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잎 진다 설워 마라 한 번 가면 그만인 것이 우리지만 너는 다시 내년 봄을 기약한다. 봄바람에 휘날리면 그것 또한 꽃이지만 그 꽃바람조차 춘몽이던가 날이면 날마다 가시는 걸음마다 꽃길이면 좋으련만 세상일이 천 근이요, 꿈길에서도 만 근이라. 봄바람에 눈물짓는 꽃잎들아 그 많던 벌 나비, 산새들은 어딜 갔나 화사하던 네 모습도 화석이 되어가고 장자의 나비도 나른한 오후에 봄날은 간다
2024.04.18 14:03여기저기서 꽃들이 피어난다. 발길을 어디로 돌려도 좋은 일만 있을 것 같은 4월이다 하지만 눈앞에 다가온 총선의 열기로 세상이 시끄러워서인지 제주에 다녀온 후로 꽃향기 속에서도 악몽을 꾼다. 꽃놀이에 취해가도 설움과 잔인함이 감추어진 4월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는가 제주4.3사건의 흔적을 더듬어 가다 찾아간 곳은 한림 갯거리오름길에 있는 만벵듸 공동장지. 경작지 근처에 수십 기의 무덤이 몰려있는 곳 48년 4.3사건과 뒤이은 한국전쟁의 대혼란기에 예비검속 자들이 모슬포 인근 섯알...
2024.04.04 10:21봄비가 내리더니 여기저기서 꽃이 핀다. 매화가 피고, 산수유가 피더니 어김없는 꽃샘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기다리던 화엄사 홍매가 피었다. 봄바람 따라 마실 나갈 때로다. 절집 사이에 감추어진 듯 고목 통째로 붉게 붉게 피어나는 그 모습 화사함인가 우아함인가 아니면 또 뭐랄까 해마다 피는 것이지만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더욱 값진 것인가? 이 홍매가 피면 찾아온다는 벗들이 있어 어서 빨리 남녘의 봄바람을 띄워야겠다. 이번에는...
2024.03.21 10:20장독대의 정화수 장독대는 된장이나 간장 등을 야외에서 옹기에 보관하는 우리네 특유의 문화다. 요즘에 와서는 많은 것이 변해서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지만 시간이 흐르며 바람과 햇볕과 불과 물이 어우러져 숙성되면서 발효를 거치며 장으로 완성되는 것이어서 우리에게 장독대는 부엌만큼이나 모성을 상징하는 공간이었다. 그러다 보니 고향의 어머니가 생각나게 하는 곳이다. 사람의 역할은 시간과 더불어 가며 자연의 힘을 빌리는 것뿐이기에 만사에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주변의 ...
2024.03.07 13:52시베리아와 만나는 몽골의 서북쪽 ‘홉스골’ 호수 인근의 타이가 숲속 순록을 키우면서 살아가는 소수민족 ‘차탄족’을 찾았다. 원래 북쪽의 시베리아에서 몽골 쪽으로 넘어 온 유목민족이다. 오늘날 이들의 숫자가 급격히 줄어들어 몇백 명 정도에 지나지 않기에 인류학적으로도 굉장히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는 부족이고,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집들과 흡사한 ‘오르츠’라는 이동식 움집을 짓고 산다. 살림살이라곤 그저 엉성한 이부자리와 장작 난로, 그리고 밥그릇 몇 개가 전부다. 이들의 일상은 오로지 ...
2024.02.15 10:13압록강 변의 겨울바람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말로만 듣던 변방의 그 혹독한 겨울을 느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고대사까지 올라가지 않더라도 근세의 그 혹독한 가난 때문에 압록강을 건널 수밖에 없었던 이들, 빼앗긴 조국을 되찾기 위해 청춘을 바쳐가며 말달리던 그들, 누구를 위해, 무엇 때문에 싸우는지도 모르면서 죽어갔던 그 용사들. 이 모두가 이 변방의 칼바람 앞에 눈물을 보였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눈물조차 얼어붙어서 흘릴 수도 없었을지도. 중국 쪽 압록강 변의 작은 도시 ‘린지앙(臨江)’에서 이렇게 강바람을 ...
이 변방의 매서운 찬바람을 마다치 않고 서 있었다.2024.01.25 10:29또 한 해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좋은 꿈들 꾸셨는지요. 앞으로 좋은 일만 있기를 바래보지만 올 한 해도 세상 돌아가는 꼬락서니를 보니 녹록지 않을 듯합니다. 크게는 기후변화에 대한 걱정이고 연초부터 이웃 나라의 지진 소식에 이어 세계의 망나니 이스라엘군이 자행하는 무자비한 학살과 우크라이나 전쟁의 포성이 끊이지 않네요. 안에서는 야당 대표에 대한 테러로 일찌감치 혼란스러운 정국을 예견케 합니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인간 세상인 것을. 힘든 일들을 이겨내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힘차게 날아야 합니다. ...
새해에도 힘차게 비상하세요!2024.01.11 15:12서해안의 매서운 바람 앞에 섰다 갯벌 깊숙한 곳에서 바지락을 캐는 아낙들도 들어가고 갈매기들과 나만 남아서 석양을 지켜본다. 먹구름이 짙게 깔려 있지만 그렇다고 일찌감치 돌아설 수는 없는 일. 늘 있는 일에 같은 것이지만 보는 이의 마음에 따라 느낌이 새롭지 않던가. 지금의 나 또한 지고 있는 해를 보고자 하기 보다는 그 분위기에 익어가는 시간을 지켜보고 싶은 것이다. 잔뜩 찌푸린 날에도 틈새가 열리는 순간이 있다. 참고 기다리는 자에게 그 기회가 주어짐을 보아왔다...
