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강현주>포스트코로나 시대, 농산물의 누명과 식량안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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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강현주>포스트코로나 시대, 농산물의 누명과 식량안보
강현주-농협전남지역본부 홍보실장
  • 입력 : 2020. 07.06(월) 13:07
  • 편집에디터
강현주 농협전남지역본부 홍보실장
'전설의 고향'을 보고 잠 못 이루던 어린 시설이 있었다. 지천명(知天命)을 바라볼 나이가 되니 그 드라마가 30년 이상 장수한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귀신이 나오니 으레 공포물이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훈훈한 이야기가 많다.

그 드라마에는 한결같은 줄거리가 있다. 첫째 억울한 원혼이 존재한다는 것, 둘째 그 억울함을 듣는 사람이 있다는 것, 셋째 그 억울함을 서로 이야기하며 소통이 이루어진다는 것, 마지막으로 억울함을 풀어지며 극의 모든 긴장감이 해소된다는 것이다.

우리 농민이 농업·농촌을 지켜온 과정도 이와 비슷하다. 억울한 부분이 많거니와, 누군가 농촌의 어려움에 귀기울여주길 바란다. 그리고 도시민 혹은 소비자와 손잡고 행복한 미래로 나아가고 싶어한다.

현재 농민은 억울하다. "농산물 가격 인상에 소비자 부담 가중", "농산물 가격 '안정세'로...소비자 부담 줄어.."

사는 것이 팍팍해지면 한 번씩 등장하는 이런 기사들을 볼 때마다 농산물의 가격이 소비자에게 얼마나 부담이 되는 것일까 고민해본다. 현재 20㎏쌀 한 포대의 가격이 평균 4만7706원, 한 포대에 약 200공기가 나오니 밥 한공기의 가격은 238원. 자판기 커피 한 잔 가격도 안 된다. 삼겹살 1인분(150g)을 구워서 김치에 밥 한 끼를 먹는다 해도 유명 커피브랜드에서 주문하는 라떼 음료 한 잔보다 저렴하다.

그렇다면 농민이 농산물을 팔아 삶이 윤택해지긴 했을까? 2019년말 기준 농업가구는 100만 7158 가구, 농가인구수는 224만 4783명으로 한 농가에는 약 2명이 농업에 종사한다. 이러한 농가의 소득은 총 4118만원. 그럼 단순계산을 해봐도 농업인 1인의 소득은 2059만원이 된다.

자세히 살펴보면 농가의 억울한 상황은 여실히 드러난다. 농가소득은 경상소득(농업소득·농외소득·이전소득)과 비경상소득을 합한 금액인데 경상소득은 3812만원, 비경상소득은 236만원이다. 이중 농가소득의 주요 구성요인인 농업소득은 1026만원에 불과하다.

현재 농산물 시세가 농가에 부담이 될 정도인지, 농민의 안정적인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했는지 자문한다면 고개를 갸우뚱 할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가 이런 농민의 억울함을 들어 줄 준비가 돼 있을까.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서 수행한 농업 농촌에 대한 국민의식조사 결과를 보면 국산 농산물이 외국산과 견줘 가격이 비싸면 수입농산물을 구입하겠다고 응답한 비율이 2007년 19.9%에서 2019년 41.1%로 대폭 증가했다. '애국심'에 호소하는 마케팅이 통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낮은 가격'이 아닌 '동반성장, 지역사회 공헌, 환경보전'의 가치에 무게를 둔 현명한 소비자들이 증가하고 있는 점은 고무적이다. 농업·농촌의 가치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비율이 2010년 55.9%에서, 2018년 72.2%까지 늘었다. 농업 농촌이 안전한 먹거리제공, 환경·생태계보전, 여가·휴식처 제공, 문화유산 보존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데 국민들이 공감한다는 방증이다.

코로나19가 전세계로 전파된 이후 '식량안보'가 새롭게 부각하고 있다. 이제는 농업․농촌․농민의 중요성에 대해 농정당국, 지방자치단체, 도시민이 머리를 맞대고 소통에 나서 농민의 억울함을 달래야할 때다.

식량안보란 인구의 증가나 재해 재난 전쟁 등이 발생할 때를 대비해 일정한 양의 먹을거리를 확보해 유지하는 것을 일컫는다. 과거 대부분의 국가들은 농업을 주산업으로 하고 있어 큰 자연재해가 아니고는 식량부족의 문제를 겪지 않았다.

하지만 산업화 이후 공장, 상업용지가 증가하여 식량재배면적과 생산량이 줄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산업화를 일찍 겪은 국가들은 부족한 식량을 외국에서 수입하는 걸 당연하게 여겼다.

그러나 2007년 국제 곡물가격이 전 세계적으로 급등하는 애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전세계 곳곳에서 식량부족으로 인한 폭동이 일어나자 충분한 먹거리가 곧 안보라는 인식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후 각국 식량안보를 지키기 위해 적정규모의 농지를 유지하고, 식량의 수입경로를 다양화 하는 등 관련 정책을 내놓고 있다.

지금은 전 세계가 코로나 19라는 재해를 함께 겪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많은 나라들이 이동제한이나 국경폐쇄로 주요 식량수출국들이 주요 먹거리의 수출을 금지하고 있고 이에 따라 곡물 등을 수입에 의존해 오던 국가들은 식량 고갈에 대한 위협을 느끼고 있다.

쌀이 넉넉하게 생산되는 우리나라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체 생산한 농산물이 크게 부족한' 나라다. 이런 이유로 쌀을 제외한 많은 농산물의 공급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우리나라 식량자급률은 47% 정도며 그 중 곡물 자급률은 2018년 기준으로 23%로 OECD회원국 중 최하위에 속한다.

일본의 수출규제로 우리나라 스스로 산업 생태계의 체질을 개선해나간 것처럼,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우리 농업의 경쟁력을 높일 방안을 마련해 나가야 한다.

벌써부터 내수시장에서는 국내산 과일, 축산물 소비량이 늘고 있고, 외국에서는 품질이 우수한 우리 농산물을 사려는 바이어가 줄을 잇고 있다.

우리 농업에 주어진 이같은 기회가 일시적인 현상으로 그쳐서는 안된다. 그러기 위해선 농민수당을 더 발전시켜 사회 안전망을 더 견고히 하고, 농산물 수급을 조절할 유통 혁신을 앞당겨야 한다. 로컬푸드직매장을 활성화해 소농과 영세농의 터전을 보호해주고, 4차산업혁명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농업기술을 현장에 접목해야 한다.

이제야말로 농민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행복하게 살아갈 이야기를 우리 후손에게 들러주어야 할 때가 아닐까.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