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의 사계, 현대미술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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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반
광양의 사계, 현대미술과 만났다
■ 도민 숙원… 전남도립미술관을 가다||'광양사계'담을수 있는 통유리 건축 눈길||6미터 층고, 대작 위주 전시로 전시관 품격 높여||관람객 배려한 전시동선, 현대적 재해석 전통작품 인상적
  • 입력 : 2021. 04.11(일) 16:49
  • 박상지 기자

지하1층 로비에서 바라본 전남도립미술관 모습.

지난달 광양시에 개관한 전남도립미술관은 광주에서 차로 1시간 남짓 걸리는 곳에 위치해있다. 1만7598㎡ 부지에 통유리로 지어진 미술관은 한때 지역의 골칫거리였던 폐역의 이미지를 깔끔하게 지워냈다. 지하1층부터 3층까지 층고 구분없이 툭 터진 로비엔 통유리를 통해 햇살과 함께 광양의 경관이 병풍처럼 펼쳐졌다.

이태우 전남도립미술관 학예연구팀장은 "건축물 외관은 역사성에 주안점을 두었다"며 "광양읍의 끄트머리에 위치해 있고, 미술관 부지가 옛 광양역사였다는 점을 살리되 동시대 미술을 담는 공간인만큼 가장 현대적인 느낌으로 건축설계를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미술관의 앞면을 통유리로 지은 것은 광양하늘을 시간과 계절에 따라 담기 위해서"라며 "광양의 시간을 담는 미술관이라는 스토리를 내세우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지난 2019년부터 3년간 작품구입비만 70억원에 이르면서 전남도립미술관은 개관전부터 관심이 모으기도 했다. 현재 미술관에서는 오는 7월 18일까지 3개국 13명의 작가가 참여하는 '산을 등지고 물을 바라보다'가 진행중이다. 전남의 전통성·현대성·국제성을 기반으로 현대미술의 국제 동향을 소개하는 현대미술관으로 자리매김 하겠다는 비전을 엿볼 수 있는 전시다.

이지호 전남도립미술관장은 "남도 미술을 빼고선 한국의 근현대사를 논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며 "그동안 발견되지 않았고, 소개되지 않았던 남도의 작가들을 아카이브 하고,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도 알림으로써 한국미술이 국제사회에서 위상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미술관 운영의 목표"라고 밝혔다.

개관 특별기획 전시는 '의재와 남농:거장의 길'(갤러리 1∼2)을 위시로 '현대와 전통, 가로지르다'(갤러리 3∼5), 그리고 '로랑 그라소:미래가 된 역사'(갤러리 6∼9) 등 세개의 테마로 구성됐다.

3300㎡의 면적에 6m에 이르는 층고는 100호 이상의 대작들이 전시관을 채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답답하다는 느낌을 주지 않았다. 같은 공간에서 전시되는 작가들 각각의 작업이 뚜렷하게 구별되는 효과가 컸다.

남도 전통미술의 양대산맥인 의재 허백련(1891~1977)과 남농 허건(1907~1987)의 작품이 대표적인 예다. 의재는 관념적 남종문인화풍을 고수하며 은자의 삶을 살아간 남종문인화의 마지막 거장의 책임을 다한 반면, 남농은 전통 남종화법과 현실풍경을 접목한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 두 거봉은 소치 허련에서 출발한 한 뿌리라는 공통점과 동시에 작품 경향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소치의 고조선이나 남동의 장손으로 운림산방의 화맥을 5대째 이어오고 있는 허진 작가와 의재의 장손 허달재 작가의 비교도 흥미롭다.

허진 작가는 '유목동물+인간-문명2010-6'을 통해 야생동물의 시선으로 인간의 근원을 성찰하고 있으며, 허달재 작가는 '홍매'와 '백매'에서 맑고 담백하게 그린 나뭇가지와 그 위에 흩뿌려진 꽃잎을 통해 작가만의 필치와 문인화 정신의 조화를 보여준다.

남종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들도 대거 감상할 수 있다. 이이남 작가의 미디어아트 작품 '역전된 산수'는 디지털 기법을 이용한 것으로 의재 허백련의 '산수팔곡병풍'을 상하가 바뀐 산수화 형태로 표현해 인간의 고정관념을 무너뜨리고 진실이 무엇인지 물음표를 던진다. 독일 화단에서 주목을 받으며 활약하는 작가 세오는 '나의 집에 낯선 나(Fremd in eigenen Heim VI: Strange in your own home VI)'를 통해 강렬한 색을 사용해 작품의 이미지를 극대화하면서 탐색과 발견 사이의 긴장감을 드러냈다. 이외에 김진란 & Baruch Gottlieb은 독일에서 활동하는 미디어 설치 작가들로 이번 전시에서는 전통 한옥의 들어걸개문 형태를 건축적으로 해석한 공간 설치물과 단청에 대한 이미지를 디지털화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개관전은 프랑스 작가 '로랑 그라소'의 전시로 마침표를 찍는다. 로랑 그라소는 역사와 문화, 자연과 과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탐색하고 실험하는 프랑스 현대미술 작가로 한국과 전남의 작품을 재해석한 작가의 신작을 선보였다. 특히 전남도립미술관의 개관을 기념해 특별히 제작된 신작 '과거를 연구하다'(Studies into the Past) 연작은 해남이 본관인 조선의 화가 공재 윤두서의 작품 '말 탄 사람'과 한국 고유의 진경 산수화풍을 창시한 겸재 정선의 작품 '금강내산총도'를 로랑 그라소만의 독특한 해석으로 탄생시킨 대형 회화 작품이다. 전 지구적 관심사인 '자연'과 '재해'라는 화두 속에서 자연재해로 생겨난 돌연변이 식물에 관한 연구를 바탕으로 제작된 설치작품과 태양력에 대한 조사를 토대로 한 미디어 작품은 관람객으로 하여금 사유의 기회를 제공한다.

이지호 관장은 "앞으로도 보여주고 싶은 전시가 많다"면서 "광주와 큰 틀에서 움직이되 운영과 전시에 차별화를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오 작 ''나의 집에 낯선 나'

박상지 기자 sangji.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