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 바리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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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 인문학
이윤선의 남도인문학> 바리데기
  • 입력 : 2020. 08.26(수) 14:54
  • 편집에디터

해남씻김굿 이수자 명인의 길닦음에서 사용하는 넋당삭(혼령을 싣고 하늘로 가는 배)-이윤선촬영

"비바람이 몰아치는 바다, 배 한 척이 격랑 속의 나뭇잎처럼 거칠게 흔들리며 파도와 파도를 간신히 타넘어 간다. 키 잡는 방이 배 위에 작은 집처럼 솟아오른 어선이다. 그 배의 밑바닥은 잡은 고기를 가두어놓는 곳이다. 사람이 허리를 펴고 앉아 있을 수조차 없는 낮은 천장 아래 바닥에는 물이 찰박거리며 차올랐다. 거기 꾸물꾸물 움직이는 사람들이 보인다. 열 스물 서른 남짓의 남녀와 아이들이 보인다. 뱃전을 울컥이며 넘어간 물결이 갑판을 휩쓸고 어물칸에 쏟아져 들어간다. 아이들과 여자가 허우적거리며 기어 나온다." 황석영의 소설 <바리데기>(2007)에서 탈북소녀 '바리'가 밀항하는 장면이다. 군더더기 미장센이 장치될 틈이 없다. 긴박하다. 하지만 망망대해에 놓인 개별 존재로서의 고독들이 마주하는 리얼리즘으로서의 씨줄은 꿈과 환상이 뒤섞인 날줄과 촘촘히 얽혀있다. 현실이 환상이 되고 환상이 현실이 되는 서사의 교직과 변주라고 할까. 그런데 왜 내게는 이 잔혹한 풍경들이 낯설지 않게 느껴졌던 것일까. 마치 요나의 물고기처럼 어디선가 보거나 들었던 풍경들, 아니면 당금애기의 여정이었을까. 이 소설에 대한 내 상상의 이미저리다. 바다에 던져지는 시신들, 강간당하는 처절한 장면들을 구원에 대비한 복선(伏線)들로 읽게 된 까닭이기도 하다. 나는 이를 그간의 <손님>(2001), <심청, 연꽃의 길>(2003) 등 우리 신화 풀어내기 방식들이 비로소 안착되는 구성이라고 생각한다. 소설의 제목이 표방하듯, 무조신화 <바리데기>의 서사에 <손님>에서의 남북과 종교적 갈등, <심청>에서의 여성을 탈북소녀를 통해 얹어낸 방식 말이다. 황석영은 이 소설에서 밀항선의 물고기 저장고를 통해 참혹하고도 긴박한 존재의 투쟁을 그려내고 재생의 복선들을 깔아두었지만, 정작 원전신화 <바리데기>는 수많은 은유와 상징들을 어쩌면 무덤덤하게 그려낼 뿐이다. 하지만 배후의 아우라는 깊고 넓다. 문자 그대로 정중동이랄까.

황석영의 소설 <바리데기>와 무조신화 <바리데기>

홍태한이 주도하고 이경엽 등이 부가한 '서사무가 바리공주전집'(민속원, 1997~2001)에는 무려 90여 편에 가까운 바리데기 무가가 정리되어 있다. 지금도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을 것이므로 언젠가는 100여 편이 넘는 무가가 정리되어 나올 것이다. 홍태한은 <한국민속대백과사전>에서 바리데기를 이렇게 설명한다. "한국의 망자천도굿인 서울지역 진오기굿의 말미거리, 호남지역 씻김굿의 오구풀이거리, 동해안지역 오구굿 발원에서 구연되는 장편서사무가다." 바리공주는 서울지역에서 부르는 말이고 호남이나 동해안지역에서는 바리데기라 부르기 때문에 황석영의 소설 <바리데기>는 은연중 호남이나 동해안의 무속서사를 차용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무속서사 <바리데기>는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다. 하지만 공통적인 줄거리는 같다. 이를 중핵 혹은 핵심줄거리라 한다. 대강은 이러하다. 바리데기 부모가 혼인을 한다. 바리데기 부모가 연이어 딸을 낳는다. 딸 여섯을 낳고 여러 가지 공을 드렸는데도 일곱 번째 또 딸을 낳는다. 바리데기를 버린다. 이후 세월이 흘러 바리데기 부모가 병에 걸린다. 목숨을 구할 약이 서천서역국의 환생초 약수임을 알게 된다. 바리데기가 부모를 만난다. 여섯 딸들에게 약을 구해올 것을 요청하지만 딸들은 모두 핑계를 대고 거절한다. 버림받았지만 효성이 지극한 막내딸이 약수를 구하러 길을 떠난다. 바리데기가 약수를 지키는 이를 만난다. 약수를 얻기 위해서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산값, 길값, 물값 삼년씩을 살아주고 혼인하여 아들을 낳고 약물을 구해 와서 부모를 살려낸다. 아버지가 죽어서 상여 나가는데 약물을 마시고 살아나는 등 갖가지 버전이 있다. 이윽고 바리데기는 부모를 살린 공을 인정받아 오구신으로 좌정하거나 아들들과 함께 시왕으로 봉해진다. 바리데기 이름은 바리덕이, 바리공주, 벼리데기, 비리데기, 버르댁이, 보르데기 등으로 나타난다. 부모의 이름이나 신분은 덕주아와 수차량, 업비대왕마마, 오귀대왕과 길대부인, 천별산 대장군과 검탈에 병오 등으로 나타난다. 바리데기는 연구자들에 따라 남성중심주의의 극복, 죽음의 극복 등을 주도하는 캐릭터로 분석된다.

