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 '독' 짓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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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 인문학
이윤선의 남도인문학> '독' 짓던 사람들
  • 입력 : 2020. 11.12(목) 10:23
  • 편집에디터

1963년 광주 신창동유적에서 출토된 옹관- 유물번호: 신창2568 옹관 1점. 국립광주박물관 제공

광주 신창동 선사유적지 북쪽 1.5Km, 월계동 장고분(기념물 제20호)이 있다. 기원전 2세기에서 1세기로 편년되는 초기 철기시대의 유물들이 쏟아져 나온 바 있다. 늪과 못터, 토기 가마터, 배수 시설, 집터와 독무덤 등이다. 농경생활과 관련된 유적들을 다량 확인할 수 있다. 영산강의 습지와 낮은 구릉지대가 마치 작은 사막처럼 연결되어 있는 충적지대다. 영산강의 범람에 의해 형성되었을 늪과 못터가 10개 층, 크게는 3개 단위로 발견된 바 있다. 이곳에 살았던 이들이 영산강의 토착민들이다. 출토유물들은 빗 괭이, 나무뚜껑, 굽다리 접시, 검은 간토기 등의 목재류와 토기류, 칠기류, 석기류는 물론 탄화미, 탄화맥, 볍씨, 살구씨, 호도씨, 오이씨 등의 씨앗류 등이고 민물 조개류, 물고기뼈, 짐승뼈 등 다종다양하다. 칠기와 한반도 최초의 현악기, 북, 마차 바퀴 등 토착민들의 수준 높은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독무덤은 이 토착민들의 어린이무덤으로 해석되었다. 고고학자들이 이를 독무덤이라 이름붙인 이유는 물론 '옹기(甕)'에 있지만, 또한 돌(독)을 포괄하는 남도지역 언술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내가 관심을 가지는 부분은 위와 같은 수준 높은 생활과 관념 혹은 종교적인 마음 따위가 이미 기원 전 한반도 남도지역에 형성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죽음과 특히 어린이들의 주검에 투사하였을 영산강변 선사인들의 마음이 이른바 옹관으로 표상된 셈이다. 영산강과 서남해 전역에 분포하는 옹관에 대한 관념은 거슬러 올라가면 고인돌로, 종국에는 동굴의 이미저리에 이른다.

광주 신창동 선사유적지의 독무덤으로부터

신창동 관련 보고서에 의하면 유적의 서쪽 구릉 경사면에 53기가 발견되었다. 독의 기본 형태는 평저난형(平底卵形)이다. 평저난형은 1세기 초반에서 3세기초반 서울 가락동 2호분 토기에서도 발견된다. 흑유, 이중구연호, 승문 평저 난형호 등 초기 백제인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보고되었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석촌동 토광묘의 파수부용기, 원저호, 공주 남산리 우각형 파수부용기 등이 무문토기의 전통을 충실히 따르는 백제 초기의 특징을 지닌다고 한다. 이것이 백제 초기의 풍속인가 아니면 마한의 습속인가? 마한을 고대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연구자들이 많고 실체가 완벽하게 규명되지 않아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유적과 유물들을 더 발굴하다보면 언젠가는 명료한 얘기를 할 수 있는 날이 올지 모르겠다. 어쨌든 광주 신창동 독무덤에서 나온 유물은 무문토기와 평저장경호(平底長經壺) 등의 토기류, 청동제 칼자루 장식, 돌도끼, 돌화살촉, 철제 도구 등이다. 철제는 땅을 파는 도구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궁금한 것은 어린이를 매장한 53기의 독무덤에 대한 해석이다. 특히 남도지역 전반에 걸쳐 전해 온 돌무덤 즉 독장의 존재에 대한 의문이다. 천년을 두 번이나 지나오면서도 이 풍습이 끊이지 않고 전해 온 까닭 말이다. 남도지역에서 어린이 무덤을 흔히 '독장' 혹은 '독담'이라 한다. 울릉도 '독도'도 독도(獨島)보다는 '독(돌)섬'이라는 뜻이 강하다. 전라도 해안가 사람들이 고기잡이 다니면서 붙인 이름이라는 주장이 그래서 나왔다. 따라서 독장이니 독담이니 돌무덤이니 하는 호명들은 돌로 쌓은 묘지라는 뜻이다. 주검을 옹기에 넣고 그 위에 돌을 쌓아 만든 형태를 취한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옹장(甕葬)과 석장(石葬)을 병합한 묘제다. 옹장은 토기의 제작과 관련되어 있을 것이나 석장은 그 이전, 동아시아 전 지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옹장(甕葬)과 석장(石葬)의 아우라

