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노휘의 길 위의 인생 17> 이집트를 다시 방문하게 했던 밀렌드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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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노휘의 길위의 인생
차노휘의 길 위의 인생 17> 이집트를 다시 방문하게 했던 밀렌드 가족
차노휘 : 소설가, 도보여행가
  • 입력 : 2019. 12.26(목) 12:28
  • 편집에디터

17-1. 이집트에서의 식사(맞은편이 밀렌드 아버지).

1) 터키 커피

이집트는 늘 하루가 길다. 어떤 사건부터 먼저 적어야 할지 고민스럽기도 하지만 노트북 열 여유조차 주지 않는다. 지옥과 천국을 빈번하게 경험한다. 이런 경우를 입체적인 하루라고 해야 할까. 긴 하루는 터키 커피를 마시면서부터 시작된다.

터키 커피는 원두와 불의 성질, 끓이는 순간의 기술이 어우러져야 한다. 자그마한 구리 잔에 원두 가루를 넣고 찬물을 부은 다음 약한 불에서 끓인다. 거품이 일어 커피포트 위로 넘치려는 순간 불에서 멀리한다. 커피 향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 비결이다. 기호에 따라 설탕을 넣고 끓이기도 한다. 작고 앙증맞은 도자기 커피 잔에 따르면 3분의 2 가량 커피 원두가 진흙처럼 가라앉는다. 위쪽 맑은 커피 물을 마시면 된다. 진한 터키 커피는 빈속에 마시면 머리가 핑 돌 정도로 강하지만 기름진 식사 후라면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정도로 깔끔한 맛을 음미할 수 있다.

터키 커피에 맛을 들인 것은 밀렌드 가족 때문이다.

고등학생인 밀렌드를 만난 것은 이집트에 도착해서 물어물어 4층 숙소를 찾아 계단으로 올라갈 때였다. 그는 내게 사진 찍자며 무조건 들이대던 여느 이집트인과 다를 바 없었다. 영어를 서툴게나마 할 수 있어서 의사소통은 가능했다.

다시 그를 만났을 때 그는 그의 아버지에게 나를 소개했다. 2층이 아버지 사무실이었다. 겨울방학 동안 일을 돕고 있었다.

사무실에서는 버스 승차권을 판매했다. 이집트는 워낙 넓은 곳이지만 대중교통이 발달한 곳이 아니었다. 매일 출퇴근하는 버스 승차권이 아니라 날짜가 정해진 어느 지역을 목적지로 하는 판매였다. 사람을 미리 모아놓고 출발한 듯했다. 승차시간이 다 된 사람이 사무실에서 기다리고 있어서 늘 북적거렸다. 사무실은 아침 8시부터 밤 11시까지 문을 열지만 그는 8시 30분부터 3시까지가 근무 시간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흡사 유럽 모 축구선수처럼 체격과 인물이 좋았다. 그는 내게 물었다. 차를 마실 건지 커피를 마실 건지. 이상하게 그가 영어를 전혀 못해도 말이 통했다(제스처가 얼마나 훌륭한 언어인지 여행할 때마다 실감한다). 나는 중동 커피가 아주 달고 진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커피를 달라고 했다. 현지인 커피 맛을 보고 싶었다.

직원이 주방으로 갔다가 다시 나와 물었다. 밀렌드가 통역해주었다. 설탕 몇 스푼이 필요하냐는 거였다. 나는 밀렌드 아버지에게 되레 물었다. 그는 세 스푼을 넣는다고 했다. 속으로 설탕을 들이붓는구나,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도 똑같이 해달라고 했다.

그 뒤부터 사무실에 내려가면 밀렌드가 어김없이 설탕 세 스푼을 넣고 커피를 끓여서 내왔다. 그때는 알지 못했다. 이 맛이 입에 밸 것이라는 것을. 요르단에 갔을 때는 아예 단골 카페까지 생겨버렸다. 가끔 한국에서 터키 커피가 생각나면 에스프레소에 설탕을 넣어 마시곤 한다. 우습게도 밀렌드 아버지 커피 취향 그대로다.

2) 밀렌드 가족

중동에서 가장인 아버지를 소개받는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실은 사회생활이 활발하지 않은 여자들과의 친교는 힘들다. 그곳은 가부장적인 사회다.

밀렌드 아버지를 알게 된 뒤 제일 먼저 간 곳은 식당이다. 그가 제대로 된 이집트 음식을 맛보게 해 주겠다고 했는데 결과적으로 그가 옳았다. 이렇게나 이집트 음식이 맛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으니깐 말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악명 높은 카이로 도로를 정복했다고나 할까.

