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라의 현대미술 산책 20) 문화예술 교육의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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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기획
조사라의 현대미술 산책 20) 문화예술 교육의 중요성
14년 역사의 교육기관 바우하우스 현대 디자인에 지대한 영향 ||블랙마운틴 칼리지 20세기 미국 전위적인 현대미술 기여 ||21세기 4차 산업혁명 시대 부가가치 새로운 원천 ‘창조성’
  • 입력 : 2021. 01.31(일) 15:11
  • 편집에디터

블랙마운틴 칼리지 전경. 블랙마운틴 칼리지 페이스북

1930년대 경제 대공황 시기 미국 남부 노스캐롤라이나 산자락 내 작은 마을 블랙마운틴에 소규모의 사립 교양대학이 들어선다. 1933년부터 폐교되기까지 24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케네스 놀란드(Kenneth Noland), 사이 톰블리(Cy Twombly), 로버트 라우센버그(Robert Rauschenberg), 로버트 마더웰(Robert Motherwell) 등을 비롯해 작곡가 존 케이지(John Cage), 무용가 머스 커닝햄(Merce Cunningham) 등 20세기 미국의 전위적인 예술을 주도했던 이들을 배출한다.

우리에게 다소 생소한 블랙마운틴 칼리지는 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적 아방가르드를 선도한 미국 현대미술 형성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자그마한 예술학교의 교육 비결은 무엇일까?

블랙마운틴 칼리지는 경험을 중시하는 존 듀이(John Dewey)의 철학과 바우하우스 디자인 이념이 결합된 급진적·획기적인 실험을 전개해나갔다. 건축, 회화, 디자인 등 전 방위 예술교육과 과학, 문학 등의 학제 간 교류를 시도했다. 쌍방향 강의와 다양한 주제의 토론, 음악회, 연극 등은 이곳의 일상적 풍경이다. 예비 예술가들은 자급자족하는 공동체적 생활을 하면서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체득해나갔으며 지성과 감성의 균형 감각을 체화할 수 있었다.

이에 앞서 1919년 독일 바이마르에서는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가 바우하우스를 설립한다. 1933년 나치에 의해 폐교되기까지 불과 15년 남짓한 역사에도 불구하고 바우하우스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총체예술 교육기관으로 평가 받고 있다.

"미래의 새로운 구조를 함께 열망하고 인식하고 창조하자."

발터 그로피우스가 주창한 바우하우스 선언은 미래지향적인 창조성과 다양성으로 압축된다. 현실과 괴리된 이전의 아카데미즘에 반대하여 실제 삶과 연관된 교육을 추구한 바우하우스는 수공예를 중시하며 순수미술과 산업 연계 디자인이 공존하는 미술 형태에 천착했다. 철재의자, 산세리프 활자 등 바우하우스를 상징하는 모던한 디자인은 오늘날까지도 삶 깊숙이 침투해있다. 유리와 강철 프레임으로 지어진 뉴욕 15번가 시그램 빌딩 등 바우하우스 모더니즘 미학을 반영하는 도시 숲의 풍광들 또한 매우 친숙하다.

이처럼 시대를 앞서나간 바우하우스의 예술과 교육에 대한 철학은 미국과 일본 등지로 파급되었다. 특히 바우하우스 정신은 블랙마운틴 칼리지로 승계된다. 바우하우스 학생이자 교수였던 요제프 알베르스(Josef Albers)는 블랙마운틴 칼리지가 문을 연 뒤 두 달 후 합류하게 된다. "지식은 가르쳐지는 것이 아니라 경험한 관찰을 통해 얻어 진다"고 믿었던 요제프 알베르스의 신념은 교육 현장에서 오롯이 실행되었다.

1차 세계대전의 폐허 속에서 바우하우스가 설립되었고, 세계 대공황 여파에서도 블랙마운틴 칼리지가 개교했듯이 문화예술 교육이 지닌 파급력과 응집력은 실로 지대하다. 이 두 기관이 보여준 삶과 경험에 기반한 문화예술에 대한 비전은 동시대 화두이기도 하다.

미래학자 롤프 옌센(Rolf Jensen)은 정보사회 이후 사회를 '드림 소사이어티'라고 말한다. 꿈과 감성을 파는 사회를 의미하는 드림 소사이어티에서는 물질 경제 중심의 자본주의가 아닌 평범한 일상에서 목표와 의미를 끌어내고 독창적으로 삶을 창조하는 능력과 경험이 요구된다.

미래학자 다니엘 핑크(Daniel Pink) 또한 이성적 사고가 중시됐던 정보화 사회를 지나 예술적·공감적·감성적인 사고가 중요시되는 창의사회로 전환됐다고 말한다. 이에 미래 교육 또한 지혜와 통찰력, 공감 능력을 갖춘 인재 육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어디 이 뿐이랴. 리처드 플로리다(Richard Florida) 또한 '창조계급'을 변화의 주인공을 보고 이들이 이끄는 경제를 '창조경제'라고 명명했다. 산업혁명의 공장 노동자와 1950년대 화이트칼라에서 앞으로 21세기의 경제 주역은 문화·예술적 감성과 영감으로 무장한 창조계급이라는 것이다. 100여 년 전 바우하우스와 블랙마운틴 칼리지가 실험했던 예술과 삶의 병행, 경험 기반의 전인적인 문화예술 교육과 일맥상통함을 알 수 있다.

특히 최근 몇 년 새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사회적 파고 속에서 문화예술에 대한 중요성은 더욱 확대되고 있다. 로봇과 인공지능이 인간 직업을 잠식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 속에서도 감성에 기초한 예술 관련 업종들은 대체될 확률이 낮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문화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가 지식, 교양, 취향, 감성 등의 문화를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자본으로 바라봤듯, 창조성은 사람에게 체화된 취향, 능력, 속성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부가가치의 원천이 되는 잠재적 자본이다. 문화예술 영역의 삶에 좀 더 집중하면서 자신 만의 독창적인 경쟁력을 창출해보자. 불확실하고 격변하는 전환의 시대, 문화 예술적 감각을 지니고 주체적으로 유영하고 횡단해보자.

미술학 박사·(재)광주비엔날레 재직

요제프 알베르스가 디자인한 블랙마운틴 칼리지 로고. 블랙마운틴 칼리지 페이스북

블랙마운틴 칼리지에서 요제프 알베르스와 학생들, 1946. 알베르스파운데이션 제공

발터 그로피우스. 데사우 바우하우스 홈페이지

데사우 바우하우스 전경. 데사우 바우하우스 홈페이지

요제프 알베르스의 데사우 바우하우스에서의 비평 수업 모습, 1928–29. 알베르스파운데이션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