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동신·양수아는 수채화 불모지를 어떻게 개척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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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배동신·양수아는 수채화 불모지를 어떻게 개척했을까
광주시립미술관, 배동신·양수아 탄생 100주년 기념전||내년 4월18일까지 대표작·아카이브 자료 전시
  • 입력 : 2020. 12.23(수) 15:58
  • 박상지 기자

양수아(왼쪽), 배동신 생전모습. 광주시립미술관 제공

호남에 서양화단이 형성된 것은 여수 출신 화가 김홍식(1897-1966)에서 비롯됐다. 이후 1930년대 오지호(1905-1982), 김환기(1913-1974) 등 일본 유학파 출신들이 1세대로 활동하며 고향에 서양화의 토대를 마련했다. 1940년대 태평양전쟁의 혼돈기에 일본에서 유학한 배동신(1920-2008), 양수아(1920-1972), 강용운(1921-2006) 등 2세대는 실질적인 추상미술의 토대를 닦았다고 평가받고 있다. 이들은 1957년 한국 중앙화단의 앵포르멜 운동에 앞서 이미 비정형 형식을 선보였다. 양수아의 초기 작품들은 본격적 추상 이전의 실험적인 경향을 보이고 있으며, 배동신 또한 야수파적인 형식으로 새로운 양식을 도입했다.

호남 서양화단의 주요인물 배동신, 양수아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지난 100년의 미술사적 유산을 조명하는 전시가 마련된다. 광주시립미술관은 내년 4월 18일까지 광주시립미술관 본관 제5~6전시실에서 2020광주미술아카이브전 '배동신·양수아-100년의 유산'을 진행한다.

이번 전시는 근대 서양화단의 형성과정에서 평생 수채화만을 고집해 한국 수채화의 지평을 넓힌 거장 배동신과 역사의 격동기에 꿈과 좌절을 예술로 승화시켜 한국 현대미술의 지평을 확장한 양수아의 예술세계를 조명하는 자리다.

먼저 '배동신-100년의 유산' 에서는 무등산, 누드, 정물, 항구, 자화상, 데생 등 주요 대표작과 사진, 팜플렛, 영상 등 아카이브 자료가 전시된다. 당시 한국 수채화의 전통은 그리 활발하지 못했다. 한국 수채화는 1945년 전후 대구의 이인성을 비롯해 서울의 몇몇 화가들뿐이었고 한국 전통회화나 유화와는 달리, 하나의 예술 형식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기초적인 회화과정으로만 여겨졌다. 배동신은 불모지와 같았던 한국 수채화단에 회화의 한 장르로 격상시키는데 기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근대 서양화단의 형성과정에서 평생 수채화만을 고집해 70여 년 동안 동양과 서양의 조화를 추구했던 배동신은 한국 현대미술계의 1세대화가이자 수채화의 지평을 넓힌 수채화의 거장으로 평가된다.

그는 "한국인의 정서는 기름보다 물로 표현되어야 한다"라는 인식 하에 유화보다는 평생을 수채화에 집중해왔다. 수채화를 통해 한길을 걸어온 그의 고집스러운 동양인 특유의 정서뿐 아니라, 전통화법과 현대적 회화 형식을 접목하는 등, 기법의 조형미를 개척함으로써 한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로 남게됐다.

'양수아-100년의 유산'에서는 구상, 비구상, 자화상, 드로잉과 사진, 삽화, 인터뷰 영상 등 아카이브 자료가 전시된다.

서양에서 추상의 절정에 달했던 1945년 전후 우리나라는 일본 유학파들을 중심으로 아카데미즘을 답습하고 있었다. 특히 남화의 전통이 뿌리 깊은 호남은 남농 허건(南農 許楗, 1907-1987), 의재 허백련(毅齋 許百鍊, 1891-1977)로 이어지는 남화산수와 인상주의를 받아들여 남도의 자연에 접목시킨 오지호(1905-1982)의 자연주의 서양화 계열이 주류를 이루었다. 보수적인 경향이 강한 호남에서 새로운 양식의 현대미술을 수용하기는 쉽지 않았다. 양수아는 1945년 전후, 그리고 1950년 6·25 등 역사적 격동기를 겪으며 한국 중앙 화단의 앵포르멜 운동이 전개된 1957년에 앞서 한국 현대미술에 추상을 선도했다. 그는 근현대사 질곡의 시기에 겪었던 고뇌와 분노, 시대적 상황을 비구상이라는 새로운 양식에 자신만의 예술혼을 표출한 한국 현대회화사의 선구자로 평가받고있다.

양수아 작 '자화상'

배동신 작 '자화상'

박상지 기자 sangji.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