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에세이·최성주> '원조받는 나라'서 '원조하는 나라'로 '상전벽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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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에세이·최성주> '원조받는 나라'서 '원조하는 나라'로 '상전벽해'
최성주 고려대학교 특임교수·전 주 폴란드 대사||28>유엔 평화유지활동과 우리의 기여
  • 입력 : 2021. 04.05(월) 13:32
  • 편집에디터

최성주 고려대학교 특임교수·전 주 폴란드 대사

유엔(국제연합)은 20세기 들어 두 차례나 세계대전이라는 참화를 겪은 인류가 더 이상 전쟁없는 평화롭고 안전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1945년 설립한 국제기구다. 현재 유엔 회원국은 남북한을 포함 193개국이고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가 국제평화와 안보의 유지에 대해 일차적인 책임을 진다. 유엔의 3대 핵심기능은 국제평화와 안보, 인권 존중, 지속가능개발인데 이는 긴밀히 상호 연계돼 있다. 인권과 개발없이 평화와 안보를 기대할 수는 없다. 마침 올해는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 가입한 지 30년이 되는 뜻깊은 해이기도 하다.

국제평화와 안보를 위한 유엔의 활동은 4가지로 분류된다. 즉 평화조성(peace-making), 평화구축(peace-building), 평화유지(peace-keeping), 평화집행(peace-enforcement)이다. 이 중, 가장 실질적인 것은 군대를 파견해 분쟁 이후 상황을 관리하는 '평화유지활동'이다. 평화집행은 침략세력에 대한 응징을 통해 평화를 되찾는 활동이다. 대표적인 평화집행은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안보리의 결정으로 유엔군이 파병돼 북한군의 남침을 격퇴한 것이다. 한국전쟁 이후 국제분쟁에 이와 같은 유엔군 파견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거부권을 가진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 간에 만장일치가 부재한 탓이다.

국제평화와 안보 관련 유엔의 노력 중 비교적 알려진 평화유지활동에는 연간 60억불 규모의 유엔 예산이 집행된다. 유엔 사무국의 직제에도 평화유지활동을 전담하는 사무차장(장관급)을 두고 있다. 12대 경제대국인 대한민국은 평화유지 분야에서 국력에 상응하는 수준의 분담금 지불과 병력 파견을 통해 적극 동참하고 있다. 현재 우리 병력이 평화유지군으로 활동하고 있는 나라는 레바논(동명부대)과 남수단(한빛부대)이다. 유엔 평화유지활동에 대한 우리의 기여는 1993년 6월 아프리카 소말리아에 공병부대를 파병하면서부터다. 그간 총 7차례에 걸쳐 우리 군대가 유엔 평화유지활동에 참여한바 있다. 우리 군은 현지 주민 및 지역사회와 융합하며 평화유지활동을 수행함으로써 유엔 평화유지군 중에 '최고(best)'라는 찬사를 듣는다. 현지 주민들에게 한글과 태권도를 보급하고 코로나19 방역용 마스크를 전달하거나 홍수로 유실된 도로를 긴급 복구하는 등 지역사회와 상생(相生)하고 있다.

지난 2006년 여름 이스라엘과 레바논 헤즈볼라 간 전쟁 직후 노무현 정부가 레바논에 평화유지군 파병을 결정하기에 앞서 필자는 답사단을 구성해 현장을 둘러본 바 있다. 이란의 지원을 받는 무장세력인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에 대해 강경한 입장이다. 전쟁 기간 중 이스라엘군의 정밀폭격으로 크고 작은 교량들이 파괴된 상태여서 육로이동 자체가 쉽지 않았다. 헤즈볼라 거점인 남부 레바논 지역에는 이태리, 프랑스, 중국, 가나 등 10개국의 평화유지군들이 활동 중이었다. 필자 일행은 이들 부대를 방문해 필요한 정보를 얻고 주둔 후보지도 살펴봤다. 이스라엘-레바논 임시국경지대(소위 Blue Line)도 방문했다. 양측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유엔 총회 결의로 설정된 경계선이다. 국경 건너편 이스라엘 초병들이 망원경을 들고 필자 일행을 유심히 살피던 모습이 생생하다. 필자 일행의 사전답사 결과 보고를 토대로 우리 정부는 레바논에 평화유지군을 파병하기로 결정한다. 이후 15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 군인들은 평화유지활동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은 1945년 해방 이후 상전벽해(桑田碧海)와 같은 변화를 겪는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식민지배에서 벗어나 주권을 회복한 국가들 중 원조 받던 나라에서 원조하는 나라(donor)로 탈바꿈한 유일한 국가가 대한민국이다. 국제사회에는 잘사는 나라보다 못사는 나라가 훨씬 더 많다. 소말리아와 예멘 등 중동 아프리카의 일부 국가는 각종 분쟁으로 큰 고통을 겪고 있다. 우리가 국제사회에서 제대로 인정 받으려면 개발협력과 평화유지 활동에 적극 나서야 한다. 이는 곧 '노블레스 오블리즈(noblesse oblige)'를 실천하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 정도의 역량을 갖추고 있으며 국제사회 역시 우리의 적극적인 기여를 바라고 있다. 평화유지군으로 근무 중인 우리 젊은이들은 국제평화와 안보를 위해 앞장서고 있다. 태극기 휘날리며 오지에서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평화유지군 장병들에게 성원의 박수를 보낸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