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의 경험은 우리에게 투쟁 계속하게 하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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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 경험은 우리에게 투쟁 계속하게 하는 힘"
‘홍콩혁명’ 주도 조슈아 웡, 故 문재학 열사 모친 김길자씨와 영상통화||민주화는 광주와의 공통점… “더 나은 자유사회 만들 것”
  • 입력 : 2020. 07.22(수) 18:20
  • 오선우 기자

"안녕하세요. 광주에서 민주화운동하던 문재학이 엄마 김길자입니다."

오후 4시 찾은 광주 북구 신안동의 한 주택. 적막 속에 5분 정도가 지나자 '띠링'하는 소리와 함께 통화가 연결됐다.

40년 전 17세 고등학생 신분으로 5·18민주화운동에 투신했던 문재학 열사. 그의 어머니 김길자(81) 여사는 홍콩의 민주화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운동가 조슈아 웡(24)씨와 화상을 통해 만났다.

통화가 연결된 것을 확인한 두 사람은 영어 통역을 통해 서로를 소개한 후 차분한 목소리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조슈아 웡은 "이렇게 얼굴을 뵈니 우리 어머니 같다. 홍콩에서도 민주화운동을 하는 자식들을 뒷바라지하는 어머니들의 희생이 있다"면서 "딸과 아들을 걱정하는 소중한 마음이 많은 이들에게 인식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김 여사는 통화 도중 아들이 생각난 듯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말을 이어가며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쳤다.

김 여사는 "조슈아 님을 보니 우리 재학이가 생각난다"면서 "어린 나이에 민주화운동에 투신한 점이 우리 재학이와 닮아 너무 반갑고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 든다"고 했다.

조슈아 웡은 현재 홍콩 상황을 김 여사에게 설명하고, 광주의 5·18이 홍콩의 민주화운동에 큰 영감과 에너지를 주고 있다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조슈아 웡은 "지금 홍콩에서는 고등학생들이 전경의 폭력을 경험하고, 심지어 11살 어린 학생도 체포되는 지경"이라며 "지난해에는 경찰이 실탄과 최루탄을 사용하면서 사태가 심각해졌다"고 했다.

이어 "그럼에도 광주의 경험은 우리에게 투쟁을 계속하게 하는 힘을 준다"면서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젊은이들이 민주화운동에 동참하기를 희망한다"고도 했다.

홍콩의 민주화를 위해 앞으로도 운동에 전념하며 자신을 희생할 각오도 피력했다.

조슈아 웡은 "나보다 어린 사람, 젊은 사람이 내가 겪었던 고통을 다시 겪게 하고 싶지 않다"면서 "어제의 광주는 오늘의 홍콩이다. 나는 앞으로도 진실과 정의를 위해 계속 싸워나가겠다"고 했다.

김 여사는 문 열사의 모습이 담긴 사진과 희생 당시 사진, 80년 이후 민주화운동에 투신했다가 고초를 겪은 자신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차례로 조슈아 웡에게 보여주며 광주의 5·18의 진상을 전했다.

김 여사는 "경찰에게 맞아가면서 민주화운동을 했던 것도 다 아들을 위했던 것"이라며 "나는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민주화운동을 계속해나가겠다"고도 했다.

통화하면서 금세 친해진 두 사람의 대화는 통화 말미쯤에는 친한 어머니와 자식 사이처럼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김 여사는 조슈아 웡이 한국을 방문하게 되면 꼭 자신의 집을 찾으라며 신신당부하기도 했다.

조슈아 웡은 "지금은 코로나19 사태에 해외여행 제한, 재판까지 진행 중이라 찾아뵐 수 없다"면서 "코로나가 안정되면 직접 문 열사 묘소를 찾아 헌화하고, 어머니를 만나 감사인사를 전하겠다"고 했다.

김 여사는 "이다음에 만나면 우리 재학이가 좋아하던 김치찌개를 끓여 같이 먹었으면 좋겠다"면서 "첫째도 둘째도 몸조심이 제일 중요하다. 반드시 민주화운동에 성공하길 바란다"며 마무리 인사를 전했다.

이날 화상통화는 조슈아 웡의 요청으로 이뤄졌다. 그는 5·18 40주년을 맞아 지난 5월 광주를 찾을 예정이었지만, 홍콩 국가안전유지법(보안법)과 코로나19 확산 장기화로 인해 불발됐다.

이에 조슈아 웡은 지난 14일 한국인 지인을 통해 국립5·18민주묘지의 문 열사 묘소에 헌화했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김 여사는 다이얼로그차이나 측을 통해 조슈아 웡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고, 이를 전달받은 조슈아 웡이 김 여사와의 화상통화를 제안해 진행하게 됐다.

화상통화는 애초 예정됐던 오후 3시에서 1시간 미뤄져 오후 4시께부터 20분가량 진행됐다. 화상통화를 진행한 다이얼로그차이나 측은 사전에 정보가 공개될 경우 홍콩·중국 측의 전파 방해 등이 발생할 가능성을 우려해 보도자료를 내지 않는 등 신중을 기했다.

문 열사는 광주상고 1학년에 재학 중이던 5·18 당시 80년 5월27일 동구 옛 전남도청에서 신군부의 폭압에 맞서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끝까지 맞서던 중 산화했다.

오선우 기자 sunwoo.oh@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