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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2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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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하얼빈

태그: 하얼빈

광주에 다시 복원된 전국 1호 ‘안중근 숭모비’

전국 최초로 광주에 세워졌다가 사라진 후 되찾은 전국 1호 안중근 숭모비가 광주 중외공원에 복원됐다. 광주시는 중외공원 안중근 의사 동상 옆에 좌대를 만들어 숭모비를 안치하고 오늘 제막식을 갖는다. 안중근 의사 숭모비는 1961년 광주 유림들이 서둘러 광주공원에 건립했다. 심산 김창숙 선생이 비문을 짓고, 서예가 소전 손재형 선생이 쓴 '大韓義士 安公重根 崇慕碑(대한의사 안공중근 숭모비)'라는 글씨를 새겼다. 이 비는 해방 후 전국 최초로 세워진 안 의사 기념비라는 점에서 역사적인 의미가 적지 않...

25년만에 돌아온 ‘안중근 의사 숭모비’ 다시 선다

25년 만에 되찾은 '안중근 의사 숭모비'가 중외공원에 복원된다. 광주시는 오는 25일 북구 용봉동 중외공원에서 안중근 의사 숭모비 제막식을 개최한다고 밝혔다. 25일은 110년 전 안중근 의사가 중국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하루 전날이다. 새로 복원될 안중근 의사 숭모비는 현재 안중근 동상 주변에 새로 세워진다. 애초의 자리는 아니다. 안중근 의사 숭모비는 1961년 광주공원 안에 해방 후 전국 최초로 세워졌다가 1987년에는 중외공원으로 옮겨졌다. 이후 1995년 같은 자리에 비신 ...
광주교육연수원은 지난 5월부터 8월까지 총 4회에 걸쳐 교원들의 직무연수로 일제 강점기 엄혹했던 시절 블라디보스토크, 우수리스크, 연길, 용정, 명동촌, 하얼빈, 대련 등 해외에서 독립 운동가들이 활동했던 지역을 탐방했다.

광주 교원들 눈시울 글썽이게 한 중국의 독립운동 현장

광주 교원들이 러시아, 중국 등 항일 유적지를 지난 5월5일부터 8월10일까지 4번에 걸쳐 탐방하며 역사의식을 키웠다. 13일 광주교육연수원(원장 김동일)에 따르면 교원들이 직무연수로 탐방한 곳은 일제 강점기 엄혹했던 시절 블라디보스토크, 우수리스크, 연길, 용정, 명동촌, 하얼빈, 대련 등 해외에서 독립 운동가들이 활동했던 지역이다. 5월 교장, 6월 교감, 7~8월은 초·중등 교사 등 총 4회 교원 98명이 참여했다. 연수 내실을 기하기 위해 사전 연수, 현지 연수, 사후 연수 등 3단계로 ...
광주시교육청 항일연수단원들이 지난달 27일 사상 처음으로 안중근 하얼빈 의거현장 1번 플랫폼에서 항일 정신을 다지며 만세를 부르고 있다. 삼각 동판이 안 의사가 총을 쏜 곳. 사진제공 임진억 일동초 교사

안중근 의거 하얼빈역 1번 플랫폼 광주지역 교사들 국내최초로 서다

광주지역 교사들이 사상 처음으로 1909년 안중근 의사가 조선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격살한 의거 현장, 중국 하얼빈 역 1번 플랫폼에 섰다. 그동안 하얼빈 역 의거현장은 한국인의 방문이 허용되지 않았다. 대신 역 안에 조성된 안중근의사기념관에서 유리 격자창을 통해 현장을 볼 수 있었다. 광주시교육청 학교업무정상화 유공교원 항일연수단은 지난 27일 중국 무단장 시를 출발, 오후 8시30분께 하얼빈 역 2번 플랫폼에 도착했다. 연수단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역 통로를 빠져나가다가 안 의사 의거현...

