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곡진 역사 응축된 거대한 바위 민중의 주춧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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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굴곡진 역사 응축된 거대한 바위 민중의 주춧돌로
송필용, 김냇과서 2년만에 개인전||올곧은 역사의식 바위, 폭포줄기, 강줄기에 투영||25년간 연구해 온 '조화기법' 통해 정신과 표현 구축||8일부터 5월31일까지 66점 전시
  • 입력 : 2021. 04.06(화) 16:24
  • 박상지 기자

6일 광주 동구 대인동 김냇과에서 대표작 '땅의 역사'에 대해 설명중인 송필용 작가.

송필용 작가가 민중미술 작업을 하게된 것은 전남대 4학년 시절 교내에서 5·18광주민주화운동을 목격하면서 부터다. 청춘의 찬란한 때 그가 캠퍼스에서 목격한 것은 매캐한 연기 속에서 군화에 짓밟히고 있는 동료들의 처참한 모습이었다. 들끓고 날선 마음들은 눈을 아리게했던 허연 연기와 함께 송 작가의 몸에 깊숙이 스며들었다. 몸이 기억하는 심연의 시간은 사회를 향한, 세상을 향한 마음을 곧추세웠다. 대학시절, 5월의 현장 안에서의 자의식은 그림의 시작점이자 구심점으로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조선의 민초에서부터 동학혁명, 일제수난기, 6·25전쟁, 5·18항쟁에 이르기까지 굴곡진 민족의 수난사가 그의 화폭을 통해 재현됐다. '땅의 역사'다. 송 작가의 붓끝에서 재현된 암울한 과거는 1989년 그의 첫 개인전에 선보여졌다. 몸과 정신에 각인된 시선은 이후에도 역사의 흐름을 끈질기게 고찰하게 했고, 거친 세파에도 강인하게 버텨가는 민중의 모습은 폭포로, 바윗덩어리로, 강줄기로 그려져왔다.

역사의 무게를 깊이 있는 사색의 시선으로 담아내 온 송필용 작가의 작품이 광주 동구 대인동 김냇과에 마련된다. 2019년 무각사 로터스 갤러리 초대전 이후 2년만에 열리는 개인전이다.

8일부터 5월31일까지 열리는 그의 개인전은 '거친 땅, 곧은 물줄기'를 주제로 근작 위주의 작품 66점이 전시된다. 얼기설기 긁어내고 박박 그어진 자국들이 가득한 그림들엔 화면 위를 수없이 휘저은 작가의 손길과 그간 열정적으로 작품 안에 쏟은 시간들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첫 개인전에서 선보였던 '땅의 역사' 속 아픔의 시간들은 32년의 시간을 지나며 단단한 바윗덩어리로 응축됐다. 곧고 단단하게 응축된 굴곡의 근현대사는 민초들의 주춧돌이다. 거칠고 두텁게 내려앉은 색의 가운데를 가로지르며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는 시원하게 보는 이들의 마음을 열어준다. 송 작가의 폭포줄기는 마치 김수영의 시 '폭포'를 낭독하는 듯 하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더 주목할 것은 화면의 질감표현이다. 분청사기 조화기법으로 그간 작가가 자신만의 독자적 표현을 탐구해 온 결과다. 전시 출품작인 '심연의 폭포', '땅의 역사', '역사의 흐름',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이다'로 명명된 작품들을 관통하는 큰 줄기는 '땅'과 '물'이다. 이 작품들 모두엔 붓끝과 칼끝이 지나간 흔적이 여실하다. 얽히고설킨 역사 속 혼돈의 세상을 정화시키고 치유의 힘과 에너지를 응축하듯 작가는 화면 위에 새겨나갔다. 그렸다기보다 새겨나갔다는 표현이 더 적확한 것은 그 근원을 '조화기법'에서 구했기 때문이다.

문희영 예술공간 집 관장은 "차곡차곡 그림 안에 시간의 층위를 올려가며 붓끝과 칼끝은 함께 화면을 구축한다. '조화기법'이 '회화'라는 표현과 정신이 함께 깃듦을 가능케 한 것이다. 거친 질감만이 남았지만 송필용이 그려온 땅과 물의 기(氣)는 더욱 응축되었고, 더 깊은 심연으로 들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시지각으로 확인되는 풍광은 희미해졌지만, 내면의 풍광은 더욱 명확해진 것이다"며 "시대의 가르침을 껴안으며 그 심오한 울림을 더 깊이 매만질 수 있는 세계가 끝없이 펼쳐지기를 기대한다"고 한층 더 깊어진 작가의 시선을 이야기했다.

송필용 작가는 전남대를 졸업하고 홍익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했다. 그간 광주시립미술관, 학고재 갤러리, 이화익 갤러리 등에서 23회의 개인전을 진행했으며, 국립현대미술관, 일민 미술관, 광주시립미술관, UN한국대표부 등에서 다수의 단체전을 가졌다. 1996년 제2회 광주미술상을 수상했고,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경기도미술관, 전북도립미술관, 광주시립미술관, 청와대, 겸재정선미술관 등에 작품이 소장돼있다.

송필용 작 '곧은 소리는 소리이다' 김냇과 제공

박상지 기자 sangji.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