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수로 복개의 역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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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
배수로 복개의 역습
  • 입력 : 2020. 08.13(목) 16:37
  • 이기수 기자
이기수 사진
올 여름 역대 최장 장마와 기록적인 폭우로 최악의 물난리가 났다. 생계 터전이 순식간에 물바다로 변해 수천 명의 수재민이 나왔다. 광주·전남을 비롯해 전국 곳곳에서 홍수( 洪水)가 발생했다. 홍수는 대체로 단 간 집중호우나 장기간 지속되는 강수의 결과로 발생한다. 이번 홍수는 50일이 넘은 긴 장마와 이달 7일부터 9일까지 집중적으로 내린 폭우 때문이었다.

담양 지역은 이 기간에 평균 546.9mm, 특히 봉산면은 641.5mm 등의 많은 비가 내려 3명이 사망하고 재산 피해액 1154억 원(13일 잠정 집계)으로 전남도 내에서 구례(1268억) 다음으로 큰 피해가 발생했다. 특히 담양읍 담주리 객사리, 지침리, 천변리 중앙로 일대 도심이 물에 잠겼다. 이 같은 홍수는 1989년 이후 처음이다. 특히 담주리와 객사리는 담양의 대표 관광지인 죽녹원의 인근에 있는 마을이다. 영산강 상류인 담양천의 범람을 막고 있는 관방제(둑)가 북쪽으로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지역이다. 이 곳은 하천 둑이 붕괴돼 홍수가 난 것이 아니다. 많은 비로 담양천의 물이 불어나면 이 곳 배수로는 무용지물이 된다. 배수로는 담양천으로 연결돼 있는데 하천 물높이가 높아지면 수압 때문에 도심의 물이 빠지지 못하게 된다. 역류가 일어나 도심 도로와 저지대 주택이 물에 잠길 수밖에 없다.

담양 도심이 물바다로 변한 주된 요인은 집중 폭우지만 치수 시설인 배수로가 복개된 탓도 한 몫했다. 과거에는 담주리와 객사리 등에 크고 작은 배수로가 노천 상태로 설치돼 있었다. 주민들은 비가 많이 내린 날이면 이곳으로 흙탕물이 흐르는 모습을 마치 물구경하듯 지켜보곤 했었다. 하지만 이런 치수 시설은 도시화로 인해 모두 복개된 상태다. 모기 서식지와 악취 발원지를 없애고 도시 외관도 산뜻해졌고 복개된 부지에 도로 등이 개설돼 토지를 고효율적으로 사용하게 됐다. 이런 게 득이라면 실이 있기 마련이다. 이번처럼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지면 시멘트 뚜껑을 쓴 배수로는 홍수에 전혀 역할을 하지 못한다. 되레 담양천물이 주민의 생활 터전을 공격하게 만드는 통로가 된다. 이런 현상은 담양읍 내 뿐이 아니고 전국 도시에서 모두 발생하고 있다.

광주 양동시장도 이번 집중호우로 광주천이 범람할 위기를 맞았다. 이곳 역시 광주천이 복개된 곳으로 늘 많은 비가 내리면 물 흐름에 병목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여하튼 앞으로 기후변화가 심화하면 홍수 피해가 잦아질 수 있다. 기존 치수 대책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국민 생명과 재산 보호 차원에서 정부와 지자체가 관련 예산을 늘려 소하천과 도심 침수지 배수로 정비에 나서는 등 달라진 기후 위기에 적극 대처해야 할 때가 됐다. 이기수 논설위원

이기수 기자 kisoo.lee@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