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영산포 '옛 항구도시 명성' 되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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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영산포 '옛 항구도시 명성' 되찾는다 
영산·이창·영강 3개 동 주민 화합행사 성황리 개최 ||영산포 역사 재조명, 쇠퇴한 지역 발전 도모 다짐
  • 입력 : 2019. 11.12(화) 16:28
  • 나주=박송엽 기자
나주시는 지난 9일 영산포여자중학교 강당에서 영산포의 날 추진위원회 주관으로 '제1회 영산포의 날 제정 기념식'을 개최했다. 나주시 제공
호남의 대표 항구 도시로 명성을 떨쳤던 영산포(榮山浦)의 옛 영광을 되찾기 위한 지역 주민들의 화합 행사가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나주시는 지난 9일 영산포여자중학교 강당에서 영산포의 날 추진위원회 주관으로 '제1회 영산포의 날 제정 기념식'을 개최했다.

기념식은 영산·이창·영강동 등 3개동 주민들이 '영산포' 주민으로 하나 된 날을 기념하는 한편, 동민과 향우들이 화합과 자긍심을 바탕으로 영산포의 옛 영화를 재조명하고 지역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열렸다.

영산포는 영산강이 바닷길과 통하던 시대 바다와 육지를 연결하는 남해안 지역 대표 내륙 항구로 큰 번영을 누렸다.

특히 조선 초기 영산강의 수운(水運)을 이용, 한반도 남부지방의 전세(田稅)를 거둬 영산창(榮山倉)에 모았다가 서울로 다시 운반하는 조운(漕運) 기능을 수행했다.

조선 중종 때 이러한 기능이 영광 법성창으로 옮겨져, 영산창은 폐지됐지만 수운에 적합해 전라도 남해안 일대 산물 집산과 거래 중심지로서 상업무역의 중심지로 발전했다.

영산포는 1900년대 초 일제강점기 수탈로 인한 근현대의 아픈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영산포 일대에는 일본식 건물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 나주평야에서 생산된 쌀 수탈 거점이었던 동양척식주식회사 문서고와 조선식산은행, 일본인 지주가옥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경관은 당시 지역민들의 문화,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귀중한 근현대 역사문화 자산으로 활용되고 있다.

1970년대 이후 영산포는 목포에 영산강 하구언이 설치(1981년 완공)되면서 배가 더 이상 드나들지 않게 돼 포구 기능을 완전히 상실하게 됐다.

이후 다양한 지역적인 요인으로 쇠퇴의 길을 걷게 됐고, 현재 3개 동을 합친 인구 수는 1만명이 채 되지 않은 실정이다.

영산포를 대표하는 음식 콘텐츠는 코끝이 톡 쏘는 알싸한 맛이 일품인 '숙성 홍어'다.

숙성 홍어의 유래는 고려말기 왜구들이 남해안 지역을 노략질하자, 흑산도 인근의 영산도 사람들이 영산포로 피난길에 오르며 싣고 왔던 홍어가 발효되면서 유독 맛이 좋아 즐겨먹게 됐다고 전해져온다.



나주=박송엽 기자 sypark22@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