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 신청'에 '묻지마 허가', 태양광 발전 광풍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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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지마 신청'에 '묻지마 허가', 태양광 발전 광풍 불렀다
연계선로 부족…광주·전남 1만7000건 중 접속 완료 36%||“사업 전망 불투명해도 요건 맞으면 인·허가 내줄 수밖에”||‘쪼개기 분양’ 투자자 이자·계약금 손실 등 피해 사례 속출||“사업 가능성 확인하고 연계선로 확보 여부 꼼꼼히 살펴야”
  • 입력 : 2019. 01.17(목) 18:05
  • 이용환 기자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알려진 태양광 발전소. 자치단체와 한전이 포화상태인 송전계통에 대해 추가적인 인프라 구축을 확인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사업을 허가하면서 애꿎은 투자자들의 피해가 확산되고 있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계 없음). 전남일보 자료사진

'투자금 1억5000만 원에 월수입 250만 원 20년 보장, 선착순 모집'. 도심 거리 모퉁이마다, 심지어는 인적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깊은 산골짜기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태양광 발전사업에 대한 광고다. 오는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비중을 2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 전환 정책이 나온 이후 태양광 발전 사업은 많은 사람들에게 그야말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알려져 왔다. 하지만 태양광 발전 사업은 안정성이 높은 만큼 위험성도 크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태양광 발전 사업이 본래의 취지와 달리 투기의 대상으로 전락했다는 우려와 함께 '묻지마식 투자'로 인한 부작용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높다.

◎신청 완료된 64% 착공조차 못해

17일 한국전력 광주·전남지역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태양광 발전 사업 접수 건수는 광주·전남에서만 모두 1만7704건으로 이 가운데 한전의 연계선로와 접속이 완료된 사업은 36%인 6386건에 불과하다. 한전에 사업신청을 완료한 10건 가운데 6건 이상이 선로가 없어 사업을 추진하지 못하는 셈이다.

태양광 발전소 1㎿를 건설하기 위한 인·허가 과정에서 통상 농지나 산지전용비용에 행정비용까지 대략 1억여 원 가까이 소요된다는 것을 감안하면 광주·전남에서만 1조 원이 넘는 자금이 활용되지 못한 채 묶여있다는 얘기다.

특히 영암군의 경우 전체 신청 건수 1790건 가운데 연계 완료는 503건에 불과하다. 반면 사업자의 상황이나 한전의 장기 계획에 따라 변전소가 신설되는 6년 이후에나 연계가 가능한 장기 미연계 발전소는 702건에 이른다.

고흥군도 1772건이 신청됐지만 사업을 하고 있는 곳은 626곳에 불과하고 사업을 준비 중인 곳은 2배에 가까운 1146곳에 달한다.

나주시와 무안군 등도 신청을 완료한 사업만 1600여 건이 넘지만 75%에 이르는 1200여 건이 정작 한전의 용량 부족으로 사업을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신안군은 송전탑이나 해저케이블 등을 설치해야 하는 지역 여건상 한전과의 연계가 요원한 도서 지역의 사업허가 건수가 447건에 이른다. 허가는 받았지만 한전의 수용여건이 안돼 사업 자체가 무산될 가능성도 높다.

◎'묻지마 신청에 묻지마 허가'가 광풍 불러

최근 들어 태양광 발전 신청이 급증한 것은 소위 '돈 되는 사업'이란 소문에 '묻지마 투자'가 횡행하고 있어서다.

한전이나 자치단체에서도 태양광 발전을 하겠다는 사업자에게 포화상태에 다다른 현재의 연계선로 상황을 설명하고 있지만 요건이 맞으면 허가를 내줄 수 밖에 없어 '태양광 발전 광풍'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전 관계자는 "전기를 생산하거나 사용하겠다는 고객들의 신청을 거부할 법적 요건이 어디에도 없다"면서 "태양광 발전 열풍이 불면서 투자자들이 단기간에 사업을 추진하지 못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일단 해놓고 보자는 식이어서 신청이 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알려진 태양광 발전소. 자치단체와 한전이 포화상태인 송전계통에 대해 추가적인 인프라 구축을 확인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사업을 허가하면서 애꿎은 투자자들의 피해가 확산되고 있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계 없음. 신안군 제공

자치단체의 인·허가 과정도 마찬가지다. 농지나 임야 등에 태양광 발전소를 설치하겠다는 사업자의 사업계획이 법규나 조례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반려할 법적 요건이 없어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인·허가를 내주고 있다. 그러다보니 모든 인·허가 절차를 거쳤는데도 정작 사업을 추진하지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무안군에서 1㎿급 태양광 발전사업 허가를 받은 뒤 한전과의 연계선로 접속을 기다리는 김모(65)씨는 "허가를 받기 위해 1억 여 원을 투자하고 2년을 기다렸지만 정작 변전소가 부족해 사업을 추진하고 못하고 있다"며 "수용능력을 감안하지 않은 한전과 자치단체의 무분별한 허가로 수년째 막대한 손실을 입고 있다"고 말했다.

더욱이 각 자치단체가 이미 포화상태인 송전계통에 대해 추가적인 인프라 구축을 확인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사업을 허가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사업 허가를 받고도 송전계통에 연결을 하지 못해 발전소를 짓지 못하면서 태양광 발전 사업 허가가 무의미하다는 비아냥도 나온다.

◎사업성 확인하고 연계선로 꼼꼼히 살펴야

전문가들은 태양광 발전소가 사업 가능성을 확인하지 않고 맹목적으로 투자할 경우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 자치단체의 허가나 연계선로 접속이 지연돼 사업을 시작하지 못하면서 투자액에 대한 이자 손실을 보는 등의 피해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태양광 발전 허가만 받아 놓고 이를 일반에게 분양하는 이른바 '쪼개기 분양'에 투자했다가 사업이 지연되거나 계약금을 떼이는 사례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퇴직금을 태양광 발전소에 투자했다는 서모(60)씨는 "토지 매입과 인·허가 절차가 모두 끝난 것을 확인하고 노후에 대비해 100㎾ 규모의 발전소 한 곳을 분양 받았지만 2년 가까이 사업이 현실화되지 않고 있다"며 "계약금만 날리게 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한전 관계자는 "예산도 예산이지만 변전소를 1곳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4~5년의 시간이 걸리고 부지 문제도 큰 걸림돌인만큼 지금의 적체를 하루 아침에 해결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라며 "무엇보다 투자자 스스로 사업성을 꼼꼼히 확인하고 연계선로 등 주변 상황을 면밀히 살핀 뒤 투자해야 손실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용환 기자 yhlee@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