주인공 바리데기와 오구굿

"속내우 걷어 입고/ 은동우 옆에 끼고/ 은또가리 팔에 걸고/ 앵도쪽박 손에 들고/ 수양산을 물으실제/ 양월공산 깊은 밤에/ 승냥이 슬피 울고/ 호포는 왕래하니/ 보리데기 놀라/ 산신님께 축수하니/ 명명하신 황천후토/ 사해용왕 신령님네/ 일개 여자/ 정성을 살펴서/ 시왕산 가는 길을/ 어서 급히 득달하야/ 소원성취 하오리다." 목포대 이경엽 교수가 중심이 되어 채록 집필한 '해남씻김굿'(민속원, 2018)의 오구굿 중 한 대목이다. 버림받은 바리데기가 어머니의 요청을 받아들여 서천서역국으로 떠나는 장면을 동서고금의 고사들을 차용해 노래하고 있다. 서천서역국은 저승이다. 하지만 백이숙제가 절의를 지키다 죽은 수양산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진시황 때 난리를 피해 숨어 바둑 두던 상산사호(商山四晧)의 상산(商山)으로 소환되기도 한다. 바리데기 신화는 진도지역을 제외한 우리나라 전 지역 무속의례에서 연행된다. 이를 오구굿이라 한다. 왜 진도지역이 제외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지면을 달리해 소개하겠지만, 바리데기를 주인공 삼은 오구굿의 깊이와 넓이를 쉽게 재단하기 어렵다. 우리나라 무속의례의 중핵이자 융숭 깊은 이면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죽은 이의 넋을 위무하는 사령제(死靈祭)의 하나다. 남도지역의 씻김굿, 서울지역의 지노귀굿, 함경도지역의 망묵굿 등이 한 통속이다. 사람이 죽어서 행하는 것을 '진오구굿'이라 하고 죽은 지 일정한 기간이 지나 행하는 것을 '마른오구'라 한다. 남도씻김굿에서 초상에 치루는 굿을 '곽머리씻김'이라 하고 일정한 기간 이후에 행하는 것을 '날받이굿' 혹은 '마른씻김'이라 하는 것과 같다. 해남 무속의례를 참고해보면 부정, 안당, 선부리, 오구굿, 제석굿, 손님굿, 넋올리기, 고풀이, 씻김, 길닦음, 퇴송 등의 순서로 연행한다. 남도지역에서는 오구굿을 오구물림이라고도 한다. 의문이 든다. 망자를 천도하는 의례 중에서 왜 바리데기라는 주인공이 등장할까. 여러 연구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바리데기는 아들을 희구하는 세상에서의 버림받은 존재이며 남성으로서의 아버지를 위해 희생하는 여성 캐릭터일까? 황석영이 탈북녀 바리를 처참한 어선 물고기칸에서 건져내듯, 바리데기 신화의 이면, 그 배후에는 어떤 상징과 뜻들이 도사리고 있는 것일까.

