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민한의 동시대미술 수첩> 동시대미술의 눈으로 오지호의 예술세계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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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민한의 동시대미술 수첩
장민한의 동시대미술 수첩> 동시대미술의 눈으로 오지호의 예술세계를 바라본다.
장민한 (조선대 시각문화큐레이터 전공 교수)
  • 입력 : 2020. 12.15(화) 14:45
  • 편집에디터

오지호 추경 1953 캔버스에 유채 50X60

은암미술관에서 색다른 전시회가 열렸다. 광주문화재단과 공동 주관한 한국 서양 화단의 거목, 오지호 화백의 아카이브 전시 <오지호 미술 아카이브, 팔레트 위의 철학>(12.4.~12.13.)이 개최되었다. 아카이브 전시란 작가와 관련된 리플릿, 신문, 드로잉, 사진 등 보존할 가치가 있는 기록이나 자료를 수집하여 관람객들에게 보여줌으로써 작가의 예술세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전시이다. 어쩌면 아카이브 전시는 동시대미술의 발전에 가장 필요한 미술 실천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동시대미술에서 중요한 것은 세계를 읽는 다양한 시선을 제공하는 것인데, 아카이브 전시는 기획자가 의도한 새로운 맥락에 따라 아카이브 자료들을 재배열함으로써 해당 작품의 예술적 가치를 다른 시선으로 읽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번 아카이브 전시를 계기로 한국 근현대미술의 선구자이자 광주 서양화단의 1세대 대표인 오지호 화백의 예술세계가 동시대미술의 확장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이번 전시는 전체 4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고,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앞의 두 섹션에는 오지호 화백의 시기별 예술세계의 특징을 8.15 해방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 보여주고 있고, 뒤의 두 세션에서는 각각 오지호의 미술론과 교육론을 중심으로 작가 노트, 도록 등 텍스트 자료와 작가와 관련된 영상 자료를 선보이고 있다. 1 섹션에서는 오지호의 성장기, 일본 동경미술학교 시절과 귀국 후 민족주의 미술운동 단체 '녹향회' 활동 시기를 조명하고 있고, 2 섹션에서는 해방과 한국전쟁기 직후에 이루어진 첫 개인전 '오지호 화백 작품전'(1948)을 비롯하여 남도 서양화단의 구축기를 보여주고 있다. 3 섹션에서는 미술론 및 미술논쟁(1938-1960) 관련 미술비평과 교육론 관련 작가 노트, 서신, 도록 등을 선보이고, 4 섹션에서는 미술작품, 구술 영상, 작가 작업실 등을 재현해 놓고 있다.

