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이계송> 트럼프의 반란과 미국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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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칼럼
세상읽기·이계송> 트럼프의 반란과 미국 민주주의
이계송 재미 자유 기고가
  • 입력 : 2021. 01.10(일) 13:59
  • 편집에디터
이계송 재미기고가
미국의 정치판이 요동치고 있다. 트럼프는 부정선거로 승리를 도둑맞았다며 자신의 파워를 총동원, 온갖 뒤집기를 시도했다. 지지자들을 충동, 워싱턴 의사당에 만행을 저지르기까지 했다. 이 모든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대통령 자격에 대한 그의 실체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물론 이게 끝이 아닐 수도 있다. 그가 믿는 구석은 무엇이고 왜 이런 무모한 짓거리를계속 시도한 것일까. 현지에서 보고 듣고 느끼는 바를 필자 나름대로 정리해 보았다.

트럼프에 대한 적극적·무조건 지지자들은 대략 4그룹으로 분류한다. 불루칼라 백인들, 일부 종교인들, 인종주의자들과 '큐어넌(QAnon·유저의 닉네임 Q와 익명 Anonymous 합성어)'그룹이다. 가장 큰 골치거리는 인종주의자들과 '큐어넌 그룹이다. 큐어넌의 정체는 뭔가. 이들의 정체를 알아야 현재 돌아가는 미국 정치판을 좀 더 이해할 수 있다. 이들은 가짜뉴스를 만들어 유언비어를 퍼뜨린다. 트럼프를 숭배하고 트럼프는 이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해 왔다. '큐어넌'은 "소위 '그림자 정부(Deep State)'라는 악마집단이 오바마, 빌게이츠 같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를 움직이고 있다며 트럼프가 이런 악마집단을 물리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라며 "지난 대선에서도 이들 악마들이 선거를 조작해 바이든을 당선시켰다"는 유언비어를 퍼트린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역시 이들이 날조한 선거조작 유언비어를 이용해 진실인 것처럼 호도하며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역전을 시도했다. 이들 중 상당수가 이번 워싱턴 의사당 건물난동에 참여했음을 TV에 나타난 Q자를 새긴 깃발만 보고도 알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유언비어를 믿는 사람들이 대부분 순진한 보통시민이라는 데 있다. 유언비어에 쉽에 넘어가는 기독교 신도들도 많다. 지구멸망에 대한 예언, 휴거를 믿었던 사람들과 같다고 보면 된다. 그들은 '딥스테이트'가 선거를 조작했으며 이 때문에 트럼프가 패배했다고 확신하고 있다. 한국 내에서도 이를 믿는 사람들이 많다니 놀랍고 이해가 안된다. 한국의 지성을 자처하는 모 유투버는 아예 이런 유언비어를 퍼 나르는 전사로 나섰다. 정말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공화당 일부와 트럼프가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실질적 이유는 또 있다. 다음 선거전략 하나라는 것이다. 역대 선거에서 흑인, 히스패닉계, 동양계 다수는 민주당을 지지해 왔다. 공화당은 이들의 투표율을 가능하면 낮추는 전략을 구사해 왔던 이유다. 그런데 팬데믹 상황 속에서 치러진 지난 대선은 우편투표를 실시함으로써 민주당 지지성향을 가진 소수계의 투표율이 높아졌고 이를 패배의 주요 원인으로 본 것. 선거 전 공화당과 트럼프는 우편투표를 반대하고 민주당의 부정선거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배수진을 쳤음은 알려진 사실이다. 이들이 선거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진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음 선거판을 유리하게 만드는 선거법 개정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고 있다는 거다. "봐라, 우편투표는 말썽의 소지를 불러 일으키지 않았나. 그러니 아예 없애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나올 가능성이 크다. 앞으로 이민자들의 경우 시민권 원본을 투표당일에 소지해야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투표자체를 어렵게 만들려는 꼼수요, 인종주의자들이 많은 공화당의 당리당략적 발상임에 틀림없다.

이번 트럼프와 일부 공화당 리더들이 벌인 대선불복 사태는 자칫 공화당의 몰락까지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는 견해가 있다.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되면 공화당만의 문제가 아니라 미 정치권 전체의재앙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공화당의 몰락은 민주당에도 큰 상처가 된다. 새가 한쪽 날개를 잃으면 다른 한쪽에게 즉시 피해가 오는 이치와 같다.

하지만 40여 년의 의회경험를 가진 프로 정치인 바이든 대통령의 노회한 정치력에 기대를 건다. 조지아주 상원선거에서 민주당이 승리, 상원 장악이 확실하자 즉각 검찰총장에 Merrick Garland를 지명한 바이든의 선택 자체가 놀랍다. 공화, 민주 양당이 모두 지지하고 있는 Garland를 임명함으로써 트럼프 정권에서 정치적으로 편향됐던 검찰을 초당적으로 이끌어 가도록 한 것이다. 상원을 장악했지만 모든 것을 힘으로 밀어붙이지 않겠다는 바이든의 화합의 리더십이 드러난다. 트럼프 정권이 저지른 비리는 물론 의회난입사건 조차도 정치적 보복이 아닌 법적 테두리 내에서 해결하겠다는 의지라 할 수 있다. 바이든의 리더십이 크게 기대되는 이유다.

혹자는 대선불복, 워싱턴 의회난입 사건을 두고 미국의 민주주의가 망조가 들었다고 개탄한다. 하지만 필자는 반대로 생각한다. 대선 후 혼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법의 원칙과 법관의 양심을 바탕으로 판단한 법조계가 살아있고 의회난입 사건을 접한 정치인들의 초당적 애국심을 엿보았기 때문이다. 상원의원들의 양심적 판단과 소신은 훌륭했다. 당파를 초월했다. 선거결과를 뒤집으려던 13명의 공화당 상원의원 중 7명이 즉시 이탈해 바이든 당선 선거결과 인정에 합류했다. 물론 개인적인 유불리를 저울질 했겠지만 90% 이상 상원의 다수가 상식에 따른 합리적 판단을 하는 정치인들이라 것, 지극히 안도감을 갖는 이유다.

현재 임기 2주도 안남은 대통령 트럼프를 두고 정치권은 즉시 대통령직을 박탈할 것인가를 두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이 문제도 잘 넘길 것이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트럼프가 "미친듯이 고함을 지르고 발광하고있다"고 한다. 자승자박, 욕심이 과하면 화를 부르게 돼 있다. 언제까지 '큐어넌'과 같은 악당들과 손잡고 정치권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 지 아직은 예단할 수 없지만 트럼프의 영향력과 존재는 서서히 사라질 것이다. 물론, 트럼프이즘의 현상은 남북전쟁의 도화선이 됐던 인종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쉽게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4년 바이든 정권은 트럼프가 저지른 악재를 치우는데 전력을 다할 것으로 전망된다. 트럼프 적극 지지층을 어떻게 다루는지가 성공의 열쇠가 된다. 인종주의자들과 '큐어넌'은 강력하게, 백인 블루칼라층과 종교인들은 온건하게 문제점을 풀어갈 필요가 있다. 이번 대선 전후 드러난 미국 민주주의의 실상과 이를 극복해가는 저들의 모습 또한 우리 정치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