삼국사기 신라본기 탈해이사금조의 석총(石塚)이야기를 상고해본다. 탈해는 박혁거세와 2대왕 남해 및 유리를 이은 신라 제4대왕이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약간 다른 버전들이 실려 있다. 삼국유사 탈해왕조 중 탈해가 거짓 꾀를 내서 호공의 집을 취하는 대목이 있다. "말을 마치자 어린 아이가 지팡이를 끌고 노비 둘을 데리고 토함산에 올라 석총(石塚)을 쌓고 7일간 머물렀다. 성 중에 살만한 곳을 바라보니 한 봉우리가 초승달 같은 형세로 오래 살만한 곳이므로 내려와 찾아보니 호공댁이었다. 이에 거짓 꾀를 내어 숫돌과 숯을 몰래 그 옆에 묻었다." 이하 내용은 생략한다. 내가 흥미를 갖고 있는 것은 석총(石塚)이다. 돌무지무덤, 고인돌, 돌널무덤 따위를 이르는 말이다. 돌을 쌓아 올려 만든 높은 무덤 예컨대 만주 지안(集安) 일대의 토총이나 고구려 고분 등이 대표적이다. 중국 동북지역을 포함해 우리나 전반에 걸쳐 분포하는 고인돌을 연상하게 한다. 특히 한반도의 남도지역은 세계적인 고인돌 집산지라는 점 전제해 둔다. 탈해가 왜 돌무덤을 쌓고 그 안에서 7일 동안 머물렀을까? 탈해를 낳은 여국의 왕녀도 7년 만에 알을 잉태하지 않았는가. 지면상 생략하지만 7일은 북두칠성의 칠성신앙과 긴밀하게 연관된다. 탈해의 돌무지 쌓기를 제의(祭儀)행위로 풀이한 윤철중에 의하면, 이 의례를 통해 토함산의 천신 곧 천제자(天帝子)의 아들 천제손(天帝孫)의 자격을 획득하였다 한다. 나는 김열규의 해석을 인용하는 편이다. 이 의례를 죽음과 재생을 표상하는 상징적인 시현(示顯)으로 봤기 때문이다. 돌무지무덤을 만들고 그 안에서 7일 동안을 머물렀다는 상징적인 사건 혹은 의례가 주는 영감이 크다. 단군신화에서의 삼칠일 즉 세 번의 칠일과 연결되는 고리를 발견할 수 있다. 한마디로 돌무덤은 동굴 즉 자궁의 다른 이름이다. 옹관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옹관을 어머니의 자궁으로 독해하는 사례가 많다는 점 부기해둔다. 왜 그러한가에 대해서는 차차 기회를 만들어 설명해 나가겠다.

남도인문학팁

주몽의 탄생과 국동대혈

국동대혈에 대해서는 이 지면을 빌어 소개한 바 있으므로 그 맥락만 다시 소환해본다. 유화가 어부의 그물에 걸려 동부여의 금와왕에게 갔다. 금와왕은 유화가 천자의 아내(妃)라는 것을 알고 별궁에 가둔다. 이때 햇빛이 몸을 비추어 임신하였다. 이윽고 왼쪽 겨드랑이에서 큰 알을 낳았다. 왕이 알을 버렸으나 말과 소들이 피해가고 새가 깃으로 품어주었다. 하는 수 없이 유화에게 돌려주었다. 마침내 한 사내아이가 알을 깨고 나왔다. 한 달이 지나 말을 하고 활과 화살을 주자 백발백중으로 파리를 잡았다. 그래서 이름을 주몽(朱蒙)이라 하였다. 알에서 태어난다는 건국 난생신화는 주몽을 포함해 신라의 박혁거세, 탈해, 가야의 수로 등을 들 수 있다. 나는 유화의 국동대혈과 금와왕의 별궁(別宮)을 유사 설화소로 파악하고 있다. 햇볕을 받고 임신했다는 것은 하늘과 통하는 통천동 곧 국동대혈의 다른 버전이라는 뜻이다. 호랑이와 곰이 함께 살았다는 단군신화의 동굴과도 맥락이 같다. 이를 범과 곰 즉 음양론으로 풀어 동굴 안에서의 음양 교접으로 해석하거나 아예 음양오행으로 푸는 경우도 있다. 어쨌든 동굴에서 사람으로 거듭난 곰이 여성이 되었기 때문에 다시 단군왕검을 낳을 수 있었다. 나는 또한 이 동굴을 자궁의 은유로 해석한다. 유화의 방(宮)이나 왼쪽 겨드랑이 또한 여음골, 여음곡 등으로 빈출하는 자궁의 유사 모티프다. 동굴(窟)이 구멍(穴)이고 이것이 자궁(子宮)으로 은유되기 때문이다. 한의학에서 남성은 아홉 구멍이 있고 여성은 열 구멍이 있다 한다. 남성이 소변과 생식을 요도(尿道)라는 똑같은 통로를 이용하는 반면 여성은 소변과 생식을 구분하기 때문이다. 아기집 자궁(子宮), 오묘한 동굴 아우라는 인류문화사 전반에 깊고 넓게 표상된다.

1963년 광주 신창동유적에서 출토된 옹관* 유물번호: 신창2570 옹관 2점. 국립광주박물관 제공

1963년 광주 신창동유적에서 출토된 옹관* 유물번호: 신창2571 옹관 2점. 국립광주박물관 제공

국립나주박물관 1층 상설 전시실에는 영산강 유역인 전남 영암군 시종면 내동리에서 과거 발굴된 현존 최대 규모인 280㎝ 옹관묘가 전시돼 있다.국립나주박물관 제공

국립나주박물관 1층 상설 전시실에는 과거 영산강유역 등에서 출토된 대형 옹관묘들이 전시돼 있다. 국립나주박물관 제공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