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유순남> 상대를 믿는 것은 나를 믿게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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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유순남> 상대를 믿는 것은 나를 믿게 하는 것
유순남 수필가
  • 입력 : 2021. 04.06(화) 16:17
  • 편집에디터
유순남 수필가


몇 주 전 일요일에 장성 백암산에 올랐다. 순창 구암사에서 출발하는 짧은 코스를 택했다. 상왕봉과 백학봉으로 갈라지는 삼거리에서 우리는 상왕봉 쪽으로 먼저 갔는데, 얼마 가지 않아 전망 좋은 곳에 명품 소나무가 있었다. 백학송이다. 멀리 보이는 장성의 산야와 어우러지는 백학송의 자태는 정말 일품이었다. 기념사진을 찍고 상왕봉으로 향했다. 상황봉에서 간식을 먹는데 빗방울이 한 두 방울 떨어졌다. 서둘러서 짐을 챙기고 내려오려는데 스틱이 보이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백학송 주변 경치에 취해 그곳에 스틱과 장갑을 벗어두고 그냥 와버렸다.

그 스틱은 체코 산으로 가격이 만만치 않았는데, 누구든 오가면서 볼 수 있는 백학송 평상 데크 앞에 두어서 쉽게 없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백암산 상황봉에서 백학송까지는 빨리 걸어도 20분은 걸린다. 우리보다 먼저 내려간 사람들이 열 명이 넘고, 우리가 내려가는 길에 올라온 사람들도 그 정도는 된다. '있겠지!'하고 믿었지만 걸음은 저절로 빨라졌다. 백학송에 다다를 무렵 그쪽에서 오는 사람에게 스틱을 보았냐고 물었다. 보았단다. 한 시간 이상 그 장소에 그대로 있었던 스틱을 보며 스무 명이 넘는 양심 있는 등산객에 대한 감동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그 일이 있은 후 어느 날 집주변에 볼일이 있어서 가벼운 차림으로 나갔다. 일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길거리 시장'에서 걸음을 멈췄다. 바구니에 가지런히 쌓아놓은 시금치가 맛있어 보였다. 시금치와 당근을 주문하고 주머니를 뒤져보니 지갑이 없었다. "할머니, 제가 현금이 없네요."하고 돌아서는데, "그냥 가져가고 다음에 와서 줘"하신다. "할머니가 저를 모르시잖아요! 그리고 저는 여기를 자주 안와요!"했는데도 할머니는 "아무 때나 갖다 줘"하시며 채소를 담은 비닐봉지를 건네주신다. 이사한지 1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옛 동네 시장이 더 익숙해서 그 시장은 몇 번 가지 않았다. "늦을 수도 있어요."하고 집에 와서 시금치를 데쳐 무쳤더니 역시 달큼하고 고소하다.

할머니가 필자를 믿는데 늦게 갈 수가 없어서 다음날 할머니를 찾아갔다. 하지만 농협 앞에 있는 할머니의 좌판가게는 열리지 않았다. 그 다음날 점심 때 다시 갔다. 할머니는 안계셨지만 좌판에 물건이 놓여있는 것을 확인하고 김밥가게에 가서 김밥을 샀다. 옆 가게에 계신 할머니를 찾아가 외상값과 김밥을 드렸더니 옆 가게 할머니가 "하나 먹어보세~"하며 부러워하신다. 할머니 가게에 놓인 싱싱한 콜라비가 맛있게 보여 몇 개 샀는데, 할머니는 브로콜리 한 개를 덤으로 주셨다. 할머니의 필자에 대한 믿음은 필자를 할머니의 단골로 만들었다.

이렇듯 대부분의 소시민들은 서로 신뢰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국민이 믿고 나랏일을 맡긴 공무원들은 '어떻게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까?' 보다는 그 직을 이용해서 재산을 불릴 연구를 하는 것 같다. 요즈음 이슈가 되고 있는 LH직원들 뿐 아니라 고위공직자나 국회의원들도 부동산과 관련된 정보로 재산을 불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하위직 공무원도 마찬가지다. 필자는 코로나19가 출현하기 전 방학 때면 매주 목요일 저녁 광주시청에서 무료로 상영해주는 영화를 즐겼다. 그런데 사람 없이 자리만 잡아놓은 곳이 항상 몇 군데가 있었다. 그중에는 시간외 근무를 하는 것처럼 시스템을 처리하고 나서 영화를 보는 사람도 있었다.

'상대를 편안하게 해주는 것은 나를 편안하게 여기게 하는 것이요, 상대를 믿는 것은 나를 믿게 하는 것이요, 상대를 사모하는 것은 나를 사모하게 하는 것이다(安之 安我也, 信之 信我也, 懷之 懷我也).' 논어 공야장(論語 公冶長)의 한 구절이다. 우리나라 공무원들에게 이 말을 무색케 하는 일이 가끔씩 불거져 실망스럽다. 하지만 언젠가는 우리나라도 국민이 공무원을 편안하게 여기며 신뢰하고 존경하는 나라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