세상읽기> 순국 109주년 안중근의사 그를 돌아본다

3월 26일은 안중근의사가 뤼순 일러 감옥 형장에서 순국한 날이다. 그 때가 1910년이었으니 110년째 되는 해이다. 1906년 2월 1일 일제는 서울에 통감부를 설치 3월 2일 이토 히로부미를 초대 통감으로 임명, 실질적인 식민지 탄압이 시작됐다. 그것을 생각하면 피가 거꾸로 솟는다. 요즘 아베나 극우파 그들의 언행을 생각하면 더욱 더 그렇다. 인간이 사는 세상에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에 대해서는 어떤 경우도 그만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 그래서 나쁜 짓해서는 안 된다. 안중근의사는 1909년...
안중근은 1910년 3월26일 오전 10시 14분 차가운 관동도독부 뤼순 감옥 사형장에서 순국했다. 만 31세, 안 의사가 절명한 곳에 작은 기념관을 조성했다.

안중근 항일루트(4) “내 죽은 뒤 하얼빈공원 곁에 묻었다가 고국으로…”

안중근은 형장으로 끌려갔다. 교수대가 보이는 검시실에는 미조부치 검찰관, 구리하라 전옥, 소노키 통역관, 기시다 서기관, 오리다 의사, 미즈노, 가마다 변호사가 있었다. "1910년 2월14일 관동도독부 지방법원의 판결이 확정됐고, 명령에 따라 사형을 집행한다. 마지막으로 할말은 없는가" "나의 행위는 동양 평화를 위해서다. 한일 양국 국민이 서로 일치 협력하고 평화를 도모하기를 희망한다. 마지막으로 교수대에서 동양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싶다" 간수가 두장의 종이를 접어 안중근의 눈을 가리고, 그 ...

3인 거사단 그 후

▲우덕순=1915년 뤼순감옥 출옥(3년 징역형). 1913년 나올 예정이었으나, 함흥감옥 탈옥 사건이 탄로나 2년이 추가됐다. 석방 후 중국 하얼빈, 치치하얼, 만저우리 등지에서 교육 종교사업을 펼쳤고, 러시아 전로한족중앙회에서도 활동하며 독립운동을 지속했다. 해방 후 흑룡강성 한인민단 위원장을 맡아 아들과 함께 재중동포와 피난민의 귀국 수송에 헌신했다. 1948년 대한국민당 최고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안중근 추모사업을 벌였다. 한국전쟁 발발 때 서울에 남아 있다가 인민군에게 체포, 총살당했다. 18...
1.1909년 10월22일 오후 9시15분 안중근과 우덕순, 유동하 일행은 동청철도를 타고 이토 격살의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하얼빈에 도착한다. 하얼빈 송하강을 가로지르는 동청철도.

안중근루트(3) 이토, 러시아에 북만주, 몽고 주고 대한제국 남만주 삼키려 했다.

용기 있게 뚜벅뚜벅 걸어 군대가 늘어서 있는 뒤편에 이르러 러시아 관리들이 호위하고 오는 사람 중에 맨 앞에 누런 얼굴에 흰 수염을 한 조그만한 늙은이가 있었다. 저자가 필시 이토일 것이다. 생각하고 바로 단총을 뽑아 그를 향해 4발을 쏜 다음, 생각해보니 그자가 이토인지 의심이 났다. 나는 본시 이토의 얼굴을 모르기 때문이었다. 일본인 무리 가운데 가장 의젓해 보이며 앞서 가는 자를 향해 다시 3발을 이어 쏘았다. 그 때가 1909년 10월26일 상오 9시 반쯤이었다. (옥중 자서전 '안응칠 역...

南道 안중근 루트를 아시나요

모레가 광복절이다. 독립(73주년)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70주년)을 동시에 기념하는 날이다. 분단의 시작이기도 하다. 태평양전쟁 종전 기념일은 나라마다 다르다. 우리와 북한은 8월15일을 광복절, 민족해방기념일로 삼는다. 일본은 패전을 감추려, 에둘러 종전기념일로 표기한다. 미국과 러시아, 베트남은 일본이 항복문서에 서명한 9월2일을 대일 전승기념일(베트남은 독립기념일)로, 중국, 몽골은 9월 3일을 항전승리기념일로 정하고 있다. 중국도 2일 항복식을 열려다 난징의 폭우로 하루 연기했다. 대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