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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구가 부산하다. 크레인이 김 양식용 자재를 배에 싣느라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자재를 가득 실은 배는 바로 포구를 빠져나가 양식장으로 향한다. 저만치 보이는 바다에는 김 양식 시설이 빼곡하다. 빈 바다에는 낚싯배들이 군데군데 떠 있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돼 있는 고흥 발포다. 발포 앞바다는 조선시대에 조운선(漕運船)이 다니던 바닷길이었다. 조운선은 세금으로 거둔 곡식을 싣고 서해안을 거쳐 한양과 개경으로 올라갔다. 바닷바람이 거칠고 파도가 높을 때면 쉬어가기도 했다. 지금도 매한가지지만 남해에서 서해로 가는 배는 고...
2023.11.30 13:25‘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대흥사를 만나고 나오는 길이다. 두륜산 대흥사는 한반도에서 마지막 단풍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절집으로 오가는 ‘십리숲길’이 아직껏 노랗고, 빨갛게 물들어 황홀경을 연출하고 있다. 수북하게 쌓인 낙엽도 만추의 서정을 선사한다. 여행의 절반은 먹을거리에 있다고 했던가?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도 있다. 대흥사로 오가는 길에 닭 코스 요릿집이 줄지어 있다. 대흥사와 해남읍 사이, 이른바 ‘돌고개’ 주변이다. 오래 전 돌고개엔 주막과 대장간이 있었다고 전한다. 많은 사...
이돈삼 <여행전문 시민기자·전라남도 대변인실>2023.11.16 13:34꽃이 산과 들에 예쁘게 피었다. 형형색색의 코스모스는 물결을 이뤄 한들거린다. 가을을 대표하는 국화는 은은한 향기를 선사한다. 해바라기는 노랗게, 구절초는 하얗게 산자락에 흐드러졌다. 가을바람에 한들거리는 꽃이 산골의 고인돌과 어우러져 더 정겹다. 가을꽃의 유혹을 견디지 못하고 나온 여행객들이 탄성을 연발한다. 얼굴엔 저마다 환한 웃음을 머금었다. 여행객들의 몸도, 마음도 가을꽃처럼 가붓가붓 산들거린다. 선선한 가을 날씨와 바람결은 덤이다. 가을꽃축제가 펼쳐지고 있는 화순 고인돌 유적지다. 청동기 시대의 무덤인 고인돌은 ...
2023.11.02 16:21산골짜기 비탈진 곳에 박혀 있는 다랑이가 정겹다. 좁고 긴 논배미가 누렇게 물들었다. 벼를 거둘 때가 가까워졌음을 직감한다. 마을 안길을 돌아 산자락으로 들어서니 길이 가팔라진다. 자동차도 숨을 몰아쉰다. 운전대를 잡은 두 손에 힘이 들어간다. 산등성이가 높다. 지리산의 형제봉과 왕시루봉이 섬진강 쪽으로 뻗은 능선이다. 노고단은 먼발치에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동쪽과 서쪽, 북쪽이 전부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골과 골 사이도 깊다. 맑고 깨끗한 물이 계곡을 따라 흐른다. 계곡이 10㎞가량 된다. 용소폭포도 비경이다. 산...
2023.10.19 14:53활성산 봇재를 넘는다. 봇재는 보성읍에서 회천면으로 넘어가는 고개다. 봇재 주변이 온통 차밭이다. 차밭 이랑이 산비탈을 따라 층계를 이루고 있다. 판소리의 높낮이 같다. 차밭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내려가면 율포다. 호수처럼 잔잔한 득량만이 보듬고 있는 해변이다. 은빛 모래와 해송이 조각작품과 어우러져 아름답다. 율포에서 방향을 장흥 쪽으로 잡는다. 길은 회천수산물위판장을 거쳐 명교마을로 이어진다. 이순신 조선수군 재건로다. 이순신 장군이 1597년 8월 17일 지난 길이다. 백의종군하다가 삼도수군통제사 임명장을 다시...
