랜치에서_1977년. 이선 큐레이터 제공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