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내서 소 사야 융자금 지원?" 폐사 농가 '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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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빚내서 소 사야 융자금 지원?" 폐사 농가 '울상'
●끊나지 않는 폭우 피해||전남도 녹색축산육성기금 사업||소 구입 실적 확인 후 집행 가능||"지금도 빚더미인데" 농가 고충 ||전남도 가축 폐사에 총 16억원||현재 2개 농가 7000만원 지급
  • 입력 : 2020. 10.26(월) 17:23
  • 도선인 기자
지난 8월 구례군 구례읍 양정마을 수해 현장에서 가까스로 구조된 소들이 머물던 축사로 향하는 트럭에 실리고 있다. 뉴시스
지난 8월 집중호우로 전남 일부지역에 큰 피해가 발생했다. 그 중에서도 목축업을 하던 구례의 경우 수많은 가축들이 폐사하고 집까지 파손되면서 생활 터전 자체가 소실돼 농가의 깊은 시름을 자아내기도 했다.

3개월여가 지난 10월 현재, 과연 이들 이재민들의 한숨은 얼마나 걷혔을까.

26일 전남도에 따르면 8월 집중호우로 인한 피해는 담양·곡성·구례 등 10개 시·군 축산농가 349개소에서 가축 폐사 20만6000마리, 축사퇴비사 71동 파손 등 약 121억원 정도다. 해당 지역은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됐다.

이에 전남도는 가축 폐사 지원을 위해 융자금 16억원을 배정했다.

세부적으로 보면 전남도는 '녹색축산육성기금' 명목으로 32농가에 △가축 입식자금 23개소 13억원(2년 거치 3년상환) △깔짚미생물 구입자금 9개소 3억원(2년 거치 일시상환)을 지원하기로 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배정된 융자금 16억원 중 2농가에 7000만원 지급이 완료된 상황이다.

문제는 이런 전남도의 지원에 대해 이재민들은 되려 울상을 짓고 있다는 점이다. 지원 방식이 실적확인 이후 지원금을 집행하는 '선조치후지급' 이기 때문이다.

'녹색축산육성기금 융자사업'은 축산업자가 피해를 본 만큼 가축을 구입한 것에 대한 실적이 확인돼야 융자금 지급이 이루어지는 형태다. 즉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축산농가가 가축을 구입한 관련 증빙서류를 마련 후 관련 은행에 제출하고 이후 전남도가 실적을 확인한 다음 융자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이 방식대로라면 이번 집중호우로 인해 가축 폐사 피해를 입은 축산업자들은 융자금 지원을 받기 위해 늦어도 11월 말까지 가축을 구입해야 하고 관련 증빙 서류를 은행에 제출해야 한다. 만약 폐사한 만큼의 가축을 추가로 살 돈이 없다면, 축산 농가 별로 연장 신청을 해야 한다.

다시 말해 폐사된 가축만큼 구입해야 돈을 받을 수 있다는 것. 당연히 돈이 없는 영세농가는 그야말로 막막하다. 심지어 이들 중 일부는 이미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가축을 구입했다가 폐사한 경우도 있어, 돈 빌릴 곳 조차 전무한 상태다.

구례에 거주하는 A씨는 "집중호우로 인해 키우던 번식우가 절반 넘게 폐사했다. 이미 은행에 대출받아 키우던 소들이 죽었기 때문에 대출한도가 걸린다"며 "폐사뿐만 아니라 축사 수리 등으로 주머니에 남은 돈이 없다. 그런데 다시 가축을 사라고 한다. 이게 지원대책 맞느냐?"고 반문했다.

또 다른 피해자인 B씨는 "집중호우 피해로 인해 지금까지도 경황이 없다. 더욱이 처음부터 빚을 내고 소를 구입했던 상황이라 이번 집단 폐사로 모든 것이 날아간 상태"라며 "국가가 지원해준다고 해서 그 비용으로 소를 구입하고자 했는데, 먼저 구입 영수증을 제출하라고 하니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B씨는 이어 "다른 축산업자들도 어떻게서든 융자금을 받아야 하니깐, 개인적으로 빚을 내서 억지로 소를 구입하고 있다. 올해는 11월 말까지 관련 증빙 서류 제출을 끝내라고 들었는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암담할 따름이다"고 말했다.

관련 은행도 난색을 표한다. C은행 관계자는 "많은 축산업자가 집중호우 피해 복구를 위해 이미 대출금을 받은 상황이어서 추가 대출이 어려운 농가도 상당하다"며 "이번 집중호우는 피해가 심하다 보니 긴급지원의 형태가 필요한데, 지금의 대책으로는 축산농가 정상화가 더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남도는 어쩔수 없다는 입장이다. 전남도 관계자는 "정부에서 시행하는 융자사업 대부분이 실적확인 이후에 비용 지급이 진행되는 형태"라며 "실적 확인 없이 선지급하면, 지원금이 다른 용도로 사용될 우려가 있어 다른 방법이 없다"고 답변했다.

도선인 기자 sunin.do@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