2023.10.05 14:58운주사, 적벽, 고인돌유적, 세량지, 백아산, 너릿재…. 화순엔 가볼만한 데가 많다. 발품을 팔아 찾아봐야 할 역사문화 유산도 지천이다. 정암 조광조와 민주열사 이한열을 만날 수 있는 마을도 있다. 화순군 능주면 남정리다. 조광조(1482∼1519)는 개혁을 부르짖은 사상가였고, 정치가였다. 그는 유교를 근본으로 한 왕도정치를 주창했다. 도교를 추앙하던 훈구파를 공격한 이유다. 중종반정으로 공신 반열에 오른 103명 가운데 78명의 공적을 삭제했다. 도교 주관 제사인 소격서도 없앴다. 학덕과 소양을 판단하는 현량과를 도입, 새로...
이돈삼 여행전문 시민기자·전라남도 대변인실2023.09.14 14:23이진은 그리 알려진 마을이 아니다. 독특한 볼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국보나 보물 같은 문화유산도 없다. 큰 도로의 나들목이나 교차로가 지나는 곳도 아니다. 하지만 알고 보면, 속이 꽉 찬 마을이다. ‘알토란’ 같다. 일본에 맞선, 항일의 ‘대표주자’로 불릴만한 곳이다. 역사도 깊다. 정유재란 때 이순신 장군도 들렀다. 1597년 8월 20일(양력 9월 30일), 회령포에서 배를 타고 울돌목으로 가는 길이었다. 뱃속이 요동을 치고, 머리는 깨질 듯이 아팠다. 구역질과 구토가 계속됐다. 몸을 가눌 수 없었다. 날마다 강행...
2023.08.31 15:04대황강변 석곡에서 하룻밤을 보낸 이순신은 보성강을 건넌다. 아직도 어두운 이른 새벽, 강변의 새벽바람은 차가웠다. 계절은 초가을이지만, 강바람은 초겨울이었다. 사방이 어두운 탓에, 어디가 강이고 땅인지 분간할 수 없을 지경이다. 횃불을 밝힐 수도 없는 처지다. 언제 어디에서 일본군의 정탐꾼이 엿보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대곡나루에서 배를 타고 대황강을 건넌 이순신은 어둠 속을 달렸다. 목적지는 창촌에 있는 부유창(富有倉)이었다. 이순신은 정찰을 다녀온 군관 이형립을 통해 이복남의 부대가 부유창으로 이동한 사실을 이미 알고 ...
2023.08.17 17:02‘붕어빵에 붕어 없다’고 했던가? 불교인데, 석가모니 부처가 보이지 않는다. 대신 ‘일원상’이 있다. 일원상은 세상의 모든 진리가 하나로 통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속이 텅 비어 있지만, 가득한 우주만유(宇宙萬有)를 상징한다. 하지만 허상일 뿐, 모든 것은 마음속에 있다. 영광 길용마을로 가는 길이다. 길용마을은 이른바 ‘영산성지(靈山聖地)’로 알려져 있다. 원불교의 태 자리다. 원불교를 창시한 대종사 박중빈이 태어난 곳이다. 박중빈이 큰 깨달음을 얻고 수행한 곳이기도 하다. 영산성지로 가는 도로의 이름도 ‘성지로’로 붙여져...
2023.08.03 15:16산으로 간다. 울창한 숲그늘이 한 올의 햇볕도 허락하지 않는 지리산이다. 그 중에서도 무더위를 피하기에 좋은 피아골이다. 장쾌한 물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시원해지는 곳이다. 귓속은 물론 뼛속까지 서늘하게 해준다. 피아골은 대한민국 국립공원 제1호 지리산이 품고 있다. 임걸령에서 시작된 물이 지리산 골골을 거쳐 섬진강과 만난다. 장장 15㎞가 넘는 길고 깊은 계곡이다. 속을 헤아릴 수 없는 연못, 집채만한 바위와 어우러진 풍치도 빼어나다. 녹음 우거진 여름은 말할 것도 없고 봄과 가을?겨울 언제라도 좋은 골이다. 피아골은 ...