2023.12.28 12:52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차갑다 겨울바다를 실감케 한다 해변에 거대한 바위가 있다 생김새에 따라 ‘코끼리 바위’라 부른다 여기는 서해바다 고군산도의 몽돌해변이다 여름철에는 제법 인기가 있겠지만 지금은 텅 비어 있어 물결소리만 들려오는 숨어있는 분위기다 싸늘함이 옷깃을 더욱 여밀게 하고 먼 곳에 혼자 떨어져 와 있는 듯한 쓸쓸함이 밀려들지만 이 분위기가 싫지 않다 아무도 없는 몽돌밭을 서성거린다 그러다가 시선이 꽂히는 것이라도 있으면 집어도 보고. 그러다가 뜻밖의...
2023.12.14 12:13제주 섬에도 장성(長城)이 있다는 사실을 아시는가. 수많은 사람들이 관광객으로 다녀왔겠지만 이 장성에 대해 관심 있어 하는 자 별로 없었다. 부끄럽게도 나 또한 이 사실을 최근에야 알았으니 말이다. 북쪽 해안가의 돌담 앞에 세워진 ‘환해장성’ 안내판을 들여다보기 전까지는 그저 수많은 제주의 돌담 중의 하나이겠지 했었다. 고려의 무인정권 시대다. 몽골군이 쳐들어와 조정이 무너졌다. 그러나 끝까지 저항했던 세력이 삼별초 무리다. 그들이 진도에서 려몽연합군에 항전하고 있을 때 ...
2023.11.30 12:42여기 저기 들어서는 게 아파트 건물 일색이다. 그것도 밀집된 초고층으로. 편리성을 따져 너도나도 선호한 것이다 보니 처음에는 맨손으로 들어가도 불편함 없이 살 수 있다는 의미의 ‘맨션’이란 말로 유혹해 가진 자들의 차지가 되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보편화 되어 이 아파트 아니면 갈 곳이 없다. 어쩌다 하나씩 남아있는 단독주택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모두 고층 아파트 숲에 포위되어 숨죽이고 있다. 보기만 해도 숨이 막힌다. 이것도 세태의 흐름 속에서 어쩔 수 없는 자생적인 문화라고 말할 수 있을는지 모르겠...
누가 누구를, 또는 무엇을 지켜내는지 모를 일이다.2023.11.16 12:57촛불을 들었다 그날만은 아니지만 우리는 버릇처럼 촛불을 들었다 답답한 마음에 거리에 나갔고 누가 시켜서도 아닌데 어린 자식들 손길에 이끌리듯 하나 둘 촛불을 들고 모여들었다 누구를 타도하기 위해서인가 나라를 걱정해서인가 아니면 하늘이라도 원망하기 위해서인가 이제 좀 나아지는가 이제 좀 살만한 세상 오는가 싶었고 이제 골목길에서도 술맛 나는 세상 오는가 싶었지만 악귀의 무리들은 소나기를 피해갔고 역시 믿을 놈은 없었으며 어리석은 민중은 또 ...
2023.11.02 12:42요즘 지구가 너무 빨리 돌아서인가. 중심잡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어지러운 것 같지는 않지만 어제와 오늘의 모습이 다른 것은 물론이고, 아침과 저녁 생각도 달라지니 무엇 하나 내 것이고, 우리 것이라 말하기가 쉽지 않다. 국가 간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는 이때 우리가 말하는 한국의 美는 과연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검색을 해보니 ‘꾸밈없이 자연스럽고, 조화를 중요시하며, 여백과 운치가 있는 것이다…….’라고 요약할 수 있다 한다. 또 ‘검이불루(儉而不陋) 화이불치...
2023.10.19 14:05알타이 산맥은 몽골과 러시아, 중국, 카자흐스탄과 국경을 접하는 고지대의 오지다. 고대 문명의 발상지 중의 하나로 일컬을 정도로 학자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고, 우리 한민족 원류 중의 하나인 ‘부여족’의 뿌리가 이곳이라는 것이 여러 설화나 민속 등을 통해서도 드러나고 있다. 유전자 검사를 통해서도 그 가능성이 조금씩 입증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알타이’라는 말이 ‘황금(金)’이라는 뜻인데, ‘신라’의 지배층이었던 경주 ‘김(金)’씨가 이곳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 천마총 발굴...
2023.10.05 12:43어둠이 채 가시기 전인 이른 새벽부터 순례자들의 순례가 시작된다. 순례자들 사이에 끼어서 첫 번째 가파른 언덕을 오르니 광활하게 펼쳐진 황무지 너머 멀리 만년설의 고봉 ‘구르라 만하타(Gurla Mandhata 7728m)’가 웅대한 자태를 뽐내고, 그 밑에 ‘마나사로바’ 호수가 검푸른 바다색으로 가물거리고 있다. 이렇게 수미산을 걸어 도는 것을 ‘코라’ 또는 ‘파리카라마’라 하는데, 보통 시계 방향으로 시작하지만 반대 방향으로 도는 무리들도 있다. 이곳 순례자들은 대부분 멀리서부터 걸어온...
2023.09.14 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