아! 어머니, 안병무의 <선천댁>에 기대어

일 년여 전 나는 이 지면을 통해 '어머니란 무엇인가'를 말한 적이 있다. 아들 없던 예순여섯 내 아버지에게 씨받이로 오셔서 나를 낳으셨지만 족보에도 그림에도 그 어떤 글에도 기록되지 않은 어머니 얘기였다. 더불어 이름도 빛도 없이 살다 가신 이 땅 민중들에 대한 행간을 읽어내려 했던 노정이기도 했다. 내 생모의 호명은 '개골네'였다. 고길(개골)마을의 여편네라는 뜻이다. 갯가의 골짜기 마을이었으니 붙여진 이름일 것이다. 아들딸 넷을 낳았으나 본 남편이 병사하였다. 병수발로 작은 재산마저 거덜 난 어머니는 입에 풀칠하기조차 어려웠다. 두 딸은 식모살이 보내고 작은 아들은 고아원으로 보냈다. 큰 아이 하나 부둥켜안고 살았다. 아들 낳아주면 밭뙈기를 떼어주겠다는 아버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굶어죽는 일은 면하게 되었다. 하지만 자미원의 궁문을 열어 나를 이 땅에 내려놓으신 순간, 치욕적인 호명 씨받이가 덧붙여졌다. 재작년 졸저 <산자와 죽은자를 위한 축제>(민속원, 2018)를 내며 서문에 그렇게 써두었다. 음력 5월 24일 유시(酉時) 내 생일날이자 내가 태어난 바로 그 시간에 운명하신 뜻이 무엇일까라고. 참으로 기묘한 일시에 운명하신 어머니를 재삼 묵상한다. 바리데기가 막내딸로 태어나 버림받고 구사일생으로 살아온 내력을 닮아서일까. 탈북녀 바리가 천변만화의 역경을 넘어 구사일생하는 내력과 같아서일까. 자식 없던 노인에게 몸이 팔려 아들자식 낳아준 또 하나의 당금애기여서일까. 한 몸 희생하여 자식들과 눈 먼 세상을 구원한 또 하나의 심청이어서일까. 내 묵상은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민중신학자 안병무가 남긴 유작 '선천댁'에 가 닿는다. 이 또한 그의 어머니 이야기가 소재다. 구미정 교수는 그의 글 '데기-되기: '선천댁'에 나타난 안병무의 '민중 구원론 다시 읽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안병무의 어머니 선천댁은 비문자 계층의 여성으로, 당대 거의 모든 여성들이 그러했듯이 가부장적 가족제도 안에서 차별과 희생을 겪었다. 식자인 남편의 모진 학대와 냉대 속에서 부엌데기로, 소박데기로, 바리데기로 살았다. 그러나 그녀는 자기를 버린 남편과 그 남편을 빼앗아간 첩에 대해 분노와 증오의 감정을 품기는커녕 연민과 자비로 보듬었다." 안병무의 민중신학이 선천댁의 '연민의 윤리'에서 발견한 민중의 자기초월적 단초라는 얘기다. 14세기 독일 신비주의 사상의 대가였던 마이스터 엑카르트의 '하느님-아기를 낳음'에 견주어서도 설명한다. 엑카르트는 하느님의 본질을 '낳음'이라고 말한다. 오구굿 바리데기를 빌어 말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하느님의 본질은 '또 낳음'이고 '되기'이며 다시 살아오는 그 무엇 아닐까. 그래서일 것이다. 오구굿의 말미는 "되아 오소 되아를 오소서"라고 노래한다. 죽은 자가 살아서 그 어떤 무엇으로 살아오는 과정이라는 함의다. 나는 내 어머니를 묵상할 때마다 늘 이 지점을 서성인다. 내 운문적 정조가 머물러 있거나 어쩌면 방황하는 경계일지도 모른다. 거기에는 버림받았지만 재생과 환생의 화신이 된 바리데기가 있고 당금애기가 있으며 연꽃으로 환생한 심청이 있다.

남도인문학팁

바리데기의 복선(伏線), 오구굿의 배후

남도지역의 오구의례를 위한 장치들은 그리 복잡하지 않다. 무속의례 자체가 매우 소박한 지역적 특색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리듬과 선율, 곧 장단과 노래를 중심에 두는 심미안의 발로 때문이다. 당골은 작은 시루에서 넋당석을 거쳐 긴 실을 뽑아내며 바리데기의 내력을 읊는다. 실은 생명줄이기도 하고 이승과 저승을 이어주는 다리이기도 하다. 정월이라 초하룻날 납채(納采)를 들이고 이월이라 열이렛날 사성(四星)을 들인다. 삼월이라 삼짇날 부부인연을 맺었더니 태기가 생긴다. 한 달 두 달 이슬 모아 삼석달에 입덧 나더니 연이어 달을 거치고 열 달 만에 바리데기를 낳는다. 일생의 서사에 다름 아니다. 긴 출생의 여정 과정에서 일곱이라는 7수와 막내딸의 버림, 아버지의 병듦과 바리데기의 서천서역 여행이 융숭 깊게 노래된다. 부모를 구하기 위한 약수는 아홉 해 동안의 혼인생활과 아홉 아들을 낳아주는 조건으로 완성된다. 이후 아홉 아들과 더불어 좌정하니 오구 시왕(十王)이다. 내가 주목하는 이 드라마의 미장센들은 실과 시루와 넋당삭과 알곡들의 배후에 직조된 씨줄과 날줄의 은유들이다. 바리데기가 구하는 약수는 환생초이자 불로초이고 거듭남의 핏물이자 재생의 떡 덩어리다. 이승과 저승, 현실과 환상, 과거와 현재, 시공을 넘나드는 무가의 사설들이 촘촘하게 배열되어 노래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불교 수용 이후 많은 변화들을 거쳤거나 재구성되었겠지만 바리데기 이야기가 죽은 자의 넋을 위무하는 절차로 연행되는 이유를 나는 여기서 찾는다. '되아 오소서' 오구굿 사설의 말미가 이를 명료하게 보여준다. 망자의 재생 혹은 부활에 대한 염원 말이다.

해남씻김굿 이수자 명인의 오구굿 장면-해남군청 제공

해남씻김굿 이수자 명인의 오구굿 중 명줄 당기기 장면-이윤선촬영

해남씻김굿 이수자 명인의 오구굿(시루 안에 두 개의 실타래가 보인다)-이윤선 촬영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