2023.07.20 14:36마을 어르신들이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마을회관 앞으로 깔린 레드카펫을 걷는다. 그냥 걷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흥겨운 음악에 맞춰 엉덩이를 흔들며 춤을 춘다. 길지 않는 레드카펫을 돌고, 또 돈다. 한복을 입은 어르신도,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도 웃으며 즐거워했다. 적막감이 감도는 산골이 왁자지껄했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추억의 한 페이지가 만들어지는 순간이다. 지난 6월 중순, 곡성군 오산면 관음마을에서 열린 ‘한복 입고 이팔청춘 마을 패션쇼’에서다. 패션쇼에는 서울에서 유학 온 학생의 학부모와 청년 활동가들이 도우미로 참...
2023.07.06 16:34바다를 앞마당으로 삼은 한옥이 멋스럽다. 바다와 한데 어우러지는 풍경이 고즈넉하다. 바다가 그리는 그림도 수시로 바뀐다. 바닷물이 빠지는 썰물인가 싶더니, 금세 바닷물이 밀려든다. “멋지죠? 전망도 좋고요. 저의 집이자, 소꿉놀이 터입니다. 찾아와서 하룻밤 묵는 손님들도 좋아해요. 함평만 풍경이 이렇게 근사한지, 예전엔 몰랐다면서요.” 주포마을에서 ‘윤슬한옥’을 운영하는 김미정 씨의 말이다. 윤슬한옥은 한옥펜션이다. 손님에 내어주는 방은 모두 5개. 화장실과 욕실 등 내부가 현대식으로 꾸며져 있다. 온돌방이 있고...
2023.06.22 15:28기억(記憶)의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 사람도, 풍경도, 건물도 매한가지다. 자신의 눈으로 보고, 기억을 한다. 똑같은 풍경을 보더라도, 남는 이미지는 서로 다르다. 그 위에다 다른 생각을 입히고 각색도 한다. 이상한 일은 아니다. 지극히 정상이다. 뜻깊은 일을 오래도록 남기기 위해 표지석도 세운다. 기록관 같은 공간을 만들기도 한다. 정치적인 의도를 담은 표지석이나 건축물은 부침을 겪기 일쑤다. 한때 ‘특수’를 누리다가, 손가락질을 받는다. 어느 순간 사라지기도 한다. 담양 성산마을을 생각한다. 40여 년 전, 1982년 3월 ...
2023.06.08 15:44별난 섬이다. 섬을 몇 바퀴 돌아도 강아지 한 마리 만날 수 없다. 닭이나 병아리도 보이지 않는다. 어디에나 지천인 무덤도 전혀 없다. “예부터 내려오는 당제와 연관됩니다. 섬이 다 그렇지만, 쑥섬사람들은 전통에 대한 믿음이 강했어요. 당제를 지내러 가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라도 하면, 되돌아와서 목욕재계를 했어요. 개와 닭의 울음소리도 신성한 제사에 방해가 된다고 기르지 않은 겁니다.” ‘쑥섬지기’ 김상현 씨의 말이다. 마을 뒤편 당산에도 아무 때나, 아무나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는 것이다. 섬에 무덤이 없는 것도 매...
2023.05.25 13:57큰 기둥이 하나 보인다. 언뜻 굴뚝 같은데, 굴뚝치고는 너무 굵다. 첨성대 같다. 많은 양의 곡물이나 시멘트를 저장하는 사일로(silo) 같기도 하다. 둥근 구조물의 왼쪽과 오른쪽의 모양도 똑같다. 호기심을 자극한다. 가까이 가서 보니 굴뚝도, 첨성대도 아니다. 급수탑이다. 우리나라의 철도 역사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 시설이다. 오래 전, 증기기관차가 달릴 때다. 증기를 동력으로 쓰는 열차는, 물이 떨어지면 멈출 수밖에 없다. 하여, 적당한 거리를 두고 물을 공급하는 시설을 뒀다. 기관차가 역으로 들어오면 한쪽에선 삽...
2023.05.11 10:50