횡단보도가 있어도 소용없는 곳이 카이로 도로다. 쌩쌩 달리는 차들은 도로 위 무법자다. 차와 오토바이와 행인이 뒤얽혀 있기도 한다. 밀렌드 아버지는 그들 못지않게 차를 거칠게 몰았다. 내가 놀라서 소리치면 그가 허허, 웃었다(곧 이 거침에 익숙해졌다). 식사를 하고 나와서는 쌩쌩 달리는 도로를 지나야 주차된 차까지 갈 수 있었다. 그가 내게 팔을 내밀었다. 잡으라는 거였다. 내가 그의 팔을 붙들자 그는 아주 익숙하게 무법 차량들 사이를 지나갔다. 나는 그만 두 눈을 감아야 했다. 그가 없을 때는 그 역할을 아들들이 번갈아서 해주었다.

밀렌드는 쌍둥이 형이 있었다. 둘 다 대학생이지만 스타일이 달랐다. 첫째인 케럴은 이집트에서 제일 유명한 공과대학생이었다. 둘째는 운동에 관심이 많았다. 아버지도 공과대학 출신 사업가였다. 이슬람교가 아니라 기독교 집안이었다.

3) 오지랖이 넓은 그들은 단지 그들의 친교일 뿐

열흘 머물면서 그의 집에 세 번 초대를 받았다. 처음 갔을 때의 생경함을 잊을 수가 없다.

식당에서 식사를 한 뒤 밀렌드 아버지는 사업상 다른 볼일을 보러 가면서 나를 집으로 데리고 가라고 밀렌드에게 말했다. 정확히 말하면 어머니에게 소개시키라는 의도였다. 이집트 사람이 오지랖이 넓다는 말은 맞다. 밀렌드 아버지는 사무실에 그의 먼 친척이나 친구가 오면 어김없이 나를 소개시켰다. 나는 말이 통하지 않는 그들과 인사를 하고는 잘 알아듣지 못한 현지어에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그것은 그들의 문화였다. 처음 만난 사람과도 통성명은 기본이며 어제 먹은 음식까지도 자연스럽게 말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밀렌드 어머니에게 나를 인사시키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그의 집으로 향하는 길은 별의별 상상을 다하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상가를 벗어난 주택 골목길은 낯설고 누추했다. 흙바닥과 공중에 매달린 낡은 천들, 길거리까지 뻗은 구멍가게 물건들, 방치된 폐차, 어두운 조명 이발소 등. 혹시 음침한 소굴로 나를 데리고 가는 것이 아닐까. 일말의 불안이 앞섰다. 늘 그렇듯 낯선 곳에 대한 호기심이 불안을 앞질러 갔다.

밀렌드는 골목길을 한참 돌아 한 맨션 건물 앞에 섰다. 승강기 없는 그곳 계단을 따라 5층까지 올라갔다. 계단 난간이 부서진 곳도 있었다. 무사히 5층까지 올라갔지만 그의 어머니는 외출 중이었다. 그에게 열쇠가 없었다.

우리는 옥상으로 향했다. 옥상 계단도 창살문이 잠겨있었다. 마침 열쇠 보관함에 열쇠가 있었다. 문을 열자 계단 아래로 커다란 개가 튀어나왔다. 옥상 위에 또 다른 설치물이 있었다. 층계 별로 닭과 비둘기를 사육하고 있었다. 밀렌드는 내게 그것을 보여주고 싶어 했지만 내 눈은 사방으로 펼쳐져 있는 풍경을 둘러보고 있었다.

다 마감하지 않은 것 같은 옥상에는 쓰레기가 널려 있었다. 위성 안테나만 번들거렸다. 저 멀리 마른 건물 사이에서 해가 기울면서 서서히 어둠이 사방을 포위하고 있었다. 먼지바람이 불었다.

아, 이런 곳에서도 사람이 살구나.

전망 좋은 그곳에서 순간 멈칫했다. 갑작스럽게 마주한 민낯에 이집트 한가운데에서 길을 잃은 듯한 기분이 되었다. 가슴이 답답하면서 목구멍이 막혀 왔다.

※ 차노휘 : 소설가, 도보여행가

17-2. 밀렌드가 사는 맨션 골목.

17-3. 밀렌드 아버지가 운전하는 차안에서 찍은 카이로 도로를 달리는 마차.

17-4. 밀렌드와 개.

17-5. 밀렌드 옥상에서 바라본 풍경.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