오지호 화백은 한국 서양화 1세대로 분류된다. 근현대미술사에서 봤을 때 일제 강점기 동경에서 귀국한 작가들은 작업 방식에 따라 아카데미적 사실주의, 인상주의, 추상적 구성주의, 이렇게 세 부류로 나누어지는데, 오지호 화백은 그 중 인상주의 양식을 이용하여 한국 자연 풍경에 자신의 정서를 담은 작가로 평가된다. 그가 인상주의 양식을 사용한 것은 단순히 서양 미술사조를 답습한 것이 아니라 조선의 맑은 풍광을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오지호는 자신이 서구 인상주의에 심취했던 이유에 대해 "한국의 자연은 일본의 자연과는 달라, 청징하고 밝고, 환한 것이 한국의 자연이라면 일본의 자연은 어둡고 침울한 것이 특징이지, 습기가 많기 때문이야. 맑고 밝은 한국의 자연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고전적 사실주의나 자연주의, 또 추상주의로는 어울리지가 않아, 찰나적인 외광에 의해 영감을 자극, 표현되는 인상의 기법이 적격이지" 라고 말하고 있다. 오지호의 대표작들은 한국근현대미술사에서 인상주의적 기법을 이용하여 화사한 색감의 대담한 붓질로 한국 풍광의 아름다움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려낸 작품들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이러한 미술사적 평가와 별개로 오지호의 작품들이 오늘날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동시대미술의 확장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동시대미술의 예술적 가치는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을 효과적으로 제공해주는 데 있다. 오지호 화백의 작품은 어떤 특별한 시선을 제공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까? 현대 미술의 핵심 가치라고 여겨왔던 미적 가치는 동시대미술에 와서는 부수적인 가치가 되었다. 오늘날에 와서 미적 가치는 작가가 의도한 소통에 도움을 주는지의 여부에 따라 평가되는 것이지, 그 존재 자체로 가치가 있다고 주장할 수 없다. 작가가 소통하고자 하는 내용이 무엇이고, 그 작품의 형식이 그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해주는지에 따라 그 작품의 예술적 가치가 결정된다. 한마디로 말해 현대미술에서는 작가의 고유한 '미적 형식의 창안'이 그 작품의 가치를 설명해주었다면, 동시대미술의 예술적 가치는 담론(discourse of reasons)에 의하여 결정된다. 왜 이 작품이 볼만한 가치가 있는지, 그 가치를 추구하는 작품들의 서사(narrative)는 어떻게 구성되는지에 따라 개별작품의 가치가 평가된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구상회화의 가치에 대한 문제는 4차산업혁명 시대에도 구상회화가 감상할 만한 가치가 있느냐의 질문에서부터 시작한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은 3D 프린터나 AI 탑재 로봇에 의해 어떤 이미지이든지 손쉽게 복제가 되는 시대이고, 더 나아가 이미지 생성 알고리즘에 의해 새로운 형식의 이미지가 무한 재생산되는 시대이다. 이러한 시대에 손으로 직접 이미지를 그린다는 행위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규명해내어야 한다. 무한 복제, 무한 생성이 가능한 시대에 이미지는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위해서 제시되었는가가 중요하다. 더 나아가 그것을 손으로 그렸다면, 손으로 직접 그리는 행위가 왜 가치가 있는지 설명하는 것이 구상회화의 가치를 설명하는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구상 회화작품 이미지가 기계적 생성 이미지와 다른 점은 그 이미지는 작가의 생각과 정서가 집약된 의식과 무의식의 흔적이자 자취라는 점이다. 관람객들은 그 작품에서 나타나는 붓질에서 작가의 정서를 유추하기도 하고 그의 붓질의 강약에 따라 작가의 호흡을 체험하기도 한다. 이점이 디지털 시대에 구상회화의 예술적 가치를 설명하는 핵심 요소라고 할 수 있다.

디지털 시대인 오늘날 오지호의 회화에서 중요한 것은 그가 인상주의 기법으로 빛을 그려냈다는 사실보다 찰나의 순간을 자신만의 붓질로 재빠르게 그려내고 그 붓질의 흔적을 통해 당시 자신의 호흡과 환희 감정을 드러냈다는 점이라 볼 수 있다. "회화는 빛의 예술이다. 그것은 빛을 통하여 본 생명이요, 빛에 의하여 약동하는 생명의 자태이다" 라는 오지호 화백의 말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그는 약동하는 풍경 속에서 느낀 삶의 환희를 자신의 특유의 붓질로 재빠르고 리드미컬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러한 점에 주목하여 오지호 화백 이후의 남도 작가들의 회화를 조망해보면 그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남도 미술의 새로운 전통과 서사를 찾을 수도 있다. 남도 미술이 가지고 있었던 강렬한 색채 대비와 미적 변형의 전통을 오지호 화백으로 시작하는 '미적 환희의 붓질' 서사로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이번 오지호 화백의 아카이브 전시는 필자가 생각한 이러한 서사 말고도 동시대 미술 또 다른 서사 확장의 초석으로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장민한 (조선대 시각문화큐레이터 전공 교수)

오지호, 남향집, 1939, 80×65cm, 캔버스에 유채

오지호, 모란, 45x38cm, 캔버스에 유채, 1969,광주시립미술관

오지호, 무등산이 보이는 구월풍경, 24x33cm 1949

오지호, 사과밭, 73x91cm, 1937

오지호 아카이브 전시 전경

오지호 아카이브 전시 전경

오지호 아카이브 전시 전경

오지호 아카이브 전시 전경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